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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북 후] "천직찾아 제대로 안착"…'사랑의 불시착' 곽문완 보조작가

송고시간2020-03-08 08:00

평양서 영화연출 전공…탈북 15년 만에 '한 우물' 빛 발해

(서울=연합뉴스) 정빛나 기자 = "삼숙이요, 최삼숙."

패러글라이딩 사고로 북한에 '불시착'한 남한의 재벌 상속녀는 주민들에게 자신의 이름을 이렇게 소개했다.

우연히 눈에 띈 북한 간판 가수 최삼숙의 음반 표지에서 힌트를 얻었다.

여기에 인민군 사택마을 주부들의 '바닷가 김장 전투'와 이북식 조개 불고기, '남조선 드라마' 마니아까지….

tvN '사랑의 불시착'이 그린 익숙한 듯 이질적인 장면은 탈북민들에겐 '향수'를, 남녘 시청자들에겐 가깝지만 멀게만 느껴지는 북녘땅에 대한 호기심을 불러일으켰다.

특히 '깨알 같은' 북한 고증이 배우들의 맛깔나는 북한 사투리와 버무려져 tvN 드라마 역대 최고 시청률을 기록하는 데 기여했다는 평가다.

탈북민 출신 '사랑의 불시착' 보조작가 곽문완 씨
탈북민 출신 '사랑의 불시착' 보조작가 곽문완 씨

(서울=연합뉴스) 정빛나 기자 = 탈북민 출신 영화연출가이자 tvN 드라마 '사랑의 불시착' 보조작가 곽문완 씨가 지난 2일 서울 송파구 거여동의 한 카페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다. 2020.3.8
shine@yna.co.kr

이미 수많은 히트작을 탄생시킨 박지은 작가의 저력을 재확인한 셈이지만, 북한 생활상이 실감 나게 표현된 데는 탈북민 출신 보조작가 곽문완(52) 씨의 조력이 컸다는 사실은 널리 알려지지 않았다.

박 작가가 전체 집필을 했다면, 곽 씨는 필요한 장면 등에 대한 자료 묘사를 하는 보조 역할을 했다.

그런 그를 지난 2일 서울 송파구 거여동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사실 곽 씨와의 인터뷰는 여러 차례 요청 끝에 어렵게 성사됐다. 박지은 작가에게 누가 될 수 있다는 걱정이 앞섰다고 한다.

"오래전에 알던 한 PD가 우연히 전화가 왔어요. 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를 쓴 박지은 작가가 탈북민 출신의 보조작가를 찾고 있다고…. 저야 하던 일도 관두고 한다고 했죠. 영화연출을 전공했지만, 드라마도 꼭 배우고 싶었거든요."

드마라 '사랑의 불시착'
드마라 '사랑의 불시착'

[tvN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평양연극영화대학에서 영화연출을 전공한 그는 북한 국영회사인 '조선영화수출입사'에서 근무했다.

그러나 러시아 모스크바 주재 북한대사관에 파견돼 무역 관련 업무를 하던 중 저녁 자리에서 한 '말실수'를 이유로 갑작스레 본국 소환 명령을 받았다.

고민 끝에 2004년 중국을 거쳐 탈북했고, 남한에 들어와 한동안 정보당국의 조사를 받았다.

그런데 다른 탈북자보다 길어진 조사가 오히려 기회가 됐다. 마침 이 시기 영화 제작을 위해 국가정보원과 소통하던 곽경택 감독을 소개받은 것.

"처음엔 북한 관련 연구기관에 취직하지 않겠냐는 제안도 받았지만 거절했습니다. 그때 이미 30대 후반이었는데, 앞으로 남은 시간만큼은 나를 위해 쓰고 싶었거든요. 작품 아니면 하기 싫었어요."

드라마는 이번이 처음이지만, 이미 '브이아이피'(2017)를 비롯해 '1987'(2017), '이상한 나라의 수학자'(2019) 등 북한을 소재로 다룬 영화 제작에도 꾸준히 참여했다.

'사랑의 불시착'에도 곽 씨의 실제 평양에서의 경험담이 토대가 된 것이 적지 않다.

극 중 화제를 모은 사병 김주먹(유수빈 분)이 '천국의 계단'에 열광하던 설정도 그중 하나다.

곽 씨는 "평양에서 검열단속반이 들이닥칠 경우를 대비해 집안에 비디오를 하나는 위장용, 하나는 실제 재생용으로 두 대씩 놓고 몰래 봤다"며 "그렇게 몰래 드라마 '올인'을 봤는데, 미치는 줄 알았다. 만들고 싶어 미치겠더라"고 회상했다.

드라마 속 북한 중대원들이 국정원에서 '거짓말탐지기' 조사를 받던 장면도 자신의 경험을 살려 직접 썼다.

어찌 보면 평양에서 엘리트로 살 수 있던 삶을 뒤로 한 채 '배고픈' 직업군에서 50대 늦깎이로 일하는 데 걱정은 없을까.

그는 "탈북 후 15년 간 줄곧 프리랜서로 일한 건데, 북한이었다면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라며 "어찌보면 '자본주의 야전의 전초선'이라고 할 수 있는 이 직업이 가져다 주는 시간적 풍부함이 좋고, 때론 경제적 부족함 이상의 가치를 가져다 준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어 "박 작가도 내 나이가 부담스러웠는지 처음엔 나를 보조작가가 아닌 '북한 전문작가'로 소개하겠다고 하길래 계약서대로 하자고 했다"며 "어차피 인생의 계단은 1층부터 밟고 2층으로 올라가는 게 순리인데 나이가 무슨 상관인가"라며 웃어 보였다.

드라마 '사랑의 불시착'
드라마 '사랑의 불시착'

[tvN '사랑의 불시착'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같은 맥락에서 '후배' 탈북민들에게도 남한 사회에서 받는 차별과 편견을 의식하지 말라고 조언한다.

곽 씨는 "나 같은 경우 오히려 이 업계에서 경쟁 상대가 없을 정도로 탈북민 출신이라는 점이 좋은 의미의 '차별화'가 됐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분단시대에서 느끼게 되는 솔직한 감정이 오히려 훗날 사료적 가치로 남게 되는 의미가 있고, 그런 생의 흔적을 자신이 좋아하고 배운 영역에서 남기는 데 이 세상을 다녀간 사람의 흔적이자 몫"이라고 힘줘 말했다.

이번 드라마 흥행을 계기로 '러브콜'도 받기 시작했다는 곽 씨는 현재 남북 간 휴민트(인적 정보망)를 소재로 한 드라마 대본 집필에 한창이다.

'북한판 아메리칸 드림'인 '시베리아 드림'을 꿈꾸던 북한 가장들의 얘기를 다룬 시나리오 작업도 진행 중이다.

"북한은 남쪽 사람들에게 '미지의 세계'이긴 하지만 그 안에서 벌어지는 삶은 이쪽과 다르지 않다는 것을 제 경험을 살려 생동하게 전하고 싶어요. 비록 '사랑의 불시착'으로 시작된 북한에 대한 관심이 단계를 밟아 언젠간 '정시착'으로 갈 수 있도록 말입니다."

shin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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