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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vel Abroad] 실크로드의 기착지 터키 부르사

송고시간2020-03-08 08:01

(부르사=연합뉴스) 조보희 기자 = 아시아와 유럽이 만나는 터키는 볼거리가 많다. 최대 도시 이스탄불을 비롯해 트로이, 파묵칼레, 카파도키아, 안탈리아 등 명소들이 수두룩하다.

하지만 이중 한 곳만 둘러보려 해도 며칠이 소요된다. 이스탄불에만 체류한다면 시내를 둘러보고 가까운 주변 도시를 찾게 되는데, 이럴 때 추천할 곳이 바로 부르사다.

과거 비단 제품 거래의 중심지였던 코자한 안뜰 [사진/조보희 기자]

과거 비단 제품 거래의 중심지였던 코자한 안뜰 [사진/조보희 기자]

◇ 캐러반서라이의 도시

이스탄불 야경의 중심인 갈라타교 옆 카바타쉬 터미널에서 부르사행 페리에 올라 1시간 40분 동안 마르마라해를 가로질러 부르사에 도착했다.

우리에겐 다소 생소하지만 부르사는 아나톨리아 북서부 마르마라 지역의 인구 200만명에 육박하는 대도시로, 터키에서 네 번째로 크다.

부르사는 1326년 오스만제국의 첫 번째 수도가 됐다. 그때부터 오스만제국이 동로마제국을 멸망시키고 이스탄불로 천도한 1453년까지 127년간 제국의 중심이었다.

부르사는 원래 실크로드의 요충지로서 중요한 비단 생산지였다.

현지에서 생산되는 비단 제품은 물론 페르시아, 시리아 등지에서 수많은 낙타와 말에 실려 온 견직물로 시장이 넘쳐났다. 베네치아나 피렌체의 상인들도 비단을 사러 모여들어 도시 전체가 언제나 북새통을 이뤘다.

코자한 정문 [사진/조보희 기자]

코자한 정문 [사진/조보희 기자]

실크로드 상인들이나 여행자들이 묵던 곳을 캐러반서라이(kervansaray)라 부른다. 아시아, 북아프리카, 남동 유럽이나 특히 비단길로 교역을 위해 사막을 다니는 대상들이 안전한 숙소에서 서로 정보를 나누는 장소로 쓰였다.

부르사에는 이러한 캐러반서라이의 일종인 '한'(HAN)이 여럿 남아있다. 그 대표적인 곳이 코자 한(KOZAHAN)이었다.

터키어로 '코자'는 누에고치, '한'은 집을 의미해 '누에고치의 집'이란 뜻이다. 1491년 만들어질 당시 비단 제품이 취급되던 곳이다.

영어로 이름이 씌어 있는 거대한 성문처럼 생긴 입구로 들어서면 정방형의 2층 석조건물로 둘러싸인 넓은 뜰이 나타나고 중앙에 팔각형 탑 모양을 한 모스크가 우뚝 서 있다.

모스크를 중심으로 커다란 고목이 에워싸고 그 아래는 야외 테이블이 가득 자리하고 있다. 직장인과 관광객들이 커피와 터키 전통 홍차인 차이를 마시며 한낮의 여유를 즐기고 있다.

과거엔 말이나 낙타의 휴식처였던 곳이다. 최근에는 누에고치 거래소로 사용되기도 했다.

코자한 2층의 비단제품 상점가 [사진/조보희 기자]

코자한 2층의 비단제품 상점가 [사진/조보희 기자]

상인들 숙소로 쓰였던 2층엔 각종 실크 제품을 파는 고급 상점들이 빼곡하게 들어서 있다. 실크 거래의 오랜 역사만큼이나 제품의 품질도 고급스러워 보인다.

너른 마당 풍경에 걸맞게 가게 상인들도 여유롭고 친절한 표정으로 손님을 맞는다.

500년이 넘은 건물이지만 내부는 여전히 고급스럽고 튼튼해 보인다. 몇십년이면 재건축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우리나라 현실과 비교해 아직도 서민들의 생활 공간으로 사용되고 있다는 사실이 부러웠다.

카페에서 차이 한잔 시켜놓고 앉아 있는 것만으로도 이국적이고 여유로운 풍경에 저절로 힐링이 되는 기분이다. 차이 잔은 터키의 국화인 튤립 모양을 하고 있다.

부르사의 그랜드 바자르 보석상점 [사진/조보희 기자]

부르사의 그랜드 바자르 보석상점 [사진/조보희 기자]

코자 한을 나서면 전통시장 그랜드 바자르로 이어진다. 이스탄불에도 같은 이름의 시장이 있지만 부르사에도 있는 또 다른 시장이다.

과거에는 실크로드 대상들이 주 고객이었을 대장간이 성황이었다고 한다. 지금은 대도시의 시장답게 공예품과 식료품, 보석 등 다양한 물건을 취급하는 대형 시장이다.

시장을 따라가다 보면 부르사 최대 모스크인 울루자미에 도착한다. 100여개가 넘는 부르사의 모스크 중 단연 독보적이다. 1421년 술탄 메흐메트 1세때 완공됐다.

이스탄불의 이름난 모스크에서 볼 수 있는 대형 돔을 사용하지 않고 20개의 작은 돔을 12개의 사각기둥이 떠받치는 형태로 오스만 제국 초기 자미의 특징을 잘 간직하고 있다.

경내에 들어서면 예배 전 정결의식을 위해 마련해 놓은 작은 샘에서 손과 발을 씻는 무슬림들이 많다.

내부에 들어서면 기둥과 벽에 이슬람 문자로 쓰인 대형 코란이 눈길을 끈다. 한쪽에는 작은 책상을 놓고 앉아 경건하게 코란을 읽은 노인들을 볼 수 있다.

부르사 최대 모스크인 울루자미 [사진/조보희 기자]

부르사 최대 모스크인 울루자미 [사진/조보희 기자]

◇ 부르사가 원조인 이스켄데르 케밥

부르사 시내에서 주요 관광지는 걸어갈 수 있을 정도로 가깝다.

거리를 걷다가 길게 줄을 서 있는 식당을 만났다. 궁금해 가보니 부르사에서 유래된 이스켄데르 케밥 원조집이라고 한다.

빙글빙글 돌려가며 구워낸 원통형 고깃덩어리에서 얇게 썰어 낸 양고기에 뜨거운 버터를 끼얹어 주는 케밥이다.

밖에서 보이는 주방 모습을 촬영한 뒤 인상 좋은 요리사에게 청해 맛본 고기 한 점은 깊은 풍미가 그만이었다. 길게 줄 선 사람들이 단번에 이해가 됐다.

기회가 되면 제대로 사 먹어 봐야겠다고 생각했지만, 장사진을 보니 쉽지 않을 것 같았다.

부르사의 이스켄데르 케밥 원조집 [사진/조보희 기자]

부르사의 이스켄데르 케밥 원조집 [사진/조보희 기자]

부르사 시내를 한눈에 조망할 수 있는 장소가 톱하네 공원이다. 공원 가운데 1906년에 세운 높이 25m의 6층 시계탑이 있다.

원래 용도는 화재 감시탑이었다. 방문 때 수리 중이어서 깨끗한 장면을 사진에 담지는 못했다.

전망대에 올라서면 붉은 지붕을 한 건물이 가득한 넓은 시가지가 한눈에 펼쳐진다. 울루자미와 코자한의 올록볼록한 지붕도 볼 수 있다.

공원엔 현지 주민들이 여유롭게 나들이 나온 모습이 평화롭기만 하다.

톱하네 공원 시계탑 [사진/조보희 기자]

톱하네 공원 시계탑 [사진/조보희 기자]

톱하네 공원 한쪽에 오스만제국을 세운 1대 오스만 가지와 2대 오르한 가지의 무덤이 있다. 이들의 영묘가 부르사에 있는 이유는 오스만 가지가 부르사를 공격하던 도중 사망했기 때문이다.

오스만 가지 영묘에는 8각형 건물에 관이 안치돼 있는데 자손들의 관도 함께 있다. 오스만제국의 창시자 영묘라고 하기엔 소박했다.

1442년에 지어진 으르간드 다리도 가볼 만하다. 다리 위 양쪽으로 상점이 자리하고 있는데 상점이 있는 다리는 전 세계 몇 개 되지 않는다고 한다. 그중 가장 오랜 역사를 가진 곳이다.

상점에는 카페와 수공예품점이 있는데 사진작가들에게 인기 있는 장소다.

다리 위의 자리한 으르간드 다리 상점가 [사진/조보희 기자]

다리 위의 자리한 으르간드 다리 상점가 [사진/조보희 기자]

시내에는 옛 방식으로 터키 전통악기 '사즈'를 만드는 곳이 있다.

40년 넘게 악기를 만들어온 시난 샤힌 씨의 공방인데 샤인씨가 얼마 전 작고하고 현재는 사위가 가업을 이어받아 작업하고 있다. 공장에는 작업 중인 수십 개의 사즈가 걸려있어 눈길을 끈다.

부르사 사람들은 만나는 사람마다 여유 있고 친절하다. 사진을 찍을 수 있냐고 물어보면 기꺼이 카메라를 향해 웃음을 날려준다.

초상권에 민감한 우리나라에서 사진 촬영에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는 경우를 여러 번 경험한 필자로서는 더없이 즐거운 경험이었다.

이스탄불에서 부르사로 가는 방법은 버스와 페리를 이용할 수 있다. 페리는 1시간 40분, 버스는 마르마라해를 돌아가기 때문에 4시간이 걸린다.

카메라앞에서 포즈를 취해 주는 친절한 주민 [사진/조보희 기자]

카메라앞에서 포즈를 취해 주는 친절한 주민 [사진/조보희 기자]

※ 연합뉴스가 발행하는 월간 '연합이매진' 2020년 3월호에 실린 글입니다.

jobo@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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