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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간포착] 해방 37년만에 돌려받은 '심야의 자유'

송고시간2020-01-11 08:00

1982년 1월 5일 자정 기해 통행금지 해제

통금 해제 첫날 서울 도심 뒷골목
통금 해제 첫날 서울 도심 뒷골목

통행금지가 해제된 1982년 1월 5일 자정 이후 서울 도심 뒷골목 풍경 [연합뉴스 자료사진.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연합뉴스) 임동근 기자 = 지금은 상상하기 어렵지만 1980년대 초반까지 도심 밤거리는 암흑천지였다. 자정이 되면 통행금지를 알리는 사이렌이 길게 울렸고, 2인 1조 야경꾼이 '통금!'을 외치며 돌아다녔다.

이 시각 이후 길거리에서 발견된 시민들은 경찰서에서 즉결심판을 받고 밤을 꼬박 지새워야 했다. 술꾼들은 서둘러 집에 가거나 아예 가게 문을 닫고 몰래 마시고, 영화나 드라마에서 종종 보듯 통금 시간을 넘긴 연인들은 여관이나 여인숙으로 찾아들었다. 통금 시간에 맞춰 김포공항이나 김해공항에 착륙하지 못한 국제선 비행기가 다른 나라로 회항하는 일도 있었다고 한다. 이런 상황은 광복 후 37년간이나 지속했다.

사진은 통금 해제 첫날 새벽 서울 도심이다. '통행금지 해제'란 제목의 사진에는 '통행금지가 1월 5일 자정을 기점으로 해제되자 시민들이 자정이 지난 뒤에도 시청 뒷골목에 흥청거리고 있다. 1982.1.6 (본사자료)'라는 설명이 붙어 있다.

'흥청거리고 있다'라는 설명과 달리 사진 속 거리에는 사람이 많지만, 주변 건물들은 불이 꺼져 깜깜하다. 사진만 보면 정전으로 사람들이 거리에 나와 서성이는 것처럼 보인다. 기다란 소총을 들고 선 경찰은 무척 삼엄해 보인다. 당시 치안 강화를 위해 전 경찰이 투입돼 비상 근무를 했다고 한다.

당시 연합뉴스 기사를 찾아보면 통금 해제 첫날은 무척 조용했다. 평소보다 많은 시민이 늦게까지 거리를 누볐으나 보안 사범은 늘지 않았으며 유흥가도 조용했다. 자정이 가까워져 오자 시민들은 느긋한 표정으로 택시를 기다렸다. 오히려 경찰서는 이전보다 한산했다. 평소 경찰서마다 통금 위반으로 들어온 즉심대기자 10∼20명이 보호실을 채우지만, 통금 해제와 함께 위반자도 사라졌기 때문이다.

야간통행금지는 간첩을 경계하기 위해 1945년 9월 7일 미군정청이 공포한 '미군정 포고1호'에 따라 서울과 인천에서 저녁 8시부터 다음날 새벽 4시까지 처음 실시됐다. 한국전쟁 이후 전국으로 확대됐다가 1955년에는 범죄 예방을 명목으로 '경범죄 처벌법' 제정을 통해 자정부터 새벽 4시까지로 통행을 금지했다.

서슬 퍼런 군부독재 시절에 통금이 해제된 것은 국민에게 밤을 돌려주려는 의도보다는 서울올림픽 때문이었다. 1981년 서울이 올림픽 개최지로 결정되자, 정부는 통금이 있는 상태에서 올림픽을 치를 수 없었다.

당시 연합뉴스 기사에 따르면 1981년 11월 6일 국민당이 야간통행금지 해제 건의안을 국회에 제출했고, 19일 여야 3당과 의정동우회 중진회의 참석자들은 민정당이 제안한 해제 건의안 공동발의에 합의했다.

이날 민정당은 통금해제 제안 이유로 88년 올림픽개최에 대비해 언젠가는 통금이 해제돼야 하며, 충북·제주 등지에 통금을 해제한 결과 보완대책만 강구하면 안보에 별다른 문제가 없다고 판단되며, 통금을 해제함으로써 관광 및 산업활동 등을 촉진할 수 있다 등을 들었다.

통금 해제는 밤 문화 활성화로 이어졌다. 당시 연합통신(연합뉴스 전신) 보도에 따르면 서울극장이 상영 중이던 '애마부인'의 심야상영을 3월 20일 시작한 이후 서울 시내 14개 개봉관 가운데 9개 관이 영화를 심야에 상영했다. 버스와 지하철은 연장 운행하고, 철야로 운영하는 가게와 술집이 등장하며 술자리가 새벽까지 이어졌다.

부작용도 생겨나 다방을 고고클럽으로 전용해 청소년을 입장시킨 주인이 입건되고, 유흥업소 고성방가로 주민이 밤잠을 설치는 일도 있었다. 내무부 '통금해제 후의 치안추세' 보고에 따르면 1월 5일부터 2월 25일까지 음주소란, 윤락행위, 무전취식 등 보안 사범과 교통사고는 크게 늘었다.

dklim@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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