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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간포착] 지각이 부른 세계적 특종

송고시간2019-12-28 08:00

1998년 조계종사태 진압경찰 추락장면

추락하는 진압 경찰
추락하는 진압 경찰

조계종 총무원 건물에 진입하다 추락하는 경찰들. [연합뉴스 자료사진.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연합뉴스) 임동근 기자 = '추락하는 진압 경찰'이란 제목이 붙은 이 사진을 여전히 기억하는 사람이 많으리라. 1998년 연말을 화려하게 장식한 조계종 사태를 웅변하는 한 장면으로 길이 남는다. 그 설명은 이렇다.

'23일 오전 조계사 총무원 건물에 대한 퇴거 집행에 나선 경찰들이 고가사다리를 타고 진입하던 중 사다리가 뒤틀리면서 진압 경찰들이 추락하고 있다./김재영/ 1998.12.23(서울=연합뉴스)'

흰색 헬멧을 쓰고, 또는 방패와 곤봉을 든 경찰관들이 고가사다리에서 떨어져 내리는 모습이 마치 중국 무술 영화의 한 장면 같다. 영화라면 감독의 큐 사인에 맞춰 와이어를 매단 대역 배우가 떨어지는 모습을 연출했겠지만 이건 한 치 과장도 없는 실화다.

사진을 보면 이 순간, 그 자리에 없었다면, 또 손에 카메라가 들려있지 않았다면 결코 담아낼 수 없는 장면이다.

'김재영'은 말할 것도 없이 이 극적인 순간을 포착한 사진기자다. 그는 이듬해 2월 12일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서 열린 '98년 세계보도사진대회'에서 현장보도 단일사진 부문 1등상을 받았다. 앞서 1월에는 한국사진기자협회가 시상하는 제35회 한국보도사진전에서 대상을 차지했다. 이 사진은 같은 해 9월 AP통신이 발행한 '세기의 사진'에도 수록됐다.

요컨대 상복이 터진 세계적 특종이었다.

얼마 뒤 퇴직하고 지금은 다른 길을 걷는 김재영 전 기자는 당시 '세계보도사진대회' 수상 인터뷰에서 "진압 경찰들이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는 것을 보고 만일의 사태가 일어날 수 있다는 직감이 들었다"고 했다.

이 사진 촬영과 관련해선 숨은 이야기가 있다. 배재만 현 사진부장에게 비하인드 스토리를 상세하게 들을 수 있었다. 결론부터 말한다면 지각이 부른 우연한 특종이었다.

당시 송월주 총무원장 3선에 반대하는 조계종 정화개혁회의 측 승려들이 총무원 건물을 점거하며 연일 위태로운 상황이 이어지고 있었다.

"총무원 옥상 건물에서 정화개혁회의 측 승려들이 칼을 들고 자해한다고 하고, 거리로 뛰어나와 몸에 시너를 뿌리고 불을 지른다고 하는 등 상황이 긴박했어요. 그래서 제가 당시 주니어 기자였는데 후배에게 함께 취재해 보자며 총무원 건물 앞에서 밤을 새워가며 대기했죠."

교대로 밥을 먹어 가며 이틀 밤을 꼬박 새우고 마침내 23일 아침이 됐다. "지금은 고인이 되신 김동진 당시 사진부장이 '밤새 고생했으니 식사라도 하고 오라' 해서 해장국 한 그릇을 먹고 회사로 복귀했어요. 한데 그 사이에 이미 상황이 끝났더라고요. 그 허탈함이란…."

배 부장 말을 재구성하면 이렇다. 이날 김재영 기자는 30분쯤 지각한 아침 9시쯤 출근했다. 당연히 김동진 부장한테 혼날 수밖에. "너 제정신이야? 이 난리에 지각?" 글로는 옮기기 힘든 육두문자가 날아들었다.

김 기자는 부장의 징벌적 지시에 따라 사내 사진부 암실에 대기했다. 사진기자가 현장에서 배제된다는 것이 징벌이었던 것이다. 당시 사진부 암실은 조계종 총무원 건물이 건너다보이는 연합뉴스 구사옥 4층에 있었다.

한데 9시 25분쯤 경찰이 법원의 강제 퇴거 집행을 지원하려고 총무원 청사로 진입했다. 경찰은 청사 뒤편에 설치돼 있던 철조망과 장애물을 걷어내면서 청사 현관 옆 유리창문을 통해 들어갔고, 청사 안에 있던 정화개혁회의 측 승려들은 화염병과 음료수병, 깨진 유리 조각, LPG 통을 던지며 격렬히 저항했다. 이 과정에서 고가사다리를 타고 진입하던 경찰들이 사다리가 뒤틀리면서 추락했다. 암실에서 망원렌즈를 낀 카메라를 손에 쥔 김 기자는 순간 본능적으로 셔터를 정신없이 누르기 시작했고, 이 장면은 고스란히 필름에 담겼다. 세계적인 특종이 탄생한 순간이었다.

"아침을 먹고 사무실에 들어갔더니 부장이 필름 현상기 앞에서 한 손에 가위, 다른 한 손에 룩배(확대경)를 들고 필름이 나오기를 기다리고 있는 거예요. 보통 필름이 현상되고 나면 한꺼번에 보는데 한 장씩 나올 때마다 룩배를 대고 보고 있었죠. 그러다 "됐어" 하더니 가위로 필름을 잘랐어요. 그게 특종이 될 줄이야."

배 부장은 다시 서둘러 조계사 현장으로 갔다. 상황은 종료됐고, 떨어진 경찰들을 앰뷸런스로 옮기는 장면 등을 스케치했다. 한데 한쪽에서 뿌듯한 표정의 ○○일보 기자를 둘러싸고 "이거 어떻게 찍었어" 하는 사진기자들 얘기가 오갔다. ○○일보 기자가 경찰들이 떨어지는 것을 밑에서 포착했다는 것이었다. 다른 사진기자들은 언론계 속어로 이른바 '눈 뜨고 물을 먹은' 것이었다.

"'우리(연합뉴스) 그거(경찰 추락하는 장면을 포착한 사진) 나갔는데' 했더니, 각 언론사 기자들이 각자 자기네 회사로 전화해서 확인하고 난리였죠. 황당했던 곳은 ○○일보 기자였죠. 자기가 특종했다고 의기양양해 하다가 순식간에 날아갔으니깐요. 다음 날 이 사진은 10대 일간지 전부 1면 톱을 장식했죠."

직후 김재영 기자가 딱히 한 말은 없었다고 한다. "전날 마신 술이 덜 깨서 뭘 찍었는지 몰랐어요. 초점이 맞았는지, 사진이 어떻게 나왔을지도 모르는 상황이었죠. 사실 사진을 보면 노출이 안 맞아요. 역광에서는 매뉴얼로 노출을 맞춰야 하는데 자동으로 놓고 찍어서 경찰들이 실루엣으로 보이죠. 그 바람에 더 극적인 사진이 됐어요. 물론 김재영 선배가 이걸 찍은 것은 평상시 실력을 갈고닦았기 때문입니다."

dklim@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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