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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스피싱 행동책 무죄 선고한 법원, 수사관행 이례적 비판

송고시간2019-12-20 06:05

"외국 주범 못잡고 수사 끝내…말단 조직원 처벌로는 범죄 못막아"

[연합뉴스TV 제공]

[연합뉴스TV 제공]

(서울=연합뉴스) 정성조 기자 = 보이스피싱(전화금융사기)에 걸려든 사람들의 돈을 윗선에 넘기는 '행동책'으로 활동하다 검거된 중국인 유학생들에게 법원이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판결에서 이례적으로 기존 수사 관행과 처벌제도의 문제점까지 지적했다. 외국에 있는 주범은 체포하지 못하면서 행동책만 붙잡아 처벌하고 끝내면 범죄 예방에 실효성이 없다는 취지다.

20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동부지법 형사2단독 이형주 부장판사는 사기 방조 등 혐의로 기소된 중국인 A(24)씨와 B(22)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한국의 한 대학을 졸업한 A씨와 다른 대학 3학년에 재학 중인 B씨는 지난 6월 보이스피싱 조직 지시를 받고 사기 피해자에게서 2천만원씩을 수금해 송금한 혐의 등을 받는다.

두 사람은 재판 과정에서 "범죄 의도가 없었다"며 억울함을 호소했다.

한국에 거주하는 중국인들의 생활정보 공유 웹사이트에서 통역 등 구인광고를 보고 일을 하기로 했는데, 업체로부터 '누군가 빌렸던 돈을 갚을 테니 가서 받아오라'는 지시를 갑작스레 받고 따랐을 뿐이라고 이들은 주장했다. 피해액을 변상하고 합의했다는 점도 강조했다.

검찰은 이들이 평범한 시민인 피해자가 준 거액을 받으면서 '이상하다'는 느낌이 들었다고 조사에서 인정했고, 이미 여러 해 한국에 체류해 보이스피싱이 만연한 실정을 몰랐을 리 없다는 등의 근거를 제시하며 범죄 의도가 있었다고 주장했다.

재판부는 "검찰의 증거로는 피고인들에게 범죄 의도가 있었다고 판단하기에 부족하다"면서 범죄사실이 입증되지 않았다고 봤다.

법적으로 '범죄 의도가 있다'고 하려면 자신들이 옮기는 돈이 사기 피해금임을 알아야 했는데, 이들은 단순히 '돈을 받아 송금하라'는 업체 지시로만 여겼을 수 있다는 것이 재판부 판단이다.

재판부는 이례적으로 판결문 두 쪽을 할애해 별도 소제목을 달아 의견을 상세히 부연했다.

보이스피싱 (PG)
보이스피싱 (PG)

[장현경 제작] 일러스트

재판부는 보이스피싱 범죄의 경우 중국 등에 있을 주범이 실제로 잡히는 경우가 거의 없는 점이 가장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취약계층을 겨냥하는 보이스피싱은 물론 엄단해야 하지만, 보통은 말단 행동책만 붙잡아 주범에게 가해야 할 수준의 처벌을 내리고 있지 않으냐는 것이다.

재판부는 "행동책은 아르바이트 시장에서 무한대로 조달될 수 있는 '일회용 도구'에 불과하다"며 "행동책에 대한 엄중한 처벌이 주범들에게 범행 자제나 회피로 연결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피고인들이 처벌을 받더라도 주범은 구인광고로 얼마든지 대체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수사기관이 주범을 체포하려는 노력도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재판부는 "현재 행동책이 체포되면 '보이스피싱 범죄 조직원이 체포됐다'고 발표하고는 사건을 종결짓고, 주범에 대해서는 전혀 수사하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형벌의 목적 중 하나는 범죄 예방 효과인데, 현재의 보이스피싱 사건에서는 그런 효과가 매우 의문"이라고 말했다. 사건 자체가 너무 흔해져 언론에도 잘 보도되지 않는 수준인데, 실직자나 청년들이 범죄의 도구가 되지 않게 하는 홍보는 부족하다고 재판부는 지적했다.

재판부는 "과도한 처벌로 피해자 보호와 사회 방위를 다 하고 있다는 생각은 실태에 무지한 자아도취"라며 "현재의 수사·공판 관행에 안주할 것이 아니라 부족한 부분에는 새로운 접근이 필요하다는 것을 수사기관과 행정기관, 사회에 알릴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아울러 외국에서 걸려온 전화를 국내 휴대전화번호로 변조하는 통신중계기를 일반인이 아예 사용하지 못하도록 하는 등 제도적 보완 필요성도 제기했다.

검찰은 판결에 불복해 항소했다.

xing@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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