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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균 1주기] ① 원·하청 구조가 낳은 비극

[※ 편집자 주 = 이달 10일이면 '위험의 외주화'라는 무거운 화두를 우리 사회에 던지고 떠난 청년 김용균씨의 1주기 입니다. 그의 안타까운 죽음 이후에도 위험은 여전히 일터 곳곳에서 청년, 비정규직, 하청업체 노동자들을 위협하고 있습니다. 고(故) 김용균씨의 1주기를 앞두고 연합뉴스는 '원·하청 구조가 낳은 비극' 등 5건의 기사를 일괄 송고합니다]

광화문 광장의 고 김용균 추모 분향소
광화문 광장의 고 김용균 추모 분향소[연합뉴스 자료사진]

(서울=연합뉴스) 이영재 기자 = 하얀 얼굴에 키 크고 마른 청년이 검은 양복을 말쑥하게 차려입고 수줍은 듯 웃는다. 허리에 두 손을 얹고 몸을 흔들어 보이기도 한다.

아직 앳돼 보이는 얼굴은 입사를 앞둔 청년의 기대감으로 가득하다.

발전 공기업 한국서부발전의 하청업체인 한국발전기술에 입사한 고(故) 김용균(당시 24세) 씨의 모습이 담긴 동영상의 한 장면이다.

김 씨는 이 영상을 찍은 지 약 3개월 만인 작년 12월 10일 밤 충남 태안 화력발전소에서 홀로 석탄 운반용 컨베이어 점검작업을 하다가 벨트와 롤러에 몸이 끼여 숨졌다.

김 씨의 죽음은 하청 노동자를 위험으로 몰아넣는 국내 산업 구조에 경종을 울렸다. 기업 경영의 효율성만 바라보며 구축해온 원·하청 구조의 근본적인 문제를 우리 사회는 또 한 번 마주해야 했다.

◇ 김용균을 죽음으로 몰아넣은 원·하청 구조

"김용균 씨는 사고 당시 작업 지시와 근무 수칙을 충실히 지켰다."

김 씨의 사망사고를 4개월 동안 조사한 국무총리 소속 '고 김용균 사망사고 진상 규명과 재발 방지를 위한 석탄화력발전소 특별노동안전조사위원회'(이하 특조위)가 지난 8월 조사 결과를 발표하며 내놓은 결론이다.

사고 직후만 해도 사측은 책임을 김 씨의 과실로 돌리려고 했다. 그러나 특조위는 김 씨 개인이 아니라 그와 같은 하청 노동자를 위험으로 내몬 원·하청 구조에 문제가 있다고 봤다.

원·하청 구조는 기업이 공정의 일부를 외주화(아웃소싱)하면서 만들어진다. 외주화한 공정은 원청 기업과 도급 계약을 맺은 하청업체가 맡게 된다. 김 씨처럼 소속은 하청인데 원청 사업장에 파견돼 일하는 노동자를 사내 하청 노동자라고 한다.

원청은 외주화를 통해 직접고용 인력을 줄여 인건비를 절감한다. 도급 계약을 맺을 때는 하청업체들의 경쟁을 유발해 비용을 낮춘다.

국내 전력산업의 복잡한 원·하청 구조는 정부가 '전력산업 구조 개편'을 추진한 2001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전력산업 구조 개편에 따라 한국전력의 발전 부문은 한국서부발전을 포함한 5개 발전 공기업과 한국수력원자력으로 분할됐다. 효율성을 명목으로 발전 공기업들의 경쟁 구조를 만든 것이다.

발전 공기업은 '발전 정비'와 '연료·환경 설비 운전' 업무를 민간 업체에 외주화했다. 효율성을 내세운 민영화로 볼 수 있다.

올해 6월 기준으로 5개 발전 공기업의 발전 정비와 연료·환경 설비 운전 업무를 수행하는 사내 하청 노동자는 모두 6천220명에 달했다.

사내 하청 노동자들의 노동 조건은 매우 열악했다.

하청업체들은 인건비를 줄이려고 숙련도가 낮은 청년을 주로 고용했다. 이마저도 위험 작업을 수행하기에는 부족한 규모였다.

위험 작업은 2인 1조 근무가 원칙인데도 김 씨는 사고 당시 혼자였다. 2인 1조 근무를 했더라면 김 씨가 몸이 끼인 순간 동료가 기계의 비상 정지를 포함한 안전 조치를 할 수 있었다.

만성적인 인력 부족 속에서 노동자들은 장시간 노동에 시달렸다. 어느 작업 현장에서나 장시간 노동은 산업재해를 낳는 핵심 원인이다.

사내 하청 노동자들은 임금 수준도 낮았다. 하청업체들이 이윤을 극대화하려고 임금을 후려친 결과다.

특조위 조사 결과에 따르면 김 씨와 같은 하청 노동자의 임금은 발전 공기업 정규직의 절반 수준에도 못 미쳤다.

하청업체는 원청으로부터 노무비로 지급받은 돈의 47∼61%만 노동자에게 지급했다. 나머지는 하청업체가 착복한 것으로 특조위는 판단했다.

경쟁 활성화와 효율성 제고라는 화려한 명분으로 시작한 전력산업 구조 개편의 결과는 지극히 후진적인 장시간 저임금 노동체제였던 셈이다. 그 굴레는 하청 노동자들이 고스란히 떠안아야 했다.

원·하청의 도급 계약이 3년 단위인 탓에 고용 불안을 겪는 하청 노동자들은 스스로 작업 현장의 안전을 지키기 위해 목소리를 내기도 어려웠다.

작업 현장의 관리 권한은 원청이 갖는데 하청 노동자는 원청을 상대로 교섭할 수 없는 구조도 위험에 손을 못 댄 원인이 됐다.

원청은 불법파견 논란이 휘말리지 않기 위해 안전 확보를 위한 지시에도 소극적이었다. 이 때문에 작업 현장의 소통 구조가 복잡해져 위험 요인에 대한 신속한 대응을 어렵게 했다.

고 김용균 추모 분향소
고 김용균 추모 분향소[연합뉴스 자료사진]

◇ 작년 산재로 숨진 하청 노동자 312명

하청 노동자가 위험으로 내몰리는 현실은 통계 수치로도 확인된다.

2014년부터 지난해까지 5년 동안 5개 발전 공기업의 산재 노동자는 371명이었는데 이 가운데 하청 노동자는 345명(93.0%)으로, 대부분을 차지했다. 산재 사망자 21명은 모두 하청 노동자였다.

지난해 국내 산업 현장에서 산재로 숨진 하청 노동자는 312명으로, 전체 산재 사망자(804명)의 38.8%에 달했다.

기업이 위험한 업무를 외주화하면서 하청 노동자에게 위험이 집중된 탓이다. 원·하청 구조를 '위험의 외주화' 혹은 '죽음의 외주화'로 부르는 이유다.

전문가들은 과거 효율성 제고를 명목으로 무분별하게 양산한 원·하청 구조의 해소를 근본적인 해법으로 제안한다.

특조위도 김용균 씨가 담당했던 발전소 연료·환경 설비 운전과 정비 업무를 발전 공기업의 직접 운영으로 되돌리고 하청 노동자들은 직접고용할 것을 권고했다.

장기적으로는 외주화로 분할된 발전 산업을 한국전력을 중심으로 재통합하는 방안을 특조위는 제시했다.

그러나 김 씨의 죽음을 초래한 발전 산업 원·하청 구조의 문제를 해결하는 작업은 더디기만 하다.

특조위 조사위원으로 활동한 전주희 서교인문사회연구실 연구원은 최근 '고 김용균 노동자 1주기 추모위원회' 토론회에서 정부가 직접고용에 소극적이라고 비판했다.

전 연구원은 "실질적인 지휘·감독을 하는 '진짜 사장'(원청)과 지시·명령을 수행하는 하청 노동자가 서로 다른 울타리에 있는 구조에서 위험이 커진다"며 원·하청 구조의 해소 필요성을 강조했다.

ljglory@yna.co.kr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2019/12/08 08:20 송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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