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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년전 시작된 주택지 개발 열풍을 돌아보니

전통건축학자 이경아 교수 신간 '경성의 주택지'

(서울=연합뉴스) 임형두 기자 = "5년 전쯤 재건축에 들어가는 대치동 아파트를 장만할 수 있었다. 내 이름으로 등기했다. 13억원인가 했는데, 재건축이 끝난 지금은 23억~24억원대로 10억원가량 올랐다."

최근 이슈로 떠오른 2030세대 주거문제에 관한 한 일간지 기사 내용이다. 집값 안정화와 주거공간 개선방안은 새 정부가 들어설 때마다 가장 먼저 발표하는 정책 중 하나가 됐다. 이는 지금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그렇다면 이런 개발 열풍은 언제부터 불었을까? 전통건축학자 이경아 씨가 펴낸 '경성의 주택지'는 우리나라 주택지 개발의 기원과 현상을 심도있게 추적했다. 저자는 서울시 한옥문화과 한옥정책연구팀장을 거쳐 현재는 한국전통문화대학교 전통건축학과 부교수로 재직한다.

서울 가회동의 북촌한옥마을
서울 가회동의 북촌한옥마을[사진=서울시 제공]
서울 후암동의 골목길
서울 후암동의 골목길[사진=연합뉴스]

우리나라에 주택지 개발 열풍이 불어닥치기 시작한 것은 100여 년 전이었다. 다음은 책에 기술된 당시의 경성 주택 상황-.

"후암동 일대의 지가 변동 양상을 살펴보면, 개발되기 전 해당 지역 토지의 지목이 전(田)일 경우 1910년대 말 당시 평당 0.55원에서 2.6원에 불과했다. 그러던 것이 지목이 대(垈)로 바뀌면서 1.2원에서 6원까지 상승했고, 실제 분양될 때는 10원에서 36원까지 지가가 매겨졌다."

조선시대에는 집을 지으려는 사람과 지어주는 사람에 의해 주택 공급이 이뤄졌다. 하지만 100여 년 전부터 개발업자들이 도중에 끼어들었다. 이들은 자신이 개발한 주택지에 브랜드를 붙이고 다른 주택지와 차별성을 부각한 광고를 하기 시작했다.

이처럼 개발업자에 의한 주택지 개발이 이뤄지게 된 원인은 바로 '인구 폭증'에 있다고 저자는 설명한다. 조선시대 500여 년 내내 10만 명에서 20만 명 내외로 유지되던 한양의 인구가 불과 30여 년 만에 100만 명에 육박하면서 일제강점기의 경성은 엄청난 주택난에 시달리게 된다. 이에 개발자와 개발회사들이 앞다퉈 대규모 필지를 사들이고 택지로 개발해 비싸게 분양에 나섰다.

1920년대와 1930년대를 주름잡은 경성의 3대 주택지로는 삼판통(현재의 후암동 일대)에 개발된 학강 주택지, 장충동 일대에 개발된 소화원 주택지, 죽첨정(현재의 충정로 일대)에 개발된 금화장 주택지를 꼽을 수 있다. 이곳의 주택지는 관사지, 사택지, 문화주택지, 한옥주택지, 아파트, 영단주택지, 부영주택지 등 다양한 형태로 나타났다.

주택지 개발 여파로 경성의 경계는 갈수록 확대된다. 그리고 주택이라는 도시 경관도 크게 바뀐다. 개발회사들은 별도 브랜드를 붙여 신문이나 잡지에 광고하고 분양 팸플릿을 배포하고 기자 설명회를 열어 '이상향'을 선전했다. 이 대목에서 지금의 재개발 건축 현장에서 나타나는 현상들이 데자뷔처럼 절로 떠오른다.

하지만 주택 개발 대상지에 살던 원주민들은 삶의 보금자리에서 쫓겨날 수밖에 없었다. 그 과정에서 대립과 충돌도 끊이지 않았고, 부동산 투기와 같은 사회적 이슈도 항상 따라다녔다. 이 또한 이 시대의 젠트리피케이션 현상과 별반 다름이 없어 보인다.

이번 책은 '우리나라의 대표 한옥단지, 가회동과 건축왕 정세권', '이상적 건강주택지, 후암동', '한양도성 밖 첫 한옥 신도시, 돈암지구', '최신 주거문화의 전시장, 충정로' 등 모두 12꼭지 주제로 해당 지역에서 일어난 주택지 개발과 주택 변화를 살펴본다.

저자는 "20세기 전반기 주택지는 우리나라의 건축·도시사에서 다양한 의미가 있다"며 "500여년간 서울의 물리적 경계였던 도성이 허물어지고, 금산 정책으로 지켰던 국유지와 삼림이 훼손되며 문화주택지가 들어서는 등 조선시대에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일들이 일어났다"고 들려준다. 그 과정에서 이전 시대가 철저히 부정되면서 도시의 성격과 모습이 완전히 바뀌게 됐다는 것이다.

우리나라 최초의 아파트인 충정아파트
우리나라 최초의 아파트인 충정아파트[사진=연합뉴스]

지금의 한국사회는 수도권을 중심으로 아파트 전성기를 맞고 있다. 그렇다면 철근 콘크리트로 지은 최초의 아파트는 어디일까? 서울 서대문구 충정로3가에 있는 '충정아파트'다. 일제강점기인 1930년, 건립자 도요타 다네마츠(豊田種松) 이름을 따서 '도요타아파트'로 명명됐다가 1970년대에 '유림아파트'로, 그 이후엔 지금의 '충정아파트'로 바뀌었다. 층수만 본래 4층에서 5층으로 증축됐을 뿐 거의 90년 동안 한 자리를 지킨 셈이다.

건축으로 보는 한국 근현대사인 이번 저서는 수십 년 동안 서울에 살면서도 무심코 스쳐 지나기 쉬운 주택의 발자취를 속 깊이 알게 한다. 수백 장 건물 사진과 도면, 도시 풍경 자료도 삽입돼 역사의 숨결을 느끼며 시간 여행을 하는 기쁨도 안겨준다.

집. 392쪽. 2만3천원.

경성의 주택지
경성의 주택지

ido@yna.co.kr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2019/12/05 11:11 송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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