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검색 바로가기 메뉴 바로가기
배너
배너
배너

[실시간뉴스]

최종업데이트YYYY-mm-dd hh:mm:ss
검색

백혜선 "쉰을 넘어서야 베토벤을 이해하게 됐습니다"

세계무대 데뷔 30주년 내한공연…8일 베토벤 후기소나타 연주

(서울=연합뉴스) 송광호 기자 = 4일 오후 서울 용산구 한남동 한 카페에서 만난 피아니스트 백혜선(54)은 눈이 붉게 충혈돼 있었다. 그는 전날 부산 공연 후 잠을 제대로 자지 못했다고 한다. 부산 연주는 수십 년간 국내 매니지먼트를 담당한 고(故) 이명아 씨 1주기를 기리는 연주였다. 그는 "아는 사람들이 하나둘 떠나고 있다"고 말했다.

올해로 뉴욕 링컨센터 데뷔 30주년을 맞는 백혜선이 오는 8일 롯데콘서트홀에서 리사이틀을 갖는다. 베토벤 피아노소나타 28번과 31번, 32번을 차례로 선보인다. 모두 베토벤이 쉰을 넘어 쓴 후기 소나타다. 죽음이 조금씩 다가서기 시작할 무렵, 베토벤이 마지막 창작열을 불태운 시기에 만든 작품들이다.

"어린 시절에도 물론 베토벤 후기 소나타를 치긴 했죠. 하지만 돌이켜보면 머리와 손으로 친 곡들이었던 것 같아요. 곡이 가슴까지 직접 와닿지는 않았던 것 같아요."

베토벤 후기 소나타를 가슴 속에 담기 위해서는 오랜 시간이 필요했다. 그동안 온갖 인생의 풍파를 넘으며 자연스럽게 깨달은 점들이 소나타를 해석하면서 녹아들었다. 40대 때는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 게 인생 아닌가"라는 걸 자각했고, 쉰을 넘기고는 "하고 싶은 게 있어도 인연이 아니면 할 수 없다"는 걸 깨닫게 되는 시기를 거쳤다.

"베토벤은 57세에 죽었고, 후기 소나타는 제 나이와 비슷한 시기에 작곡된 작품들이죠. 이제 베토벤이 무슨 말을 하려고 하는지 알겠어요. '아 인생을 돌아보면서 이런 걸 느꼈겠구나'라는 걸 느끼면서 연주해요. 특히 32번은 죽음과 영혼의 세계를 다루고 있죠. 다른 소나타들과는 달리 2악장까지밖에 없어요. 2악장까지 연주하고 나면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됩니다. 할 말을 다 한 것 같은 느낌이랄까요? 힘이 하나도 남지 않아서 도저히 연주를 이어나갈 수 없는 지경에 이르죠."

피아니스트 백혜선
피아니스트 백혜선(서울=연합뉴스) 세계무대 데뷔 30주년을 갖는 피아니스트 백혜선이 오는 8일 서울 롯데콘서트홀에서 베토벤 연주회를 갖는다. 2019.12.5[크레디아 제공·연합뉴스 자료사진. 재판매 및 DB금지]

그는 윌리엄 카펠 콩쿠르를 비롯해 각종 콩쿠르를 우승하고, 세계무대에 데뷔한 지 30년이 됐다. 피아노를 치기 시작한 건 50년 전이다. 피아노 말고 다른 길을 갈까 고민도 많았다고 한다. 각종 콩쿠르에 우승하고 나서도 고민은 계속됐다. 미국에서 회사도 다녀보고, 웨이트리스 아르바이트도 해봤다. "호텔 같은 곳에서 일하면 성공하겠다"는 식당 매니저 말도 들어봤다고 한다. "그때는 음악 말고 무언가 의미 있는 일을 찾고 싶은 마음이 컸다"고 했다.

하지만 차이콥스키 국제콩쿠르에서 한국인으로는 처음으로 입상하면서 그의 삶은 연주자, 교육자 길로 굳어졌다. 그는 1994년 이 콩쿠르에서 1위 없는 3위를 기록해 입상 연주회까지 했다.

"전설적인 피아니스트들이 섰던 홀이에요. 피아니스트뿐 아니라 오이스트라흐(바이올리니스트) 같은 거장도 섰던 무대죠. 여러 무대(카네기홀, 링컨센터, 보스턴 조단홀, 베를린 필하모닉홀, 비엔나 뮤지크페라인 등)에 섰지만 지금도 가장 기억에 남는 무대입니다."

50년이나 피아노를 쳤으니 슬럼프도 당연히 겪었다. 하지만 그는 슬럼프도 삶의 한 부분이라고 했다. 오히려 자기 자신을 체크할 중요한 시기라고도 했다.

"지금도 슬럼프예요. 가르치는 걸 제대로 해, 연주를 제대로 해 (웃음). 하지만 슬럼프를 좋게 쓰면 됩니다. 남과 비교하고, 남 얘기에 치중할 때, 인생은 불행으로 치달아요. 자기 체크업이 중요한 것 같아요. 자기 자신을 늘 의심하고, 그걸 기반으로 열심히 하면 긍정적인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백혜선은 현재 미국 뉴잉글랜드 음악원에서 교수로 활동한다. 대구 가톨릭대학에서는 약 10년 전부터 석좌교수로 학생들에게 '원포인트 레슨'을 한다. 다시 교편을 잡게 된 건 후학들에게 무언가 좋은 영향을 전해주기 위해서란다. 그는 지난 2005년 10년간 서울대 교수 생활을 마무리한 후 미국으로 이주했다.

"인생은 어차피 자기가 계획한 대로 절대 되지 않기 때문에 목표를 크게 잡을 필요가 없는 것 같아요. 그저 자기가 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 남들에게 긍정적인, 선한 영향을 주면 그걸로 족하죠. 나를 만나는 누군가가 긍정적인 영향을 받는다면, 그것만큼 좋은 것도 없을 것 같아요."

피아니스트 백혜선
피아니스트 백혜선 (서울=연합뉴스) 세계무대 데뷔 30주년을 갖는 피아니스트 백혜선이 오는 8일 서울 롯데콘서트홀에서 베토벤 피아노소나타를 연주한다. 2019.12.5[크레디아 제공·연합뉴스 자료사진. 재판매 및 DB금지]

buff27@yna.co.kr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2019/12/05 07:00 송고

광고
댓글쓰기
배너
광고
AD(광고)
광고
많이 본 뉴스
많이 본 뉴스
종합
정치
산업/경제
사회
전국
스포츠
연예ㆍ문화
세계
더보기
광고
광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