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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마약 보고서]⑥'마약은 평생 굴레'…엄마 마약상의 회한

10대 중반에 임신…육아·남편 옥바라지 위해 마약 판매 시작
12년간 마약 끊었지만, 아들 위해 전 재산 내놓고 다시 무너져
중년에 새 삶 도전하지만, 가족 잃을까 걱정

(서울=연합뉴스) 탐사보도팀 = 10대 중반에 아이 엄마가 됐고 생계를 위해 20대에 자의 반 타의 반 마약상의 길로 들어선 여성이 있다. 한번 씌워진 마약의 굴레는 그녀의 삶을 송두리째 옭아맸다. 상습 투약까지 하게 된 그는 평생 4차례나 감옥을 들락거려야 했다.

중년의 나이에 네 번째 옥살이를 마친 그는 새 삶을 계획하고 있지만, 자신의 '실체'를 알게 된 아들로부터 버림받지 않을까 걱정하며 불안한 삶을 산다.

그녀는 마약의 굴레를 벗지 못했던 자신의 삶이 부끄럽다. 하지만 자신의 이야기가 마약에 빠진 사람들을 일깨울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인터뷰에 응했다고 한다.

[장현경 제작] 일러스트(PG)
[장현경 제작] 일러스트(PG)

B는 10대 중반에 임신했다. 아이의 아빠는 이른바 '조직'에 몸담은 사내였다. 사람들은 그를 '건달'이라 불렀다. 원치 않은 임신이었지만 B는 뱃속에서 움트기 시작한 생명을 차마 버릴 수 없어 엄마가 되었다.

소꿉장난처럼 시작한 결혼생활. 2년 만에 아이는 둘로 늘었는데 남편이 교도소에 가면서 B는 가장이 됐다.

가족을 건사하기 위해 처음 시작한 건 포장마차. 술과 안주를 팔아 아이들을 키우고 남편 옥바라지도 했다. 남편과 같은 조직에 있던 '삼촌들'도 챙길 수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남편의 지인들이 '약 장사'를 권했다. 돈이 된다는 말에 B는 27살에 필로폰 판매상이 됐다.

"남편 없이 아이 둘을 데리고 혼자 살다 보니 이성적인 판단이 안 됐어요. 잘못이라는 저기(인식이) 없이 그냥 시작한 거예요. 또 내가 교육도 못 받았고 특별하게 할 수 있는 것도 없었어요. 막막하니까 그냥 살아야 한다는 생각에 뛰어든 거죠." B는 남편 선배의 소개로 '물건'을 받고 거래처도 텄다.

"이윤이 남으니 욕심이 생겼어요. 아이들에게 더 잘 해주고 싶고 남편에게 변호사도 사주고 싶었어요. 어렵게 보이던 일들이 쉽게 빨리빨리 해결되니까 그냥 그렇게 살았던 거죠"

마약을 5년쯤 팔고 나서 B는 급기야 자기 팔에도 주사기를 꽂았다. 사람들이 마약을 왜 좋아하는지 호기심이 생겼기 때문이란다.

그렇게 상습 투약자까지 하게 된 그녀를 누군가 경찰에 신고했다. 지명수배를 받게 된 그는 어쩔 수 없이 중학생, 초등학생이던 두 아들을 남겨두고 강원도 속초에 몸을 숨겼다. 한동안 휴대전화도 끄고 숨어 지내던 그는 서울 청량리 집창촌에서 물건을 주문하던 옛 친구를 만나러 갔다가 경찰에 체포됐다.

너무 반가워서 손톱만큼도 의심하지 않았고, 친구를 보자 자신도 모르게 "숨을 쉴 수 있게끔 맛이나 보고 괜찮으면 구해주겠다"는 말을 뱉어버렸다. '숨을 쉰다'는 말은 중독자가 마약 공급을 받고 한숨 돌린다는 의미의 은어다.

[장현경 제작] 일러스트(PG)
[장현경 제작] 일러스트(PG)

그 순간 잠복했던 경찰관들이 그녀를 덮쳤다. 친구 옆구리에 숨겨져 있던 소형 녹음기도 모습을 드러냈다.

감옥에 가기가 죽기보다 싫었던 B는 호송차에서 뛰어내렸다. 입고 있던 하얀 원피스가 피로 물들었고 도주는 실패였다. B는 10개월간 첫 옥살이를 했다.

두 번째 수감생활을 하게 된 건 첫 출소 후 한 달이 채 안 되어서다. '감방 동기'에게 마약을 구해준 사실이 탄로가 나 의정부 교도소에서 6개월을 살았다.

세 번째 감옥살이는 그로부터 3년 뒤였다. 평범하게 살겠다며 전에 사귀던 남자와 헤어진 것이 화근이었다. 옛 남자친구는 '작업'을 해 그를 경찰에 넘겼다. '작업'이란 마약 사범이 다른 마약범을 수사기관에 넘기는 걸 이른다. B는 그렇게 또 1년간 감옥 생활을 했다.

세 번째 옥살이 후 B는 12년이나 마약을 끊었다.

"가족을 위한다고 시작한 건데 투약을 하면서부터 (그런 생각은) 묻히고 내 저기가(투약 욕망이) 더 커지더라고요. 식구들도 접견을 오지 않아 정말 이래선 안 되겠구나. 자식들에게까지 버림받으면 안 되겠구나 해서 딱 끊어버렸어요"

약을 끊은 그는 대리운전 사업도 시작했다.

"정신없이 일하니까 약 생각도 안 났고 주변에서 부추겼지만, 더 냉정하게 저기(거절)를 했어요. 시간이 지나니까 잊게 되더라고요. '한 번 쯤이야'라는 유혹도 많았지만 잘 견뎠죠"

그러나 위기는 또 찾아왔다. 직장에서 공금을 횡령해 구속 위기에 처한 아들을 구하려고 사업을 정리했다. 아들이 횡령한 돈을 대신 갚아주고 나니 남는 게 수중에 아무것도 없었다.

"전 재산을 털어 합의하고 나니 아무것도 남은 게 없잖아요. 자식은 남았지만 그래도 헛헛하더라고요. 그때 갱년기까지 같이 온 거예요. 낮에 눈을 뜨는 게 무섭더라고요. 그냥 아무도 없는 것 같고 다 잃어버린 것 같고…"

그렇게 B는 12년간 끊었던 필로폰에 다시 손을 댔다.

그리고 곧 같은 일을 하는 남자를 만나 다시 마약판매에 나섰다. B가 운전을 하고 남자는 손님에게 약을 건넸다. 얼마 후 남자가 구속되자 B는 다시 본격적인 판매상이 됐다.

[장현경 제작] 일러스트(PG)
[장현경 제작] 일러스트(PG)

가는 빗방울이 황사를 가르며 내리던 2018년 5월 23일 아침. B는 강남 고속버스터미널 소화물 취급소에서 짐을 찾았다. 필로폰 30g이었다. 돈은 택배를 찾은 직후 바로 거래처 대포통장으로 보냈다.

그리고 빨대와 휴대용 초정밀 저울을 이용해 1g, 5g, 10g 단위로 약을 소분했다. 지퍼백에 소분한 약을 나눠 담고 서류 봉투로 지퍼백을 쌌다.

자정이 지나자 그는 약속 시각에 맞춰 대림동으로 차를 몰았다. 며칠 전 11g의 마약을 주문한 단골과 거래하기 위해서였다. 단골은 조선족 전용 마작·카드 도박장에 마약을 공급하는 사람이었다.

B의 마약 전달 방식은 이랬다. 우선 약속장소에서 한 정거장 거리에 차를 세운다. 시동은 켜 놓는다. 차에서 내린 뒤 뛰어가 물건을 넘기고 다시 숨 가쁘게 뛰어 차로 돌아온다. 경찰의 눈을 피하기 위한 이런 거래 방식 덕에 B는 3년간이나 마약 판매일을 유지할 수 있었다고 한다.

그날도 이런 방식으로 거래에 성공했다고 생각했지만 그게 아니었다. 이튿날 차를 몰고 아파트 주차장을 막 돌아나가려 할 때 누군가 그의 차를 가로막았다.

"B씨?" "아닌데요"라고 B는 답했다. 본능적인 거짓말이었다. 당시 그는 체포될 때를 대비해 빈 약 캡슐에 꿩 사냥용 독약을 넣어 품고 다녔다. 감옥에 가는 게 죽기보다 싫었던 탓이다.

형사는 속지 않았다. "에이 선수끼리 왜 이래"라는 말을 뱉은 형사는 차 밖으로 나온 B의 손목에 수갑을 채웠다.

아파트 경비원이 당시 상황을 물끄러미 지켜봤다. 평범한 시민인 척 살아왔던 자신의 정체가 탄로나자 B는 너무 창피했다. 그대로 주저앉아 수갑만 풀어달라고 애원했지만, 형사는 B의 팔을 꺾어 제압한 뒤 수갑을 채웠다.

B는 그렇게 잡혀서 또 1년 4개월 교도소살이를 했다. 이번에는 작은아들까지 B가 마약상이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이전까지 어린 아들은 B의 수감 사실을 몰랐거나, B가 가짜 명품을 팔다가 상표법 위반으로 감옥에 갔던 거로 알고 있었다고 한다.

성인이 된 아들은 큰 충격을 받은 듯했고 B를 만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4번째 수감생활을 마친 B에게 어쩌면 앞으로 한두 번은 약을 더 할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있다. 하지만 현재로선 마약에 손을 대지 않을 자신이 있다고 했다.

늦게나마 정상인으로 살기 위해 서비스 직종의 일자리를 얻었고 관련 자격증 시험도 봤다. 다음 달 자격증이 나오면 B는 일에 더 큰 애착을 가질 수 있을 터다. 하지만 중년이 된 B가 가장 걱정하는 것은 가족을 잃고 외롭게 노년을 맞이하는 일이다.

[장현경 제작] 일러스트(PG)
[장현경 제작] 일러스트(PG)

ohyes@yna.co.kr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2019/11/29 07:30 송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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