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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희용의 글로벌시대] 만주와 경희대, 하와이와 인하대

서울 중구 명동에 이회영·이시영 형제 집터를 알리는 표지석과 이회영 흉상이 세워져 있다. [연합뉴스 자료사진]
서울 중구 명동에 이회영·이시영 형제 집터를 알리는 표지석과 이회영 흉상이 세워져 있다. [연합뉴스 자료사진]

(서울=연합뉴스) 이회영과 이시영을 비롯한 6형제는 1910년 한일합병이 강행되자 전 재산을 팔아 독립자금을 마련한 뒤 그해 12월 60여 명의 식솔을 이끌고 압록강을 건넜다. 이들 가문은 10대조 이항복이 선조 때 영의정을 지낸 이래 이조판서였던 부친 이유승에 이르기까지 정승·판서만 9명을 배출해 삼한갑족(三韓甲族)으로 불렸다.

명문가 집안이 모두 해외로 집단 망명해 독립투쟁을 벌인 것은 우리나라 역사상 유일할 뿐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사례를 찾기 어렵다. 이들 형제는 한 명도 변절하지 않고 중국을 무대로 항일운동에 몸을 바쳐 이른바 '노블레스 오블리주'(높은 사회적 신분에 상응하는 도덕적 의미)의 본보기가 됐다.

지난 6월 1일 강원도 춘천 백령아트센터에서 무대를 꾸민 육군 창작뮤지컬 '신흥무관학교'. [육군 제공]
지난 6월 1일 강원도 춘천 백령아트센터에서 무대를 꾸민 육군 창작뮤지컬 '신흥무관학교'. [육군 제공]

이회영 일가의 빛나는 투쟁 업적 가운데 첫손에 꼽히는 것은 신흥무관학교 설립이다. 이들은 이상룡·이동녕·김동삼 등 서간도의 독립운동 지도자들과 협의해 중국 길림성(吉林省) 유하현(柳河縣) 삼원보(三源堡)에 근거지를 마련한 뒤 경학사(耕學社)를 결성하고 1911년 6월 10일 신흥강습소를 세웠다.

'낮에는 밭 갈고 밤에는 배운다'는 뜻의 경학사는 재만(在滿) 한인 자치단체를 표방했지만 사실은 항일단체였고, 독립군을 양성하기 위한 신흥강습소도 만주 군벌의 감시를 피하기 위한 이름이었다. 신흥(新興)은 새롭게 나라를 일으키겠다는 뜻이다. 1912년 7월 20일 길림성 통화현(通化縣) 합니하(哈泥河)로 옮긴 이듬해 신흥학교로 개명한 데 이어 1919년 5월 3일 유하현 고산자(孤山子)로 이전하며 신흥무관학교 간판을 달았다. 올해는 신흥강습소 창립 108주년이자 신흥무관학교 정식 개교 100주년이다.

신흥무관학교는 일제의 탄압과 마적의 습격 등으로 1920년 8월 문을 닫을 때까지 9년여 동안 2천100여 명의 졸업생을 배출했다. 이들이 홍범도의 대한의용군과 김좌진의 북로군정서 등의 중추가 돼 봉오동과 청산리 전투에서 맹활약했다. 국무총리를 지낸 변영태와 이범석, 김법린 전 문교부 장관, 김원봉 의열단장, 윤세주 조선의용군 부대장, '아리랑'의 주인공 김산(본명 장지락), 송호성 초대 국방경비대 사령관, 오광선 광복군 국내지대장 등이 신흥무관학교 출신이다.

1945년 해방을 맞아 고국으로 돌아오기 위해 중국 상하이 공항에 모인 임시정부 요인들. 꽃다발을 목에 걸고 가운데 서 있는 인물이 김구, 오른쪽에 중절모를 쓰고 손으로 눈물을 닦는 인물이 이시영, 김구 앞에 선 소년이 이종찬이다. [우당기념관 제공]
1945년 해방을 맞아 고국으로 돌아오기 위해 중국 상하이 공항에 모인 임시정부 요인들. 꽃다발을 목에 걸고 가운데 서 있는 인물이 김구, 오른쪽에 중절모를 쓰고 손으로 눈물을 닦는 인물이 이시영, 김구 앞에 선 소년이 이종찬이다. [우당기념관 제공]

6형제 가운데 살아서 광복을 본 인물은 다섯째 이시영이 유일했다. 환국한 그는 신흥무관학교 부활위원회를 조직해 독지가들로부터 성금을 모았다. 1947년 2월 서울 종로구 수송동에 신흥전문학원을 설립한 데 이어 2년 뒤 신흥대학으로 승격시켰다. 문교부 인가 서류를 보면 설립자는 이시영이고, 법인명은 그의 호를 딴 성재학원이다. 개교일은 1949년 2월 15일이지만 신문광고 등에는 창립일을 1911년 6월 10일로 기재해 뿌리가 신흥무관학교임을 분명히 했다. 올해는 신흥대학 개교 70주년이기도 하다.

신흥대학은 1949년 7월과 1950년 5월에 각각 1·2회 졸업생을 배출했으나 한국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경영난에 빠졌다. 1951년 5월 18일 조영식이 인수한 뒤 1960년 경희대로 교명을 바꿔 오늘에 이르고 있다. 항간에는 이시영이 부통령직을 사임하며 이승만 대통령과 대립하는 과정에서 정치적 개입이 있었다는 소문이 흘러나왔다. 이시영의 아들 이규창은 조영식을 상대로 개명 무효 소송을 제기했다가 숨지는 바람에 법정 공방이 일단락됐다.

서울 종로구 수송공원에 세워진 신흥대학 표지석. 신흥무관학교의 후신인 신흥대학은 1949년 3월 정식으로 인가받아 이 자리에서 개교했다. [연합뉴스 자료사진]
서울 종로구 수송공원에 세워진 신흥대학 표지석. 신흥무관학교의 후신인 신흥대학은 1949년 3월 정식으로 인가받아 이 자리에서 개교했다. [연합뉴스 자료사진]

그러나 경희대 인터넷 홈페이지의 연혁에는 '▲ 1949.2 = 1946년 설립된 배영대학관을 모체로 재단법인 성재학원 설립 ▲ 1949.5 = 신흥초급대학(2년제) 설립 인가 ▲ 1951.5 = 6ㆍ25 전쟁으로 재정난에 봉착했던 재단을 조영식 박사가 당시 1천500만 원의 부채를 부담하는 조건으로 인수'라고만 표기해놓았다.

경희총민주동문회와 신흥무관학교기념사업회는 몇 해 전부터 경희대 뿌리 찾기 운동을 펼치고 있고, 경희대 총동문회와 총학생회는 지난해 12월 협약식을 체결하고 신흥무관학교 역사 알리기에 나섰다. 이회영의 손자이자 이시영의 종손자인 이종찬 우당기념관장(전 국가정보원장)과 이종걸 국회의원도 언론 인터뷰에서 "인제 와서 학교를 되찾자는 게 아니라 신흥무관학교의 자랑스러운 역사를 되살리자는 것"이라고 밝혔으나 조영식의 아들 조인원 경희대 이사장은 이렇다 할 입장을 내놓지 않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2월 21일 경기도 부천의 유일한 박사 묘소를 참배한 뒤 이권현 유한대 총장의 안내를 받아 이동하고 있다. [청와대 제공]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2월 21일 경기도 부천의 유일한 박사 묘소를 참배한 뒤 이권현 유한대 총장의 안내를 받아 이동하고 있다. [청와대 제공]

이시영뿐만 아니라 광복을 맞은 독립운동가들은 새로운 나라를 건설하려면 인재 양성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사실을 절감하고 대학 설립에 뛰어들었다. 신익희의 국민대와 경남대, 장형·조희재의 단국대, 차미리사의 덕성여대, 유일한의 유한대, 한항길의 부천대, 이영식의 대구대 등이 대표적이다.

조선 성균관을 계승한다고 선언한 성균관대는 광복 후 김창숙이 유림을 규합해 설립했으며 지금은 삼성그룹이 재단을 맡고 있다. 홍익대는 대종교 지도자 이흥수 초대 이사장에서 2대 이도영 이사장으로 넘어간 과정을 둘러싸고 유족 간에 최근까지 분규가 끊이지 않았다. 건국대 설립자 유석창은 젊은 시절 아버지 유승균을 따라 만주에서 독립운동에 가담했고, 지금은 없어진 국학대도 독립운동가 정인보가 세웠다.

인하대 설립 성금을 낸 하와이 동포들이 개교 이듬해인 1955년 10월 26일 인하대를 방문해 인천 차이나타운의 중국음식점 공화춘에서 식사하고 있다. [인하대 제공]
인하대 설립 성금을 낸 하와이 동포들이 개교 이듬해인 1955년 10월 26일 인하대를 방문해 인천 차이나타운의 중국음식점 공화춘에서 식사하고 있다. [인하대 제공]

인하대는 1952년 하와이 동포 이주 50주년 기념사업의 하나로 이승만 대통령이 발의해 출범했다. 인천시가 기증한 교지에다가 이승만이 하와이에 세운 한인기독학원 매각 대금, 하와이 동포들의 성금, 국내 독지가 성금, 국고 보조금 등을 합쳐 1954년 인하(仁荷)공과대학이란 이름으로 문을 열었다. 교명은 인천과 하와이에서 한 자씩 딴 것이다. 1968년부터는 한진그룹이 재단을 운영하고 있다.

광복 후 70여 년이 지나는 동안 독립운동가들의 창학 정신은 많이 퇴색했다. 오늘날 대학들의 뿌리를 기억하는 학생도 드물고 대학에서도 애써 가르치려 들지 않는 듯하다. 심지어 역사를 윤색하며 연혁을 바꾸거나 설립자를 감춘 곳도 있다.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과 신흥무관학교 정식 개교 100주년을 맞아 우리 모두 애국지사들이 인재 양성에 힘을 쏟은 뜻을 되새기고 그 정신을 이어받고자 다짐해보자. (한민족센터 고문)

heeyong@yna.co.kr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2019/11/08 07:01 송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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