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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 '해체 시대' 준비하는 고리 1호기…주민갈등·제도미흡 난관

송고시간2019-10-30 15:00

5부 능선 넘은 신고리 5·6호기 건설…'마지막' 신규원전 가능성

고리 1호기 전경
고리 1호기 전경

[한국수력원자력 제공]

(울산=연합뉴스) 고은지 기자 = '원자로 출력 0'.

지난 29일 찾은 부산 기장군 한국수력원자력 고리원자력본부 고리 1호기의 주제어실 내 원자로의 출력을 보여주는 제어판에는 0이라는 숫자가 떠 있었다.

또 대부분 기기에 '영구정지'라고 쓰인 파란색 스티커가 붙은 상태였다.

고리 1호기가 40년의 상업운전을 마치고 2017년 6월 18일 자정을 기해 영구정지되면서 냉각 설비와 화재 대비 장치 등 안전·관리 설비를 제외하고 원자로 운전을 위한 기기는 모두 멈춰 섰기 때문이다.

발전소 내부에는 '새로운 시작! 안전한 관리! 완벽한 해체 준비!'라고 쓰인 현수막도 눈에 띄었다.

고리 1호기는 1972년 건설·운영허가를 받아 1978년 4월 29일 상업운전을 개시했다.

당시 고리 1호기 건설은 총 1천560억원이 투입된 한국 역사상 최대 규모의 단위산업이었다. 경부고속도로 건설비의 4배, 1972년 정부 예산의 약 30%에 달하는 규모다.

한국은 고리 1호기 건설로 세계에서 21번째로 원전을 보유한 나라가 됐다.

고리 1호기는 2007년 6월 설계수명 30년이 만료됐지만 같은 해 12월 계속운전 허가를 받았고 8년을 더 운전한 뒤 2015년 6월 15일 산업부 영구정지 권고, 한수원 이사회의 계속운전 미신청에 따라 2017년 6월 18일 완전히 가동을 멈췄다.

한국의 첫 원전이자 첫 퇴역 원전인 고리 1호기는 이제 새로운 시대를 맞을 준비를 하고 있다.

고리 1호기 내에서는 국내 첫 해체 작업에 들어가는 원전이 될 사전 작업이 차분하게 진행되고 있었다.

더는 정상운전을 하지 않지만 고리 1호기 발전소는 사용후핵연료를 안전하게 관리하기 위한 냉각설비, 전력설비, 방사선 감시 설비 등이 그대로 운영 중이고 운전원들도 근무하고 있었다.

다만 정상운전일 때는 10명이 한조로 6개조가 24시간 교대근무를 했지만, 지금은 절반인 5명이 한조로 5개조가 교대근무를 한다.

한수원 권양택 고리1발전소장은 "지진을 비롯한 각종 자연재해와 화재 등에서 안전하도록 필요한 인원을 배치한 것"이라고 말했다.

사용후핵연료 저장소
사용후핵연료 저장소

[한국수력원자력 제공]

고리 1호기 해체는 사용후핵연료 인출, 냉각 및 안전관리에 5년 이상이 소요되고 한수원이 해체계획서를 제출해 규제기관으로부터 승인을 받으면 본격적인 해체 작업에 들어간다.

원전 해체는 수십년간 방사선 방출량이 줄어들 때까지 기다려 해체하는 '지연해체'와 영구정지 후 바로 해체 작업에 들어가는 '즉시해체'가 있는데 고리 1호기는 후자의 방식을 채택했다. 한수원 최득기 안전관리실장은 "지연해체는 원전 해체 기술이 미흡하거나 관련 법규가 없는 나라들이 주로 채택한다"며 "한국은 국내에서 개발한 기술을 통해 단독 즉시해체하는 방식으로 갈 것"이라고 설명했다.

2017년 영구정지 당시에는 2022년부터 본격적인 해체 작업에 들어가는 것으로 계획했으나 그보다는 다소 시간이 더 걸릴 전망이다.

부산 기장군과 울산 울주군 간 이견으로 인해 올해 6∼12월 중 진행하기로 한 주민공청회도 아직 시행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고리 1호기는 기장군 관할 내 있다. 하지만 현행법상 주민 의견을 수렴하는 지방자치단체는 기장군이 아니라 바로 옆 울주군으로 돼 있다.

원자력안전법 시행령은 원자력 시설이 둘 이상 지자체에 걸칠 때 면적이 가장 많이 포함되는 지역이 의견 수렴을 주관하도록 했다.

하지만 기장군은 원전 시설물이 있는 기장군에서 해체 절차와 관련한 주민 의견 수렴 절차를 주관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최 실장은 "내부적으로는 해체계획서 초안을 작성한 상태지만, 주민의견 수렴과 관련한 법 개정 논의가 이뤄지고 있어 아직 공청회를 시행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추후 해체신청서가 승인되면 본격적인 해체 작업에 들어가고 고리 1호기가 나간 발전소 부지는 녹지로 조성할 예정이다.

신고리 5·6호기 건설현장
신고리 5·6호기 건설현장

[한국수력원자력 제공]

고리 1호기 해체는 국내 원전산업에도 큰 전환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한수원 관계자는 "1960∼1980년대 건설한 원전의 설계수명이 만료되는 2020년대 이후에는 해체 시장이 본격적으로 확대돼 100년간 해체 시장 규모는 549조원에 달할 전망"이라며 "한수원은 정부와 협력해 관련 기술 확보에 주력하고 있다"고 밝혔다.

해체를 앞둔 고리 1호기와 작은 하천 하나를 경계로 울주군에 있는 새울원자력본부에는 반대로 신고리 5·6호기의 건설 작업이 한창이었다.

신고리 5·6호기는 2016년 6월 착공해 지난달 말 기준 약 50%의 공정률을 기록했다.

2023년 3월 준공 예정인 5호기는 돔 격납건물철판 조립에 들어갔고 그보다 1년 3개월 뒤 지어질 6호기는 원자로 건물 외벽공사가 진행 중이었다.

신고리 5·6호기는 당초 2014년 9월에 공사를 시작해 2022년 10월 준공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문재인 대통령이 2017년 6월 19일 '탈핵 시대'를 선포하면서 한국수력원자력 이사회는 같은 해 7월 14일 공정이 28%까지 진행된 상태에서 공론화를 위해 신고리 5·6호기 공사를 일시 중단했다.

신고리 5·6호기 공론화위원회는 3개월의 숙의 기간을 거쳐 10월 20일 정부에 건설재개를 권고했다.

다만 정부는 에너지전환 로드맵을 통해 신한울 3·4호기, 천지 1·2호기, 아직 건설 장소나 이름을 정하지 않은 2개 호기 등 총 6기의 신규 원전 계획은 백지화했다.

한수원은 지난해 6월 긴급 이사회를 열어 월성 1호기 조기 폐쇄 및 신규 원전 4기(천지·대진) 건설 취소를 의결하고 신한울 3·4호기는 보류 조치했다.

만약 신한울 3·4호기 건설이 이뤄지지 않는다면 신고리 5·6호기가 새로 지어지는 마지막 원전이 될 전망이다.

신고리 5·6호기 건설 현장 옆에는 지난 8월 상업운전을 시작한 신고리 4호기가 눈에 띄었다.

신고리 4호기는 사우디아라비아 수출에 성공한 한국형 차세대 원전인 'APR1400'과 같은 모델이다.

APR1400 원전은 기존 한국형 원전인 'OPR1000'을 개량한 차세대 원전으로 1992년부터 약 10년간 2천300억원을 들여 개발했다.

신고리 3·4호기 전경
신고리 3·4호기 전경

[한국수력원자력 제공]

이름 중 APR은 '개선된 원전'(Advanced Power Reactor)의 영문 첫 글자에서 각각 따왔고 1400은 발전용량이 1천400MW급이라는 의미다.

주제어실에는 APR1400 이름보다 약 100MW 많은 1천490여MW의 원자로 출력량이 표시됐다.

주제어실과 어마어마한 소음이 나는 터빈룸을 돌아 사용후연료저장조로 가니 푸른색 물, 붕산수가 가득 찬 수조가 보였다.

신고리 4호기는 상업운전을 시작한 지 얼마 안 돼 아직 보관 중인 사용후연료가 없지만, 앞으로 신고리 4호기에서 쓰고 난 연료는 이곳으로 이동해 보관·냉각된다.

한수원은 원전 견학 내내 원전의 안전성에 대해 자부심을 드러냈다.

강진·쓰나미 등 자연재해로부터 안전하게 겹겹의 안전망을 설치한 것은 물론, 미사일이나 여객기가 원자로 외벽에 부딪혀도 끄떡없다는 것이다.

한수원 관계자는 "국내 원전은 아무리 극한 재해 상황에서도 사고가 일어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강조했다.

한수원 정재훈 사장은 "건설, 운영, 정비, 해체 등 원전의 전 주기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안전"이라며 "고리 1호기 해체에도, 신고리 4호기 운영에도, 신고리 5·6호기 건설에도 안전에 안전을 더할 것"이라고 말했다.

eu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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