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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바논 시위대 맨 앞에는 엄마와 딸들이 있었다

송고시간2019-10-24 16:44

獨공영 DW "여성 시위대, 비폭력 유지하는 힘…종족·종교 구분없이 연대"

중동 남성들, 희화화·성적 대상 삼으며 불편한 기색 드러내기도

23일 레바논 베이루트에서 시위 진압부대와 대치한 여성 시위대
23일 레바논 베이루트에서 시위 진압부대와 대치한 여성 시위대

[AFP=연합뉴스]

(서울=연합뉴스) 하채림 기자 = 이달 17일 레바논 수도 베이루트의 반정부 시위대 옆을 교육부 장관의 차량 행렬이 지나가자 급격히 긴장이 고조했다.

불상사를 우려한 경호원이 차량 밖으로 나와 밤 하늘을 향해 발포했고, 이는 시위대를 더욱 자극했다.

일촉즉발의 순간, 시위대에서 한 젊은 여성이 튀어나와 무장 경호원의 사타구니를 걷어찼다.

주위를 둘러본 경호원은 비무장 여성 시위대에 반격해 봐야 얻을 게 없다는 걸 직감하고는 대응을 포기했고, 주변의 긴장도 급격히 풀렸다.

이 순간을 담은 영상은 온라인과 소셜미디어에서 '레바논의 라라 크로프트'라는 별명과 함께 순식간에 큰 화제가 됐다.

라라 크로포트는 컴퓨터 게임과 영화에 등장하는 여전사 캐릭터다.

22일 베이루트 거리에 모인 여성 시위 참가자들
22일 베이루트 거리에 모인 여성 시위 참가자들

[로이터=연합뉴스]

정부 부패와 경제난으로 누적된 불만이 정부의 '왓츠앱' 등 온라인 메신저 부담금 부과계획을 계기로 이달 17일 대규모 시위로 분출했다.

시위 주제는 종파나 종종 갈등 등 정치·이데올로기보다는 삶의 문제이기에 여성들도 적극적으로 동참, 부패 척결과 실업난 해소를 요구하며 목소리를 높였다.

익명을 요구한 여성 참가자는 영국 일간 가디언에 "정치인들이 우리 급여와 생계를 빼앗았다"면서 "하나 있는 아들을 학교에도 못 보내는 형편"이라고 비판했다.

시위 영상을 보면 확성기를 잡고 구호를 외치거나 시위대 최일선에 선 여성이 어김없이 등장한다.

레바논의 라라 크로프트 영상이 보여주듯이 여성의 적극적 참여는 대규모 반정부 시위가 비폭력 노선을 유지하게 하는 힘이 되고 있다고 독일 공영 도이체벨레(DW) 영어판이 24일 보도했다.

 23일 베이루트의 반정부 시위대와 진압 부대
23일 베이루트의 반정부 시위대와 진압 부대

[AFP=연합뉴스]

영상 속 여성 시위 참가자들은 히잡을 쓴 중년 무슬림과 짧은 소매로 신체를 드러낸 세속주의자까지 인종, 나이, 종교를 가리지 않는다.

베이루트는 수니파와 시아파 무슬림, 기독교인, 드루즈인 등이 혼재된 사회로, 중동권의 다른 대도시와 달리 평소 거리에서도 다양한 차림새 여성을 볼 수 있다.

'소녀 결혼', 즉 조혼(早婚) 반대나 성폭력 가해자 면책 결혼 반대 운동이 거세게 일기도 했다.

이번 반정부 시위가 전국적 대규모 시위로 이어지고 국제사회의 주목을 받으면서 레바논 시위대 속 여성의 모습이 중동 여권운동(페미니즘)계와 여성 전체에 영감을 불어넣고 있다고 DW는 진단했다.

이집트 여성계 인사 헨드 엘콜리는 페이스북 계정에 "남자다움이 무엇인지 알고 싶다면 레바논 시위 현장에서 볼 수 있다"고 적었다.

콜리는 "시위대 여성들은 안전을 느낀다. 어떤 남성도 여성의 자유를 제한하려 하지 않고, 여성을 언어나 힘으로 괴롭히려 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22일 베이루트의 거리에 모인 반정부 시위대
22일 베이루트의 거리에 모인 반정부 시위대

[로이터=연합뉴스]

중동의 남성들은 이러한 모습을 우스갯거리로 삼거나 성적 대상물로 소비하면서도 불안을 드러냈다.

한 이집트 남성은 소셜미디어에 "TV로 레바논 시위를 보고 있었는데, 아내가 들어오기에 재빨리 예멘 내전 뉴스로 채널을 돌렸다"고 '농담조'로 썼다.

사우디아라비아의 한 매체가 여성 시위대를 '레바논 미녀들'로 지칭하며 "멋진 혁명가들"이라고 묘사하자 레바논 소셜미디어에는 "변태적 언어를 쓰는 불쌍한 언론"이라는 비난이 쇄도했다.

tre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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