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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경 "미술관은 오늘날 몇 안 남은 희망의 장소"(종합)

송고시간2019-10-24 17:31

중견 미디어아티스트 겸 영화감독…국립현대미술관·현대차 시리즈 통해 개인전

재난 일상화한 동시대 비춘 작업 전시…'모임' 장으로서 미술관 주목

박찬경 신작 '늦게 온 보살'
박찬경 신작 '늦게 온 보살'

(서울=연합뉴스) 국립현대미술관(MMCA)이 26일부터 서울관에서 'MMCA 현대차 시리즈 2019: 박찬경-모임' 전시를 연다고 24일 밝혔다. 사진은 이번에 공개된 '늦게 온 보살'(2019) 한 장면. 2019.10.24 [홍철기 촬영·국립현대미술관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photo@yna.co.kr

(서울=연합뉴스) 정아란 기자 = 영화 배경은 깊은 산 속이다. 젊은 여성 손에 들린 방사능 오염도 측정기는 그곳이 산속이라는 점을 무색하게 한다. 뒤늦게 도착한 중년 여성이 바닥에 놓인 관을 열자 발이 덜컥 튀어나온다. 열반에 든 석가모니가 뒤늦게 나타난 애제자에게 두 발을 내밀어 보였다는 곽시쌍부(槨示雙趺) 이야기가 떠오른다.

24일 종로구 소격동 국립현대미술관(MMCA) 서울에서 공개된 박찬경(54) 신작 '늦게 온 보살'이다. 미디어 아티스트로 왕성하게 활동하면서 영화에도 입문한 박찬경은 중진 작가 개인전 'MMCA 현대차 시리즈'의 6번째 주인공이다.

강원도 평창과 서울 북한산·인왕산 등지를 돌며 촬영한 '늦게 온 보살'은 생과 사, 불교 설화, 방사능 오염, 현대미술 등을 뒤섞었다. 흑백 네거티브 방식 때문에 번들거리는 얼굴들은 언뜻 기괴하다. '늦게 온 보살'은 그 흑백 네거티브 화면을 고리로 건너편 영상 작품 '후쿠시마, 오토래디오그래피'와 다시 이어진다.

국립현대미술관에 전시된 박찬경 '늦게 온 보살'
국립현대미술관에 전시된 박찬경 '늦게 온 보살'

(서울=연합뉴스) 국립현대미술관 'MMCA 현대차 시리즈' 전시를 통해 공개된 '늦게 온 보살'(2019) 한 장면. 2019.10.24 [홍철기 촬영·국립현대미술관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photo@yna.co.kr

'후쿠시마, 오토래디오그래피'(2019)는 원전사고 상처가 선명히 남은 후쿠시마(福島)를 더 직접적으로 불러낸다.

박찬경이 올봄 한 피폭 마을에서 촬영한 사진은 호젓한 시골 풍경처럼 보인다. 사진가 가가야 마사미치·식물학자 모리 사토시가 후쿠시마의 물고기, 꽃, 나무 등을 X-레이 같이 투시한 이미지들이 그 풍경과 교차한다. 투시된 생물이 더 환하게 빛날수록, 더 아름다울수록 실제 방사능 오염도가 심각하다는 점은 비극적이다.

근대 동아시아에 꾸준한 관심을 보여온 박찬경은 "후쿠시마 사고 자체도 강렬했거니와, 나가사키와 히로시마 기억을 간직한 피폭 국가에 왜 그렇게 원전이 많은지, 도대체 후쿠시마에서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가 궁금했다"고 설명했다.

박찬경-모임 Gathering 전 둘러보는 참석자들
박찬경-모임 Gathering 전 둘러보는 참석자들

(서울=연합뉴스) 류효림 기자 = 24일 서울 종로구 소격동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열린 MMCA 현대차 시리즈 2019 : 박찬경 - 모임 Gathering 전시 기자간담회에서 참석자들이 전시 작품을 살펴보고 있다. 2019.10.24 ryousanta@yna.co.kr

전시는 후쿠시마 쓰나미와 원전 폭발, 세월호 참사 등 크고 작은 재난이 일상화한 동시대를 다양한 갈래로 비추면서 '모임'을 제안한다. 느슨하면서도 연대감이 있는 '모임'은 특정 이슈를 중심으로 똘똘 뭉치는 '민중'이나 '군중'과 구분된다.

'늦게 온 보살' 속 일면식 없던 젊은 여성과 중년 여성이 나중에 눈물을 흘리며 서로 토닥이는 장면이 이를 대표적으로 보여준다. "목적이나 동기 없이 모이는 것 자체가 어려워진 시대"라고 지적한 작가는 서로 유대감을 드러내는 모습에서 감동을 느낀다고 털어놓았다.

박찬경은 미술관이 이러한 '모임'의 장이 될 가능성을 본다. 신성하고 엄숙하며 권위적인 미술관이 아닌, '작은 미술관'이다. 작가는 전시장 한 켠에 낮은 가벽을 세우고, 흰 벽에 연필로 캡션을 쓰고, 작품을 거는 대신 그 이미지를 출력해 붙인 뒤 '작은 미술관'이라 명명했다.

"때로 따옴표 친 '미술관'은 어쩌면 현대에 거의 몇 남지 않은 희망의 장소라 생각되기도 합니다."

인사말 하는 박찬경 작가
인사말 하는 박찬경 작가

(서울=연합뉴스) 류효림 기자 = 박찬경 작가가 24일 서울 종로구 소격동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열린 MMCA 현대차 시리즈 2019 : 박찬경 - 모임 Gathering 전시 기자간담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2019.10.24 ryousanta@yna.co.kr

제의도 이번 전시를 꿰는 단어 중 하나다. 박찬경은 큰무당 김금화를 다룬 영화 '만신'(2013) 등에서 한국 민간신앙에 각별한 관심을 보였다. 영상 '작은 미술관'에는 국립현대미술관 서울 건립 당시 화재로 숨진 노동자 4명을 추모하는 씻김굿 장면이 등장한다. "현대사회는 제의를 자꾸만 추방하려고 한다"고 비판한 작가는 "제의는 모임을 가능하게 하며 다른 시간으로 넘어갈 수 있게 한다"고 설명했다.

MMCA 현대차 시리즈는 현대자동차가 2014년부터 10년간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중진 작가 개인전을 지원하는 프로젝트다. 그동안 이불, 안규철, 김수자, 임흥순, 최정화가 이를 통해 신작을 선보였다. 박찬경 개인전은 내년 2월 23일 끝난다.

국립현대미술관 현대차 시리즈 박찬경-모임 Gathering 전시
국립현대미술관 현대차 시리즈 박찬경-모임 Gathering 전시

(서울=연합뉴스) 류효림 기자 = 24일 서울 종로구 소격동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열린 MMCA 현대차 시리즈 2019 : 박찬경 - 모임 Gathering 전시 기자간담회에서 참석자들이 전시 작품을 살펴보고 있다. 2019.10.24 ryousanta@yna.co.kr

aira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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