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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마항쟁 국가기념일] ① 40년만에 재평가된 '부산·마산의 함성'

유신독재 무너뜨린 최초 시민항쟁인데도 역대 정권 무관심
16일 오전 10시 창원 경남대서 정부 주관 첫 국가기념식 개최

[※ 편집자 주 = 박정희 유신체제에 맞서 1979년 10월 부산과 마산(현 창원시 마산합포구·마산회원구) 시민들이 일어난 부마민주항쟁(이하 부마항쟁)이 올해로 40주년을 맞습니다. 시위 기간은 짧았지만, 군사정권의 철권통치 18년을 끝내는 데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정부는 늦었지만, 부마항쟁 발발 40주년을 맞은 올해 시위 시작일인 10월 16일을 국가기념일로 지정했습니다. 오는 16일 항쟁의 무대였던 창원시에서 첫 정부주관 기념행사가 열립니다. 연합뉴스는 부마항쟁 국가기념일 의의와 관련자 인터뷰를 2편에 걸쳐 송고합니다.]

제40주년 부마민주항쟁 기념식 포스터
제40주년 부마민주항쟁 기념식 포스터

(창원=연합뉴스) 이정훈 기자 = "부산, 항쟁을 시작하고, 마산, 떨쳐 일어나다"

부마항쟁은 박정희 정권의 유신독재 체제가 절정에 달했던 1979년 10월 16일부터 5일간 부산과 마산 지역에서 일어난 민주화 요구 시위다.

10월 16일 부산시민들이, 10월 18일 마산시민들이 유신독재 타도를 외치며 거리로 나섰다.

항쟁 기간은 닷새에 불과했다.

그러나 국무총리 소속 부마항쟁 진상규명 및 관련자 명예회복심의위원회가 지난해 발표한 보고서를 보면 군·경이 검거한 시위자 수가 1천584명에 이를 정도로 많은 시민이 참여했다.

부마항쟁은 우리 현대사에서 가장 길었던 박정희 군부독재 18년을 아래로부터 무너뜨렸다는 평가를 받는다.

불과 며칠 뒤 10월 26일 박정희 대통령이 궁정동 안가에서 측근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이 쏜 총탄에 맞아 쓰러지면서 유신체제는 막을 내렸다.

독재에 저항한 부마항쟁 정신은 1980년 5·18 민주화 운동과 1987년 6·10 민주항쟁으로 이어졌다.

이처럼 부마항쟁은 우리 현대사에 끼친 족적이 큰데도 그동안 제대로 평가받지 못했다.

역대 정권은 부마항쟁에 상대적으로 무관심했다.

정부 차원의 진상규명 활동은 2000년대 이후에야 시작됐다.

1960년 4·19혁명을 포함한 우리 현대사의 4대 민주화 운동 중 가장 늦게, 40년이 지난 올해 국가기념일로 지정됐다.

(창원=연합뉴스) 김동민 기자 = 경남대 캠퍼스에 있는 부마항쟁 시원석(始原石). 부마민주항쟁 시작일을 마산에서 처음 시위가 일어난 10월 18일로 표기했다.
(창원=연합뉴스) 김동민 기자 = 경남대 캠퍼스에 있는 부마항쟁 시원석(始原石). 부마민주항쟁 시작일을 마산에서 처음 시위가 일어난 10월 18일로 표기했다.

허진수 부마항쟁진상규명위원회 위원은 "부산과 마산 항쟁이 시위 시작 5일 만에 거의 진압되고 일주일쯤 지나 10·26 사태로 박정희 대통령이 살해됐다"며 "민주화를 갈망하던 시민 여론이 박 대통령을 동정하는 쪽으로 갑자기 바뀌어 항쟁을 더 이어가거나 전국적으로 확산하기 어려운 지경이 됐다"고 회상했다.

그는 이어 "불과 7개월 뒤 전두환 정권이 5·18 광주 민주화운동을 강제 진압했다"며 "광주의 희생이 크고 워낙 충격적이어서 부마항쟁은 상대적으로 잊혀갔다"고 덧붙였다.

그동안 부산에서는 부산대생들이 '민주선언문'을 배포하고 시위를 시작한 10월 16일, 창원에서는 당시 마산시민이 처음 봉기한 10월 18일 관련 단체들이 기념식을 따로 열어 왔다.

정부는 올해 부마항쟁을 국가기념일로 지정하면서 부산 시위 시작일인 10월 16일을 공식 기념일로 정했다.

오는 16일 정부주관 첫 기념행사 장소로 창원시를 택했다.

마산은 부산보다 항쟁이 짧았고 시위 규모도 적었다.

그러나 국무총리 소속 부마항쟁 진상규명 및 관련자 명예회복심의위원회가 인정한 부마항쟁의 유일한 희생자(고(故) 유치준 씨)가 발생했을 정도로 저항은 치열했다.

(창원=연합뉴스) 김동민 기자 = 부마항쟁 20주년인 1999년 경남 창원시 마산합포구 방송통신대 창원시 학습관 앞 공원에 세워진 부마항쟁 상징 조형물.
(창원=연합뉴스) 김동민 기자 = 부마항쟁 20주년인 1999년 경남 창원시 마산합포구 방송통신대 창원시 학습관 앞 공원에 세워진 부마항쟁 상징 조형물.

부산과 마산은 당시 민주화에 열망이 뜨거웠을 뿐만 아니라 경제적으로 위기가 닥친 곳이었다.

1979년은 7년째 접어든 유신체제가 한계에 이른 해였다.

수사기관이 반정부 인사들을 연행·체포·고문·연금하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부마항쟁 2개월여 전에는 YH무역 여성 노동자들이 당시 야당이던 신민당사에서 부당 폐업을 반대하는 농성을 하다 경찰의 폭력적인 진압으로 22세 여성 노동자가 사망하고 수많은 부상자가 발생했다.

10월 초에는 김영삼 신민당 총재가 '뉴욕 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박정희 유신독재를 강력히 비판했다는 이유로 의원직을 제명당했다.

경제적으로는 제2차 오일쇼크로 발생한 세계 경기불황이 국내에도 영향을 미쳤다.

수출에 의존하는 경공업이 집중된 부산과 마산은 서민들이 피부로 느끼는 경제적 어려움이 더 심각했다.

그 분노가 부산과 마산에서 대규모 항쟁으로 나타났다.

40년 전 부마항쟁 부산 광복동 시위 사진 첫 공개
40년 전 부마항쟁 부산 광복동 시위 사진 첫 공개(부산=연합뉴스) 부산일보 사진기자 출신인 정광삼(81) 한국사진작가협회 부산시지회 자문위원이 최근 부산민주항쟁기념사업회에 기증한 40년 전 부마민주항쟁 당시 사진. 이번에 처음 공개된 사진 2점은 당시 신문지면 등에 실리지 않은 것으로 정 자문위원이 자료 확보 차원에서 찍은 것이다. 2019.9.16 [부산민주항쟁기념사업회 제공·재판매 및 DB 금지]

10월 16일 부산대생이 시작한 시위에 동아대생, 시민이 합류했다.

캠퍼스를 나온 시위대는 부산 시가지까지 진출했다.

이튿날에는 3만∼5만명에 이를 정도로 시위대 규모가 커졌고 밤늦게까지 시위가 계속됐다.

KBS부산방송국, 도청, 세무서, 파출소 등이 파괴됐고 경찰 차량 등도 피해를 봤다.

정부는 18일 0시를 기해 부산에 비상계엄을 선포했다.

공수부대가 진압에 나서 시위는 확산하지 못했다.

그러나 부산에서 시작한 항쟁은 곧바로 낙동강을 건너 마산으로 넘어갔다.

전부터 유신체제 반대 시위 움직임이 있던 경남대학교에서 학생들이 18일 시위를 시작했다.

시내 번화가에 산발적으로 모이기 시작한 경남대생과 시민까지 가세해 "유신 철폐, 독재 타도"를 외쳤다.

시민, 학생들은 파출소, 공화당사, 방송국, 신문사에 돌을 던지고 유리창을 부쉈다.

시위는 다음 날 더 치열해져 마산 시내가 한때 무정부 상태가 됐다.

저녁 무렵에는 경남대생, 시민들, 일부 고교생까지 합세해 시위대 규모가 8천여명에 이르렀다.

정부는 결국 10월 20일 마산 일원에 위수령을 발동했다.

부마항쟁에 투입된 공수부대
부마항쟁에 투입된 공수부대1979년 부마항쟁 당시 경남 마산에서 이동 중인 공수부대. [박영주씨 제공=연합뉴스]

공수부대가 마산까지 투입되자 마산 시위 역시 부산과 마찬가지로 소강상태에 접어들었다.

결국 며칠 뒤 10·26 사태가 터지면서 항쟁은 더 이어지지 못했다.

부마항쟁에 참여했던 정성기 경남대학교 경제금융학과 교수는 "부마항쟁이 박정희 정권 당시 최대 민주화운동이면서 최초 시민항쟁이었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그러나 지역적 한계에다 항쟁 주체인 학생, 시민들이 유신철폐·독재 타도를 외치면서도 구체적 대안을 제시하지 못한 점은 한계점으로 지적했다.

정 교수는 "10·26 사태로 시위가 전국적으로 확산하지 못했고 신군부 득세를 막아내지 못한 점은 아쉬운 점"이라고 말했다.

부마민주항쟁 40주년 기념식은 오는 16일 오전 10시 마산지역 항쟁 선두에 섰던 경남대학교에서 열린다.

정부가 주관하는 제1회 국가기념식이다. 그동안 10월 16일, 10월 18일 따로 기념식을 했던 부산과 마산의 부마항쟁 단체들이 모두 모인다.

유신독재 무너뜨린 '부마항쟁 그때처럼'
유신독재 무너뜨린 '부마항쟁 그때처럼'(부산=연합뉴스) 김선호 기자 = 오거돈 부산시장, 김경수 경남도지사, 허성무 창원시장, 부마항쟁 관련자 등이 18일 부산대에서 부마민주항쟁 국가기념일 지정을 환영하는 기자회견을 마친 뒤 부마항쟁 발원지 표지석에서 '유신철폐' 구호를 외치고 있다. 2019.9.18
wink@yna.co.kr

seaman@yna.co.kr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2019/10/13 09:01 송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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