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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턴액티브] "39년 함께 산 남편이 있는데 무연고 장례라니"

전통적 가족상에 묶인 장례 권한…"사실혼·성소수자·1인 가구 등 소외"
당국도 "개선 검토"

(서울=연합뉴스) 주보배 전송화 인턴기자 = "마음 통하고 살고, 진심으로 살면 그만이지 혼인신고가 이렇게 중요한지 몰랐어. (혼인신고를 하지 않은 게) 뼈가 저리도록 슬퍼…"

이석현(가명·85)씨는 이달 초 39년간 함께 산 아내 이영애(향년 81세)씨를 '무연고 장례'로 떠나보내야 했다. 재혼이라 혼인신고를 하지 않고 사실혼 관계로 산 탓에 직접 장례를 치러줄 자격을 갖추지 못했기 때문이다.

사실혼 아내의 장례를 치르는 이석현(가명)씨의 뒷모습
사실혼 아내의 장례를 치르는 이석현(가명)씨의 뒷모습[촬영 전송화]

무연고 장례는 가족이 없거나 있더라도 시신 인수와 장례 권한을 포기한 사망자의 경우에 치러진다. 그러나 사망자가 생전에 '가족'이 있었는데도 무연고 장례를 하는 경우가 있다. 사실혼 관계였던 이씨처럼 현행 법이 규정하는 가족 관계에 포함되지 못한 경우다.

우리 사회의 가족 형태는 점차 다양해지고 있지만 '장사 등에 관한 법률(이하 장사법)은 전통적 가족 관계에 기초해 있다. 장례 권한은 장사법이 규정하는 '법적 연고자'에게 순차적으로 주어진다. 법적 연고자는 1순위 배우자, 2순위 자녀, 3순위 부모 등이다.

사실혼 관계로 살아온 이씨는 아내의 사망진단서를 끊을 수도, 시신을 인수할 수도, 화장 등 장례 절차를 결정할 수도 없다.

그는 "아내가 병원에 있을 때만 해도 '보호자'로 불렸는데 아내의 사망 이후 사망진단서를 끊으려 하니 법적 보호자가 아니라는 이유로 거절당했다"며 "사망진단서를 볼 수 없으니 아내의 정확한 사인 역시 알 수 없어 답답했다"고 말했다.

병원에서도, 장례업체에서도 이씨에게 법적 연고자가 아니므로 장례를 맡을 수 없다는 말을 반복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던 이씨는 아내를 영안실에 안치한 채 3주 가까이 홀로 애를 태워야 했다.

수소문 끝에 주민센터를 통해 서울시의 무연고 장례 서비스를 알게 된 이씨는 서울시와 공영장례를 돕는 비영리단체 나눔과나눔의 도움으로 아내가 떠난 지 18일 만에야 '무연고 장례'로 아내를 보내줄 수 있었다.

서울시의 공영장례
서울시의 공영장례 [나눔과나눔 제공]

지난 1일 아내의 장례식장 한쪽에 손님처럼 앉아 있던 이씨는 "내가 직접 치러주는 장례가 아니기에 부끄럽고 미안한 마음에 나설 수 없었다"고 말했다.

배우자의 장례를 도맡을 법적 연고자로 인정받지 못하는 건 동성애 커플도 마찬가지다.

지난 5일 이태원에서 만난 레즈비언 윤김명우(64)씨는 최근 성 소수자 커뮤니티에서 오랫동안 알고 지낸 70대 지인의 장례식에서 상주 역할을 맡아달라는 부탁을 받았다고 전했다.

"언니(70대 지인)가 본인 장례식에서 손님도 맞이하고 가능하다면 영정사진도 직접 들어달라고 부탁하더라고요. 법적 절차는 가족이 하겠지만 실제 장례식은 살아생전 마음을 의지했던 제게 맡기고 싶다고요."

윤김씨도 사망진단서 발급 등 법적 사후 절차는 조카에게 맡겼다. 법이 인정하는 가족관계를 이루지 못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장례식 진행은 친한 친구에게 부탁했다고 했다.

평생 혼자 살기로 마음먹은 이들에게도 사후에 닥칠 장례 문제는 고민거리다.

프리랜서로 일하며 비혼 생활을 이어가는 신예희(44)씨는 최근 장사법 규정에 대해 알고나서 "당황스러움을 느꼈다"고 말했다.

"법적 연고자가 아니면 제 장례를 치러주지 못한다는 것을 알게 됐어요. 비혼이라는 삶의 방식을 주체적으로 선택했듯 죽음에 관한 결정도 스스로 하고 싶은데 결국 법이 규정하는 가족관계에 따라야 한다는 사실이 당황스러웠죠."

윤김씨와 신씨는 모두 현행법을 바꿔야 한다고 말했다.

윤김명우씨는 "생전에 가장 사랑한 사람이 장례를 치러주는 게 상식적으로도 당연한 일이지 않느냐"고 반문했다.

신예희씨는 "시신을 인수하고 처리 방법을 선택하는 등의 권한이 일생을 함께해오고 임종을 한 이가 아니라 전통적 가족 관계에만 돌아가는 것은 부당하다"며 "가족의 형태는 다양할 수 있고, 모든 사람에게는 가족을 결정할 수 있는 권리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전문가들도 장사법이 더 넓은 의미의 가족을 포함하는 쪽으로 변해야 한다고 말한다.

1인가구 (PG)
1인가구 (PG)[연합뉴스 자료사진]

가족구성권연구소 김현경 연구원은 "장사법이 정해 놓은 자격과 순위에 사실혼 배우자, 친밀한 관계의 친구, 공동체 가족 구성원의 자리는 없다"며 "삶의 방식이 다양해지면서 가족관계의 형태 역시 다양해지고 있는 현실을 반영하지 못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노숙인 등 무연고자의 공영장례를 진행하는 나눔과나눔 박진옥 사무국장은 "간혹 가족과 단절된 채 살아가는 '무연고 아닌 무연고자'나 장례 방식을 스스로 결정하고 싶은 이들이 비용은 다 부담할 테니 가족 대신 장례를 치러줄 수 있냐는 문의를 한다"며 "하지만 법적 연고자가 아닌 경우엔 그러기 힘든 현실"이라고 전했다.

그는 "우리 사회가 지금의 전통적 가족관계에 기초한 장례가 아닌 친구 등도 장례를 치를 수 있는 '가족 대신 장례', 종국에는 스스로 장례 방식을 결정할 수 있는 '내 뜻대로 장례'로 나아가야 한다"고 덧붙였다.

관계 부처도 장사법을 손보는 것을 고려하고 있다.

보건복지부 노인지원과 관계자는 "점점 늘어나는 1인 가구 등 다양해지는 가족 관계를 반영해 친구, 동거인 등도 장례를 치를 수 있도록 법 개정 등을 검토할 계획"이라며 "다만 친구, 동거인 등이 고인의 지인이라는 점이 확인되는 등 일정한 조건을 충족해야할 것"이라고 밝혔다.

정치권에서도 법적 연고자에 국한된 장사법을 개정하려는 움직임이 엿보인다.

장사법 개정을 추진 중인 자유한국당 주호영 의원실 관계자는 "함께 아동복지시설에서 동고동락했던 친구가 고인의 장례를 치러주지 못하는 현실을 보고 연고자의 범위를 확장하는 개정안을 준비하고 있다"며 "혹시나 악용될 경우를 막기 위한 방안도 함께 고민 중"이라고 밝혔다.

법이 개정되지 않은 상황에서 친구나 지인에 의한 장례에 대해 장례 절차를 관할하는 일선 지자체는 난색을 보이기도 한다.

서울시 장사문화팀 관계자는 "아무래도 장사법에 '친구, 동거인 등도 장례를 치를 수 있다'는 명확한 언급이 없다 보니 조심스러운 상황"이라며 "이미 다른 사람이 장례를 치른 후에 법적 연고자가 나타나 시신에 대한 권리를 주장하는 경우 등의 문제를 염려해 법적 연고자만 장례를 치르도록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장사법 개정에 따라 연고자의 범위가 확대되면 장례를 치른 이와 법적 가족 사이에 상속 문제가 불거질 수 있다는 우려에 대해 전문가는 장사법과 상속법은 별개의 문제라고 선을 그었다.

상속 분쟁을 주로 다루는 법무법인 한중의 홍순기 변호사는 "장사법상 장례 권한이 확대되더라도 상속엔 영향을 주지 않는다"며 "상속은 상속인의 유언이 가장 중요하고, 상속인이 별다른 유언을 남기지 않았을 때는 법적 배우자와 자녀가 상속을 받게 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jootreasure@yna.co.kr, sending@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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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2019/10/13 06:00 송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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