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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안내양·부락 반상회…화성사건서 소환된 옛 생활상

송고시간2019-09-29 13:00

워낙 오래된 사건이다 보니 30년전 직업과 생활용어 재등장

어린 피해자 유류품에는 요즘은 없는 네모난 도시락ㆍ책가방

(수원=연합뉴스) 류수현 기자 = 1980년대를 공포로 몰아넣은 화성연쇄살인 사건의 용의자가 30여 년 만에 특정되면서 '버스안내양', '부락 반상회' 등 지금은 세인의 기억 속에서 사라진 당시 생활상이 '강제 소환'되고 있다.

요즘 초중고교생들은 전혀 경험하거나 들어보지도 못한 직업과 생활용어들이 많은 양의 당시 경찰조서 재검토와 목격자 조사 과정에서 하나둘씩 등장하고 있는 것.

화성 5차 사건 현장 살펴보는 경찰
화성 5차 사건 현장 살펴보는 경찰

[연합뉴스 자료사진]

이 사건을 수사 중인 경기남부지방경찰청은 모방범죄로 밝혀져 범인까지 검거된 8차 사건을 제외한 모두 9차례의 화성사건 가운데 7차 사건 때 용의자를 목격한 '버스 안내양'을 최근 조사했다.

이번에 버스 안내양에 대한 조사에서는 옛기억을 되살리기 위해 법 최면 전문가까지 투입된 것으로 알려졌다. 버스 안내양이 워낙 많은 사람들을 상대하다 보니 눈썰미가 좋은 편이고, 그래서 그때 유력한 용의자를 목격한 인물이 된 것이다.

버스 안내양은 시내버스와 고속버스 등에서 운행을 돕는 역할을 한 승무원이다. 버스 안내양을 기억하는 중년들은 정류장에서 승객탑승이 마무리되면 기사에게 출발해도 좋다는 신호인 "오라이(all right의 일본어식 표현)"를 외치던 모습이 뇌리에 생생하다고 한다.

29일 국가기록원 등에 따르면 1961년부터 버스 안내원 제도를 도입해 승객들의 안전한 승하차를 돕고 요금을 받았으며 출입문을 직접 여닫기도 했다.

1960∼70년대 보릿고개 시절 지방에서 상경한 여성들이 선택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직업 중 하나로 꼽히면서 버스 안내원은 주로 여성이 맡았다.

이 때문에 보릿고개 시절 여성 공장 직공과 더불어 여성들에게 인기를 끌었던 직업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1980년 중반 이후 버스에 자동화 시스템이 도입되면서 안내양의 필요성은 줄어들었다.

경기남부청에 마련된 화성연쇄살인사건 수사본부
경기남부청에 마련된 화성연쇄살인사건 수사본부

[연합뉴스 자료사진]

1984년부터 버스에서 하차지점 안내방송이 흘러나왔고 벨도 설치돼 승객들이 이를 누르면 문도 자동으로 열렸다. 토큰이 생기면서 요금을 받을 일이 사라진 것도 버스 안내양의 퇴장을 재촉했다.

결국 버스 안내양은 1989년 '여객자동차운송사업자는 안내원을 승무하게 해야 한다'는 자동차운수사업법 33조가 삭제되면서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부락(部落)별 반상회'도 지금 젊은 세대에게는 생소한 단어이다.

이 사건 관련 당시 경찰 기록과 언론 기사 등에는 경찰이 부락별로 반상회를 열어 사건 현장을 배회한 사람이나 인근에 사는 수상한 사람들을 신고해달라고 요청했다는 대목을 찾을 수 있다.

지금은 곳곳에 대규모 아파트 단지가 들어섰지만, 당시에는 수도권 등 일부 지역을 제외한 대부분의 지역에서는 가옥들이 몇채 모여 마을을 이룬 '부락'이 기본적인 생활공동체였다.

화성연쇄살인사건 용의자 당시 몽타주
화성연쇄살인사건 용의자 당시 몽타주

[연합뉴스 자료사진]

반상회 또한 현재는 아파트 관리사무소에서 전하는 방송으로 대체됐으나 당시에는 부락에 속한 주민들이 돌아가며 장소를 제공하고 정기적으로 모여 마을 소식을 전하고 듣는 반상회가 일상적이었다.

사실 부락이라는 말은 일본에서는 '천민'들이 모여 사는 마을을 지칭했는데, 일제가 식민시대를 거치면서 우리나라 마을 공동체에 부정적인 이미지를 덧씌우기 위해 '부락'이라는 말을 이식했다는 지적도 있다.

피해자의 유류품 목록을 봐도 이 사건이 얼마나 오래됐는지 짐작할 수 있다.

1990년 11월 16일 여중생이 하굣길에 야산에서 숨진 채 발견된 9차 사건 때 유류품 중에는 여중생의 책가방과 그 안에 들어있던 공책, 도시락 뚜껑 등이 있다.

1988년 12월 화성 연쇄살인 사건 수사본부를 찾은 조종석 당시 치안본부장.
1988년 12월 화성 연쇄살인 사건 수사본부를 찾은 조종석 당시 치안본부장.


요즘은 학교 급식이 일반화돼 학생들이 대체로 도시락을 들고 다니지 않지만, 당시만 해도 네모반듯한 책가방과 도시락, 신발주머니는 학생의 필수품이었다.

평화롭고 정겨워야할 이런 상당수 옛 기억들이 우리나라 강력범죄 사상 최악의 장기미제사건인 화성연쇄살인 사건으로 씻지못할 아픔과 응어리진 답답함으로 대체되고 있는 게 현실이다.

첫 사건 발생 이후 33년이 지난 지금이라도 유력한 용의자로부터 반드시 자백을 끌어내 그 아픔을 치유해야 한다는 게 이 사건을 수사중인 경찰의 다짐이기도 하지만, 용의자는 여전히 입을 굳게 다물고 있다.

you@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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