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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우하우스 100년] ③ 새 건축·디자인의 무대…프랑크푸르트

(프랑크푸르트=연합뉴스) 임동근 기자 = 독일 경제·금융·교통의 중심지인 프랑크푸르트는 1920년대 새로운 건축과 디자인의 주 무대였다.

독일 프랑크푸르트 풍경 [사진/임동근 기자]
독일 프랑크푸르트 풍경 [사진/임동근 기자]

사회개혁 프로젝트인 '뉴 프랑크푸르트'는 사람들에게 현재까지 이어지는 혁신적인 주거 문화와 생활 방식을 선물했다.

제1차 세계대전 이후 프랑크푸르트의 인구는 전쟁 난민의 유입으로 급속하게 증가했다. 주택은 턱없이 부족했고 주민의 생활 공간은 무척 비위생적이었다.

당시 루트비히 란트만 프랑크푸르트 시장, 도시계획국장이자 건축가였던 에른스트 마이(1886∼1970) 등은 1925년부터 5년간 주택 1만2천여 채를 건설하는 도시계획프로그램인 '뉴 프랑크푸르트'를 고안했다.

이 프로그램의 목적은 단순히 주택 부족을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지속적인 미적·문화적·사회적 이상에 기반해 프랑크푸르트를 개조하는 것이었다. 이 프로그램은 바우하우스와 함께 20세기 건축·디자인에 가장 큰 영향을 미쳤다.

마이는 위생적이고 값싼 집만을 구상하지 않았다. 좋은 생활 조건에서 현대적인 삶을 영위할 수 있고, 녹지가 있는 자연환경과 어우러진 주택단지를 목표로 했다. 그가 지은 주택은 초록빛 정원, 깨끗한 욕실, 현대식 주방 등을 갖췄다.

그는 또한 건축의 기능적인 측면에만 집중하지 않고 건축, 산업디자인, 그래픽 분야의 디자이너들과 협력했다. 이 중 오스트리아 최초 여성 건축가 마가레테 슈테-리호츠키가 설계한 '프랑크푸르트 부엌'은 단연 돋보인다.

에른스트 마이 하우스의 프랑크푸르트 부엌 [사진/임동근 기자]
에른스트 마이 하우스의 프랑크푸르트 부엌 [사진/임동근 기자]

◇ 지금도 뛰어난 100년 전 주택

프랑크푸르트 북쪽 프라운하임에 있는 에른스트 마이 하우스에 가면 마이가 설계한 주택과 슈테-리호츠키가 설계한 부엌을 직접 볼 수 있다.

주택단지 하나는 2층 아파트 형태로, 1가구가 1층과 2층을 사용하는 구조다. 동과 동 사이는 집의 폭에 맞춘 개인 정원이 채우고 있다. 정원수가 울타리 역할을 한다. 1층에는 거실과 부엌, 2층에는 침실과 욕실이 있다.

프랑크푸르트 부엌은 재료 준비, 조리, 식탁 세팅 등 주방에서의 작업을 효율적으로 하는 데 중점을 두고 설계됐다.

식자재를 보관한 수납장 옆에 전기레인지와 오븐을 설치하고, 뒤편에는 싱크대와 식기 건조대를 배치했다.

부엌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는 주부를 위해 창 쪽에는 휴식할 수 있는 탁자와 의자를 놓았다. 음식을 나르기 위해 거실로 바로 연결되는 문도 따로 냈다. 조리된 음식은 열차에서 사용하는 운반 도구로 날랐다고 한다.

수납장 중간에 있는 손잡이가 달린 식자재 보관용 통도 눈에 띈다. 반죽, 쌀, 밀, 보리, 빵가루, 귀리, 마카로니, 콩 등 음식 재료를 쉽게 꺼내 쓸 수 있게 구분해 놓은 장소다.

부엌 수납장 [사진/임동근 기자]
부엌 수납장 [사진/임동근 기자]

맨 오른쪽 밀가루 보관용 통은 벌레를 막기 위해 참나무로 제작했고 나머지는 금속으로 만들었다. 보관용 통 위치는 어린아이의 손이 닿지 않는 높이에 맞췄다고 한다.

에른스트 마이 하우스의 오스카 웅거 씨는 "열차의 주방처럼 작은 공간에 모든 필요한 시설을 갖췄다"며 "주부가 가장 짧은 거리를 움직이며 조리할 수 있게 주방 시설을 배치한 것이 특징"이라고 설명했다. 또 "이곳은 독일 최초의 완전 전기 주택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덧붙였다.

전기레인지 옆 거치대에 걸쳐 사용하는 벽걸이 다림판, 크기를 조절할 수 있는 접이식 탁자, 위치를 조정할 수 있는 난간, 오렌지색 옷장, 바우하우스 스타일 전등, 모듈형 용기도 볼거리다.

에른스트 마이 하우스 침실 [사진/임동근 기자]
에른스트 마이 하우스 침실 [사진/임동근 기자]

◇ 유럽중앙은행으로 변모한 옛 청과물 도매시장

도심 동쪽 마인강 북쪽에 있는 옛 청과물 도매시장 건물은 에른스트 마이와 함께 뉴 프랑크푸르트 프로젝트를 주도한 건축가 마르틴 엘세서(1884∼1957)가 1928년 세운 건물이다.

길이 220m, 너비 50m, 높이 17∼23m의 대칭 구조 붉은벽돌 건물로 90여년이 지난 지금도 세련된 느낌이 물씬 풍긴다.

건축 당시 홀의 면적은 1만3천㎡에 달했고 마구간 130개가 있을 정도로 규모가 엄청났다. 당시 프랑크푸르트에서 가장 큰 건축물이었다고 한다.

제2차 세계대전 때는 나치의 군사시설로 사용되며 지하에 유대인이 감금되기도 했다.

이 건물은 2014년 바로 뒤편에 180m 높이로 들어선 유럽중앙은행과 연결돼 통합됐고, 청과물 도매시장은 다른 곳으로 이전했다.

지금 붉은색 건물은 유리로 뒤덮인 유럽중앙은행 빌딩과 어우러지며 독특한 경관을 선사하고 있다.

괴테대학교 IG 파르벤 빌딩 [사진/임동근 기자]
괴테대학교 IG 파르벤 빌딩 [사진/임동근 기자]

도심 북서쪽에 있는 괴테대학교(프랑크푸르트대학교) 웨스트엔드 캠퍼스에는 '유럽의 펜타곤'이라 불리는 IG 파르벤 빌딩이 있다. 이 건물은 건축가 한스 펠치히(1869∼1936)가 1928년 철과 석재를 사용해 지은 건물이다.

거대한 성채를 닮은 이 건물은 팔을 뒤쪽으로 둥그렇게 펼친듯한 모습이다. 자세히 보면 층이 높아질수록 창이 작아진다.

중앙 정문으로 들어서면 나타나는 원형 로비는 상부에 설치한 창문을 통해 자연광을 받아들일 수 있게 설계됐다. 바닥과 벽, 천장은 모두 격자무늬로 꾸며졌다.

로비 뒤편으로는 둥그런 벽면을 가득 채운 창문을 통해 들어온 자연광이 실내를 밝히는 카페가 마련돼 있다.

건물을 벗어나면 연못이 있는 커다란 정원이 펼쳐지고, 연못 뒤편 언덕에는 IG 파르벤 빌딩과 같은 양식으로 건축한 건물이 들어서 있다.

※ 연합뉴스가 발행하는 월간 '연합이매진' 2019년 10월호에 실린 글입니다.

dklim@yna.co.kr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2019/10/13 08:01 송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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