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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vel Abroad] 조지아를 즐기는 두 가지 방법…캠핑과 와인

(트빌리시[조지아]=연합뉴스) 성연재 기자 = 여행지에서 낯선 사람들과 친구가 되는 것은 여행이 줄 수 있는 기쁨이자 행복이다. 그러나 때로는 모험이 따른다. 특히 아웃도어에서는 무방비 상태가 되기도 한다. 낯선 곳에서의 캠핑은 어쩌면 이런 무모함 없이는 실행하기 어려운 일인지도 모른다.

◇ 처음 만난 사람들을 차에 태우다

게르게티 트리니티 교회와 텐트, 그리고 말들 [사진/성연재 기자]
게르게티 트리니티 교회와 텐트, 그리고 말들 [사진/성연재 기자]

조지아는 스위스 뺨치는 아름다운 풍광과 저렴한 물가로 최근 떠오르는 여행지 중 하나다. 이곳에서도 조지아인들이 신성시하는 게르게티 트리니티 교회가 있는 북부 카즈베기(Kazbegi) 지역을 빼놓을 수 없다.

카즈베기는 2008년 전쟁이 벌어진 남오세티야 동쪽에 자리 잡고 있다. 도착한 것은 오후 나절이었다.

14세기에 세워진 게르게티 트리니티 교회가 바라보이는 언덕에는 넓은 풀밭이 펼쳐져 있고, 곳곳에 텐트를 친 사람들이 보였다.

텐트와 침낭, 매트 등 모든 장비를 한국에서 공수해 갔다. 조지아의 자연을 온전히 느끼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곳의 아름다운 대자연과 나 사이에는 20데니어(천의 두께를 나타내는 단위:원사 1g의 무게로 9천m의 길이를 뽑아냈을 때의 굵기)의 얇은 섬유 조각만 있을 뿐이다.

그런데 아뿔싸 캠핑용 가스를 깜박 잊었다. 주변에 텐트를 설치한 사람들 가운데 여분의 가스를 가진 사람들을 찾았으나 그들이 가진 것은 아웃도어 전용 가스가 아닌 이른바 '길쭉이'라고 하는 긴 형태의 일반용 가스였다.

이미 해는 카즈베크산(5,047m) 뒤로 뉘엿뉘엿 넘어가고 있다. 서둘러 차를 몰아 다시 스테판츠민다(Stepantsminda) 시내로 향했다.

그러나 등산 매장에서 발견한 가스는 450g으로, 용량이 너무 크고 가격도 35라리(1만4천원)나 됐다. 한국 가스 가격의 정확히 3배다. 이곳저곳을 탐문하며 더 작은 사이즈의 가스를 찾았다.

그러는 도중 우연히 한 빵집 앞에서 백패커 3명을 만났다. 한국 사람이라고 했더니 그중 한 명이 "한국은 형제 나라"라며 반갑게 손을 내민다.

불을 지피는 캠퍼들 [사진/성연재 기자]
불을 지피는 캠퍼들 [사진/성연재 기자]

터키인이었다. 터키는 갈 때마다 환대하는 사람들 덕분에 적잖게 놀란다. 한국전쟁 참전국이기도 한 터키를 종종 잊는 것은 우리였지 그들은 아니었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그들은 트리니티까지 2시간이 걸리는 가파른 산길을 걸어서 올라가려고 하고 있었다.

짧은 순간 그들의 표정을 읽어보려 애썼다. 얼핏 봐서는 좋은 사람들 같았다.

"그럼 우리 차를 타라. 우리 옆자리에서 같이 캠핑을 하자"고 제안했다.

그들은 환호성을 지르며 차에 올라탔다.

시내에서 바라본 카즈베크산과 트리니티 교회 [사진/성연재 기자]
시내에서 바라본 카즈베크산과 트리니티 교회 [사진/성연재 기자]

◇ 조지아인들의 성지에 세워진 텐트

전혀 뜻밖의 캠핑 일행이 생긴 것이었다. 사실 야외에서 숙박하는 행위는 그야말로 모험이다. 관리인이 있거나 주변에 캠핑하는 사람들이 있는 안전한 캠핑장이 아니라 노지 캠핑이기 때문이다. 야생 동물이나 악인을 만날지도 모르는 일이다.

수도 트빌리시(Tbilisi)에서 만난 한 교민의 경고가 내내 떠올랐다. 최근에 노지에서 캠핑하다 3명의 외국인이 살해당했으니 각별히 주의하라는 것이다.

어떤 위험이 닥칠지 모르는 상황에서 눈을 감고 얇은 천 조각으로 된 텐트 안에서 잠을 자야 하는 상황이다.

이럴 때 믿음직한 동료들이 있다는 것은 얼마나 큰 위안이 되는가. 차편을 제공하고 동료를 얻은 셈이다. 그러나 처음 만난 그들이 얼마나 안전한 사람들인지도 알지 못했다.

터키인 외에 두 명은 백팩을 진 베트남 여성과 체코 남성이었다.

나는 이들을 태우고 교회까지 나 있는 가파른 고갯길을 달렸다.

해가 완전히 넘어가기 전에 서둘러 텐트를 설치한 뒤 베트남 여성은 교회 아래 설치된 수돗가까지 10여 분을 걸어가 사과를 씻어 왔다. 그들이 가진 유일한 식량 가운데 일부다.

우리는 수도 트빌리시에서 사 온 '도시락 컵라면'을 먹겠다고 했지만 그들의 성의를 무시할 수 없어 사과를 받아 함께 먹었다. 밤이 오고 터키인은 이곳저곳에서 나무를 주워와 불을 때기 시작했다.

밤을 함께 보내고 난 뒤 친구가 된 들개 [사진/성연재 기자]
밤을 함께 보내고 난 뒤 친구가 된 들개 [사진/성연재 기자]

◇ 들개들이 지켜준 밤

마음이 편치는 않았다. 이렇게 신성시되는 곳에서 모닥불을 피워도 될까. 게다가 국립공원 지역인데 말이다. 찜찜했지만 안심해도 된다는 터키인의 말에 모닥불 피우기에 동참했다.

사실 불이 없으면 추위를 견딜 수 없을 지경이긴 했다. 트리니티 교회가 자리 잡은 곳은 해발 2천170m다.

어둠과 함께 기온은 급격히 내려갔다. 모닥불이 타닥타닥 소리를 내며 타오르자 주위가 환해지며 온기가 퍼졌다.

터키인은 소시지를 꺼내 꼬챙이에 꿰어 모닥불에 구웠다. 빵을 곁들이니 맛난 핫도그가 됐다. 불에 구워진 소시지와 말라빠진 빵이지만, 묘한 조화가 이뤄졌다. 맛나게 먹었다.

차 한 번 태워준 것뿐인데 이런 성의가 고맙다. 그리고 내가 멀리 주차해 둔 차에 다녀오는 동안 그가 삼각대를 정리해 내 텐트 가까이 갖다 놓았다. 혹시나 분실 위험이 있으니 주의하라는 충고도 잊지 않았다.

한 가지 더 불안한 것은 바로 들개였다. 주위는 개들의 천국이다. 밥을 먹고 있으니 주위로 한두 마리가 다가온다.

자세히 살펴보니 표정이 사납지 않다. 먹을 것을 던져달라는 표정으로 애처로운 눈빛을 보낸다. 덩치가 워낙 커서 돌변하면 어떻게 하나 걱정도 됐다.

그러나 터키인은 "이 녀석들이 오늘 밤 우리를 지켜줄 것"이라고 말했다. 가만히 개들의 움직임을 살펴보니 그런 듯했다. 우리가 가끔 던져주는 먹거리를 먹으며 잠을 자던 녀석들은 다른 개들이 나타나자 으르릉대며 쫓아버렸다.

들개와 모닥불, 카즈베크산이 어우러진 야경은 알퐁스 도데의 소설 '별'의 한 장면을 떠올리게 했다. 하늘에는 별이 쏟아졌고, 나는 잠이 쏟아졌다.

텐트 안으로 들어가 잠을 청했지만 잠은 쉽게 오지 않는다. 낯선 곳에서의 노지 숙박인 데다 모르는 사람과의 캠핑이 부담스러웠던 것 같다.

더욱이 막 잠이 들려고 하면 텐트 옆에 있던 들개가 저 멀리 있는 녀석들을 향해 짖어댔다. 들개들을 믿고 눈을 감았고 어느덧 피곤함에 지쳐 잠이 들었다.

다음 날 아침 말 울음소리에 놀라 잠을 깼다. 해는 아직 올라오지 않았지만, 텐트 밖은 벌써 환해져 있었다.

나가보니 방목해 키우는 말 3마리가 텐트 주위를 어슬렁거리고 있었다. 서둘러 카메라를 메고 뛰쳐나갔다.

카즈베크산이 바라보이는 값비싼 호텔의 야외 카페 [사진/성연재 기자]
카즈베크산이 바라보이는 값비싼 호텔의 야외 카페 [사진/성연재 기자]

◇ 값비싼 호텔과 전망

함께 캠핑했던 터키 남성과 베트남 여성은 수도인 트빌리시로 돌아가기 위해 히치하이크를 시도할 것이라 했다.

체코 남성은 나를 따라 주타계곡으로 트레킹을 떠난다고 했다가 갑자기 마음을 바꿔 아예 카즈베크산 정상 쪽으로 가겠다고 한다.

주타계곡에서 그와 함께 캠핑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는 깨졌고 어쩔 수 없이 홀로 캠핑을 해야만 했다.

체코 남성과 이별했다. 컵라면으로 간단히 아침 식사를 한 뒤 나머지 두 명과 함께 시내로 내려왔다.

아쉬움을 뒤로하며 그들과도 헤어진 뒤 시내에 있는 카즈베기 국립공원 방문자 센터로 향했다.

간밤에 내가 한 일들, 즉 국립공원 내부인 트리니티 교회 인근 풀밭에서의 캠핑과 불놀이가 적법한 것인가를 알아보기 위해서였다.

다행히 돌아온 대답은, 캠핑은 물론 'OK'였고, 숲이 우거진 곳만 아니면 불을 피워도 좋다는 것이었다. 우리나라에서는 상상도 하지 못할 일이다.

다만 화재 위험 때문에 나무가 있는 지역에서 모닥불을 피우는 것은 금지라고 한다. 마음이 한결 홀가분해졌다.

산 아래서 그 유명하다는 룸스호텔 전망을 보기 위해 차를 돌렸다. 호텔에 묵지는 않았지만, 카페에서 전망을 바라보며 커피 한 잔 마실 심산이었다.

차를 대고 들어간 호텔은 전망이 정말 좋았다. 그러나 1박하는데 숙박료는 20만원이 넘었다. 조지아의 1인당 국민소득이 3천720달러 정도임을 고려한다면 터무니없는 가격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SNS에 올랐기 때문일까. 트리니티 교회를 지척에 둔 채 자연과 소통하며 1박을 한 처지라, 도무지 가성비 측면에서 수긍할 수 없었다.

조지아 왕자의 신부가 우쉬굴리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사진/성연재 기자]
조지아 왕자의 신부가 우쉬굴리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사진/성연재 기자]

◇ 조지아의 왕자라고?

차를 빌려 카즈베기를 여행하기 전의 일이다. 서쪽에 치우친 메스티아(Mestia)까지는 야간열차를 이용해 여행해야만 했다.

수도 트빌리시에서 주그디디(Zugdidi)라는 곳까지 가서 거기서 '마슈룻카'(Marshrutka)라는 미니밴을 이용해 산길을 4시간을 달려야 메스티아를 만날 수 있다.

이곳에서 또다시 오지로 유명한 우쉬굴리(Ushguli)까지는 비포장도로로 3시간을 더 달려야 한다.

우쉬굴리에서 캠핑을 하며 시간을 보내고 있던 나는 근처의 언덕에서 화사한 드레스를 입은 여인을 발견했다. 생뚱맞은 오지 산골짜기에서 화려한 드레스라니… 사진기를 들이대지 않을 사람이 있겠는가.

그것이 계기가 돼 말을 건넸는데 그 일행 중 한 명이 한 젊은 남성을 조지아의 왕자 후안 바그라툐니(Juan Bagrationi)라 소개한다.

세계 각국에서 툭툭 사기, 택시 사기, 술값 사기 등 다양한 사기를 경험해 봤지만, 자신의 일행을 왕자라고 소개하는 사람들은 처음 봤다.

그런데 화사한 드레스를 입은 여인의 모습이 예사롭지 않아 일단 절반쯤 믿어보기로 했다.

그들과 시간을 보내다 보니 메스티아로 돌아가는 차가 끊겼다. 그들의 차에 올라타야만 했다. 이것도 약간의 모험이었다. 처음 만난 그들이 누군지 알고…

조지아 왕자 부부(가운데)가 카페에서 대화하고 있다.[사진/성연재 기자]
조지아 왕자 부부(가운데)가 카페에서 대화하고 있다.[사진/성연재 기자]

메스티아로 돌아와 그들이 우리를 저녁 식사에 초청한다고 한다. 한국에서 온 손님을 그냥 보낼 수가 없다는 것이다.

손해 볼 것도 없고 해서 그들과 함께 어울리기로 했는데 저녁 장소는 힘깨나 쓰는 지역 인사가 운영한다는 정류장 앞 카페 '라일'(Lile)이었다.

그런데 지나가던 사람들이 그 왕자라는 사람에게 다가가 인사를 하는 것을 보니 '왕자'에 대한 신뢰가 커지기 시작했다.

나중에 숙소로 돌아와 구글 검색을 한 결과 신뢰도는 100%가 됐다. 지난해 열린 결혼식 기사와 동영상이 영문판 인터넷 뉴스 조지안 저널(Georgian Journal)에 올라와 있는 게 아닌가. 신부는 전직 크리스티앙 디오르의 모델이라고 한다.

조지아는 1921년 소련이 조지아를 침공하면서 군주제가 사라졌지만 조지아인들은 아직 왕족을 기억하고 있다.

다음날 다시 만난 그가 마지막으로 한마디 조언한다. 조지아에서 와이너리를 놓치면 안 된다는 것이다. 결국 새로운 일정이 추가됐다. 사실 제대로 된 일정을 짠 적이 없고 발길 닫는 대로 다니고 있었지만.

JSC 코퍼레이션 와이너리에서 시음하는 여성들 [사진/성연재 기자]
JSC 코퍼레이션 와이너리에서 시음하는 여성들 [사진/성연재 기자]

◇ 비 내리는 시골길에서 만난 목동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날, 카즈베기에서 와이너리가 즐비하다는 텔라비(Telavi)로 통하는 작은 시골길에서 한 목동을 만났다.

조지아에서는 소들이 도로를 점령하는 것 따위는 흔히 있는 일이다. 가끔 노새가 끄는 나무 수레도 지나간다. 바퀴까지 나무다. 비에 잔뜩 젖은 목동이 담배 한모금을 빨아들인 뒤 소들을 재촉한다. 비가 와도 여행은 우울하지 않다.

생각지 않았던 장면들을 만날 수도 있다. 그런데 구글 지도를 너무 믿었던 탓일까. 포장도로가 뚝 끊기고 비포장 산길이 나타났다. '조금 돌아가더라도 수도 트빌리시 근교까지 내려가 큰길을 탔어야 했는데…'

후회해도 소용없다. 정신을 바짝 차리고 가야만 했다. 게다가 비까지 내리기 시작해 비포장 길은 더욱더 미끄러웠다. 난폭운전으로 악명높은 마슈룻카들도 시속 10㎞를 유지하면서 절벽 길을 타고 내려갔다.

해는 이미 지고 있었다. 간신히 텔라비에 도착해서 1박을 한 뒤 다음 날 쉴다 와이너리(Shilda Winery)를 찾았다.

텔라비 길 곳곳에는 와인 루트(Wine Route)라는 표지판이 붙어 있었다. 8천년 전통을 가진 와인의 본고장을 찾은 것이 실감이 났다.

쉴다 와이너리에서의 와인 시음 [사진/성연재 기자]
쉴다 와이너리에서의 와인 시음 [사진/성연재 기자]

◇ 8천년 전통의 조지아 와인

와이너리 가운데 제법 깔끔하게 운영되는 곳 같았다. 이곳에서 와인을 잠시 맛본 뒤 다시 근처에서 와인 체험을 제공하는 'JSC 코퍼레이션 와이너리'(JSC Cooperation Winery)를 방문했다.

쉴다는 대규모 와이너리였긴 했지만, 체험 프로그램이 없었기 때문이다.

조지아 와인은 전통적으로 항아리인 '크베브리'(Qvevri)에 포도를 으깬 뒤 숙성시키는 것으로 유명하다.

와인 생산의 역사가 8천년이 됐다고 하니 놀라울 따름이다.

이곳에서 알게 된 한가지가 '사페라비'(Saperavi)라는 품종이다. 조지아에서만 나오는 이 품종의 포도가 만들어내는 독특한 향과 풍미에 순식간에 매료됐다. 내한 온도가 낮아서 재배가 힘들다고 한다.

이 사페라비에 흠뻑 빠져 와인을 한 병 사서 돌아왔다.

트빌리시로 돌아오는 길가에서 숱하게 많은 사람이 포도를 양동이에 담아 팔고 있었다. 차를 세워 물어보니 큼지막한 포도 두 송이가 우리나라 돈으로 단돈 1라리(400원)다.

'조지아에선 포도로 배를 채워도 배가 부르겠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길거리에서 판매되는 포도 [사진/성연재 기자]
길거리에서 판매되는 포도 [사진/성연재 기자]

※ 연합뉴스가 발행하는 월간 '연합이매진' 2019년 10월호에 실린 글입니다.

polpori@yna.co.kr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2019/10/16 08:01 송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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