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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 명필 김생 글씨 유물, 영남 지방에 5건 더 있다"

송고시간2019-09-02 03:00

박홍국 교수, 논문서 무장사지 사적비·이차돈 순교비 등 지목

"김생 친필은 신묘해…같은 글자라도 모양·크기·획 달라"

신행선사비, 낭공대사비, 이차돈 순교비 글씨
신행선사비, 낭공대사비, 이차돈 순교비 글씨

[박홍국 위덕대박물관장 제공]

(서울=연합뉴스) 박상현 기자 = 신라 최고 명필로 유명하지만 친필이 거의 없다고 알려진 김생 글씨 자료가 영남 지방에 5건 더 존재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지난 5월 경북 김천 수도암 약광전 앞 '도선국사비'를 김생 글씨로 봐야 한다고 발표한 불교고고학자 박홍국 위덕대박물관장은 2일 경주 무장사지 아미타불조상 사적비와 국립경주박물관에 있는 이차돈 순교비 등 5건도 김생 친필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박 관장은 학술지 '신라사학보' 최신호에 실은 논문 '김천 수도암 신라비의 조사와 김생 진적'에서 김생 출생 시기는 삼국사기에 실린 711년이 아니라 740∼750년 무렵으로 생각되며, 그에 따라 8세기 후반과 9세기 초반에 작성된 비문 글씨들을 김생 진적(眞蹟·실제 필적)으로 인정할 수 있게 됐다고 주장했다.

그가 김생이 태어난 시점을 늦춰 잡은 이유는 수도암비에 등장하는 원화삼년(元和三年, 808)이라는 연호다. 박 관장은 수도암비가 김생 글자를 집자(集字)해 만든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보물 제1877호 '봉화 태자사 낭공대사탑비'와 달리 친필이라고 강조했다.

김천 수도암비
김천 수도암비

[오세윤 작가 제공=연합뉴스 자료사진]

박 관장이 김생 글씨로 지목한 무장사비는 학계에서 글씨를 쓴 사람을 두고 논쟁이 이어지고 있다. 제1행에 등장하는 '김육진'이라는 설이 있고, 황룡사 승려설도 나왔다. 중국 명필 왕희지 글자를 집자했다는 견해도 존재한다. 다만 작성 시기는 800년 전후로 의견이 모였다.

박 관장은 계명대 행소박물관이 소장한 무장사비 탁본을 분석했다고 전제하면서 "집자 흔적을 찾을 수 없는데, 3개의 유(有) 자가 모두 다르다"며 "이 정도 명필은 100년에 한 명도 나오지 않는다"고 했다.

그는 추사 김정희가 무장사비 글씨에 대해 "서품(書品·글자 품격)을 낭공대사비 위에 두는 것이 마땅하다"고 평가한 사실을 언급하고 "김생이 왕성한 활동을 전개할 당시에 굳이 필체가 거의 같은 왕희지 글자를 집자할 이유가 없다"고 지적했다.

무장사비 탁본
무장사비 탁본

[계명대 행소박물관 제공]

박 관장이 김생 글씨로 간주하는 또 다른 유물은 김천 갈항사지 동탑 상층 기단 명문(銘文)과 보물 제227호 창녕 인양사 조성비다.

갈항사지 동탑 글자는 모두 54자다. 해서(정자체)가 대부분이지만, 묘(妙)·적(寂)·법(法) 등 행서(정자체와 흘림체 중간)도 있다. 제작 시기는 신라 원성왕(재위 785∼798) 때로 판단된다.

박 관장은 이 유물에 대해 "해서와 행서가 섞였고, 서체가 낭공대사비와 유사하며, 서품이 높다는 김생 글씨 조건을 갖췄다"며 "북위풍 해서처럼 십(十)과 중(中) 자의 세로획이 유난히 짧은 점도 김생 글씨 특징"이라고 설명했다
.

김천 갈항사지 동탑 기단 명문과 탁본
김천 갈항사지 동탑 기단 명문과 탁본

[오세윤 작가 촬영·국립중앙박물관 제공=연합뉴스 자료사진]

창녕 인왕사 조성비는 북쪽을 제외한 삼면에 글씨가 있다. 810년에 세웠으며, 약 350자가 있었다고 짐작된다. 최상부는 상태가 양호한 편이지만, 중간부 아래는 마멸돼 눈으로 글자를 판독하기 힘든 상태다.

박 관장은 보(寶), 종(鍾), 오(五), 탑(塔) 자를 보면 김생 글씨가 맞는다며 "햇살이 옆에서 비칠 때 남면 최상부 글씨를 보면 힘 있고, 단정하면서도 구양순체와는 다르다는 점을 알 수 있다"고 평가했다.

그는 마지막으로 비석은 사라지고 탑본만 남은 산청 단속사 신행선사비와 경주 도심 백률사지에서 경주박물관으로 옮긴 이차돈 순교비도 김생 글씨라고 주장했다.

신라 헌덕왕 5년(813)에 건립한 신행선사비는 1천770여 자가 있으며, 비문을 지은 이는 김헌정(金獻貞)이고 글씨를 쓴 사람은 '동계사문 영업'(東溪沙門 靈業)이다.

박 관장은 "영업은 곧 김생으로, 그의 법명이었음이 틀림없다"며 "신행선사비 글씨 품격은 김생 제자나 베껴 쓰는 사람인 임서자(臨書者)가 흉내 낼 수 있는 수준이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이차돈 순교비
이차돈 순교비

[박홍국 위덕대박물관장 제공]

이차돈 순교비와 관련해서는 "지금은 맨눈으로 판독 가능한 글자가 10여 자에 불과하나, 글자를 목판에 새긴 것을 탁본한 '원화첩'이 있다"며 "마치 낭공대사비 글씨와 인쇄된 글자처럼 같아 눈을 의심케 한다"고 감탄했다.

그러면서 "이차돈 순교비는 김생 친필 비석으로 구전돼 빈번하게 탁본을 한 것 같다"며 820년께 제작한 이 비석이 현존하는 김생의 마지막 글씨 자료라고 덧붙였다.

원화첩과 낭공대사비 글씨
원화첩과 낭공대사비 글씨

[박홍국 위덕대박물관장 제공]

박 관장은 "지금까지 낭공대사비에 있는 변형된 글자 모양이 우리 머릿속에 각인돼 있어 김생 글씨를 찾지 못했다"며 "김생 글씨는 참으로 신묘하다. 같은 글자라도 모양과 크기, 획의 굵기가 다르다"고 역설했다.

이어 "글씨로 채워진 면에서는 육중함과 날렵함, 강직함과 유려함이 교차하고 생기발랄하다"며 "새겨진 모든 글자는 제자리에서 화이부동(和而不同) 극치를 보여준다"고 강조했다.

psh59@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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