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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의사실공표죄 엄격히 물어야' 울산지검 연구성과 책자 발간

송고시간2019-07-10 15:32

"실적 홍보나 피의자 압박 위해 보도자료·브리핑 남발…기소 전 공표 안 돼"

검사장 포함 연구모임 1년간 분석·토론…"국내 실정과 괴리 커" 지적도

울산지방검찰청
울산지방검찰청

[연합뉴스 자료사진]

(울산=연합뉴스) 허광무 기자 = 울산지검은 수사 실무에서 피의사실공표죄 적용을 엄격히 적용하고자 관련 내용을 연구한 결과물을 책자로 발간했다고 10일 밝혔다.

'피의사실공표죄 연구'라는 제목의 이 책은 개관, 외국 법제, 구성요건, 위법성 조각(阻却·성립하지 않음) 사유, 현황과 사례 등 5편으로 구성됐으며, 총 286쪽 분량이다.

울산지검에 따르면 송인택 검사장 이하 검사들은 지금껏 사실상 방치돼온 피의사실공표죄를 앞으로 엄격히 적용해야 한다는 필요성에 공감, 지난해 7월부터 약 1년 동안 연구모임을 운영했다.

연구모임은 법 적용상 문제점, 구성요건과 위법성, 민·형사 사례, 외국 법제 등을 분석하고 수차례 토론을 거쳐 그 결과를 책으로 정리했다.

울산지검은 피의사실공표 행위가 형법이 금지하는 명백한 범죄임에도, 현재 우리나라 각종 사건·사고 수사 과정에서 공공연히 이뤄지고 있다고 전제했다.

형법 제126조(피의사실공표)는 '검찰, 경찰 기타 범죄 수사에 관한 직무를 행하는 자 또는 이를 감독하거나 보조하는 자가 그 직무를 행할 때 피의사실을 공판 청구 전에 공표한 때에는 3년 이하 징역 또는 5년 이하 자격정지에 처한다'고 정하고 있다.

1953년 형법 제정 당시 수사기관의 피의사실공표를 범죄로 규정한 것은 '여론 재판'을 방지하고 인권을 보호하며 재판 공정성을 확보하려는 목적이었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피의사실공표가 수없이 많았음에도 민사소송에서 손해배상 책임이 인정된 사례만 있을 뿐, 검사가 기소한 사례가 전혀 없을 정도로 법조문이 사실상 사문화됐다고 울산지검은 판단했다.

보도자료 배포와 브리핑 등을 통해 혐의사실이나 수사상황이 기소 전에 빈번하게 공개되는 폐단이 반복되고 있다는 것이다.

그 원인으로는 수사기관의 의지 부족, 취재 편의를 위해 알 권리를 내세우는 언론의 요구, 피의사실공표죄의 법리 해석상 어려움, 과거 공보 관행과의 형평성 논란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것으로 봤다.

다만 검찰과 경찰은 중요 범인 검거, 국민 의혹과 불안 해소, 유사 범죄 예방 등 차원에서 각각 공보준칙과 공보 규칙을 두고 이에 근거해 수사 내용을 공개하고 있다.

울산지검은 그러나 이 준칙과 규칙 역시 법률적 근거가 없고, 예외 규정이 너무 폭넓어서 피의사실공표 피해를 방지하는 데 실효가 없다고 보고 있다.

오히려 피의사실공표가 때로는 국민 알 권리보다는 수사실적 홍보용이나 피조사자 압박용으로 악용됐으며, 언론 자유나 국민 알 권리 보장을 인정하더라도 그것이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보다 우선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송 검사장은 책 발간사에 '기소 전은 물론 기소 후에도 재판 확정 전에 피의사실을 보도하면, 수사나 재판 종사자는 물론 언론사와 기자조차 법정모독죄로 엄벌하는 영국 사례가 있는 만큼 이제 피의사실공표의 위법성 조각 사유는 엄격하고 좁게 해석돼야 한다'고 적었다.

울산지검이 발간한 '피의사실공표죄 연구' 책자 표지.
울산지검이 발간한 '피의사실공표죄 연구' 책자 표지.

[촬영 허광무]

울산지검의 이런 주장이 현재 우리나라 수사 체계나 언론 시스템과 상당히 괴리된 측면이 있어서, 실제 적용에는 무리가 있다는 반론도 있다.

울산지검 주장대로라면 수사 실적 홍보를 위해 부풀려질 수 있는 경찰의 보도자료 배포나 브리핑은 물론이고, 언론에 증거품이나 CCTV 영상을 공개하는 행위 등은 모두 불법이 된다.

피의자 소환·조사 여부, 주요 진술 등 수사상황을 설명하는 행위도 마찬가지다.

2010년 신설된 특례법에 따라 중대 사건 피의자 얼굴과 신상을 선별적으로 공개하는 것조차 피의사실공표죄와는 상충한다.

또 경찰의 수사와 송치, 검찰 수사 등 기소 이전 모든 과정을 수사기관이 일체 함구해야 한다는 것인데, 이런 경우 행여 미진하거나 잘못된 수사가 이뤄지더라도 이를 감시할 수단이 전혀 없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가령 최근 고유정 사건만 보더라도 수사기관의 미흡한 대응이 언론을 통해 소개되면서, 수사 방향과 범위를 수정하는 등 순기능도 있었다.

특히 버닝썬이나 김학의 사건 등 수사에서 드러난 검경의 수사 오류나 의혹을 고려하면 '검사가 수사를 끝낼 때까지 기다리라'는 요구를 마냥 신뢰할 수 없다는 지적도 있다.

울산지검은 이번에 발간한 책자 1천 권을 각 검찰청과 사법연수원 등 검찰 관계 기관에 배부, 수사를 지휘하고 기소 여부를 결정하는 검사에게 참고자료로 활용토록 할 계획이다.

내부용으로 발간한 것이어서 법원이나 경찰 등에는 별도로 배부하지 않을 예정이다.

이와 관련해 울산지검은 현재 울산지방경찰청 소속 경찰관 2명을 피의사실공표 혐의로 조사하고 있다.

해당 경찰관들이 올해 초 약사 면허증을 위조해 약사 행세를 한 남성을 구속한 내용을 담은 보도자료를 냈는데, 이 행위가 피의사실공표에 해당한다고 본 것이다.

울산지검은 이 사건에 대해 수사 계속 진행과 기소·불기소 여부 등을 심의해 달라며 대검찰청에 검찰수사심의위원회 소집을 요청한 상태다.

hkm@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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