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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혹한 전란으로 피란민이, 망국으로 이민자가 되어야 했다"

송고시간2019-06-05 09:33

나라 잃은 슬픔에 떠나야 했던 한 맺힌 우리 선현 이민 생활 이야기

국학진흥원 이민자 주제로 웹진 담(談) 6월호 펴내

압록강을 건너는 백하 김대락 일가(그림 정용연) [한국국학진흥원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압록강을 건너는 백하 김대락 일가(그림 정용연) [한국국학진흥원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안동=연합뉴스) 김효중 기자 = "참혹한 전란으로 고향을 떠나 피란민이, 망국으로 고국을 등지고 이민자가 되어야 했다."

한국국학진흥원이 이민자라는 주제로 스토리테마파크 웹진 담(談) 6월호를 펴냈다.

현충일과 6·25 전쟁일이 있는 6월을 맞아 망국의 한을 품고 머나먼 다른 나라로 떠나야 했던 우리 선현들 이민 생활에서 이 시대 이민자 이야기까지 이민(移民)을 주제로 폭넓게 다루었다.

5일 웹진 담 6월호에 따르면 이민은 크게는 자기 나라를 떠나 다른 나라로 이주하는, 작게는 지역을 옮겨 사는 것을 뜻한다.

이민자는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혹은 상황에 따라 더 나은 삶을 위해 떠난 사람을 일컫는다.

우리 민족 역사를 살펴보면 다른 나라에 이주해 산다는 것은 전쟁 결과로 포로로 잡혀가거나 불의의 사고가 아니고는 스스로 이민을 선택하는 사례가 거의 없다.

전쟁 포로로 잡혀갔다가 돌아온다 해도 환영은커녕 오히려 조롱을 받았음에도 그들은 고국으로 돌아오기만을 간절히 바랐다.

귀소 본능은 민족의 뿌리 깊은 정서였다. 심지어 고향을 떠나 타향으로 옮겨가는 일조차 우리 선조에게는 쉽지 않았다.

고향에서 태어나 문전옥답을 지키며 고향에서 평생 사는 것이 가장 행복한 삶이었다.

더욱이 전란이 잦고 변화가 많던 조선 초기와는 달리 이른바 태평성대가 이어지자 조선 사람에게 평화는 당연했고 전쟁준비란 쓸데없는 낭비에 불과했다.

바다 건너에서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일본을 통일했다는 소문이 스멀스멀 돌아도 그것을 냉정하게 예측하지 못했다.

마침내 1592년 일본이 수많은 병선과 군대를 앞장세워 바다를 건너 조선을 침략해 유린하자 평화는 순식간에 사라졌다.

백성은 오직 살아남기 위해 적을 피해 피란길에 올라야 했다.

그 피란민 이야기는 오희문의 일기인 쇄미록(민간인 오희문이 기록한 피란일기)에 남아 있다.

피란민은 배고픔에 처자식을 길에 버렸고, 부잣집도 하루아침에 굶주린 피란객이 되었다.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차례로 겪고도 조선은 변화하지 않았고, 강한 통상수교거부정책으로 일관하다 결국 1876년 2월 강화도 조약을 일본과 맺음으로 국운은 점차 기울었다.

이 시기부터 조선 백성은 재해와 흉년으로 고향을 버리고 압록강을 넘어 간도로 옮겨가기 시작했다.

1910년 일제가 식민지 통치를 시작한 뒤에는 이민자가 급속히 늘었다. 1910년 22만명이 되었고 1930년에는 60만명이 이주했다.

고향에 애착이 강한 민족성을 띤 우리 선조가 집안 재산을 모두 정리하고 대대손손 산 정든 집을 버리고 일가족이 압록강 저편으로 이주하는 디아스포라(흩어진 사람들이라는 뜻. 팔레스타인을 떠나 온 세계에 흩어져 살며 유대교 규범과 생활 관습을 유지하는 유대인을 이르던 말)가 일어났다.

안동 독립운동 주역이자 항일투쟁에서 선구자로 꼽히는 김대락 백하일기(白下日記)에는 그 일가가 만주로 길을 떠난 1911년에서 그가 세상을 떠나기 직전인 1913년까지 이민 생활을 기록해 놓았다.

백하 김대락(1845∼1914)은 석주 이상룡(1858∼1932) 아내인 김우락 큰 오빠이다.

본래 유가 선비의 삶을 살았고 그 집안은 경제력과 학문을 두루 갖추고 있었다.

그런 그가 망국의 그림자가 깊이 드리워진 1909년 독립운동을 결심했고 나라를 빼앗기게 되자 1911년 석주 이상룡 가문과 함께 일가친척이 간도로 갔다.

이곳에 도착해 그는 이주민 경제와 교육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신흥강습소와 경학사를 설립하고 운영하고자 했다.

그러나 모든 것이 낯설기만 한 곳에서 겪어야 했던 경험은 혹독했다.

빼앗긴 나라에서는 할 수가 없어 간도에서 새로운 미래를 만들고자 먼 길을 떠나왔으나 정작 그들을 좌절케 한 것은 이민자로서 삶의 처절함이었다.

조선에서 부족한 것 없이 갑부로 산 그들이었으나 집 지을 돈이 없을 정도로 쇠락했고 세 들어 사는 집에서 쫓겨나기 일쑤였다.

웹진 담담 6월호에 실린 소설가 손서은의 '조선인 디아스포라'는 백하 김대락과 손자인 김창로를 주인공으로 당시 간도로 간 이민자 생활상을 백하일기에 있는 내용을 중심으로 재구성한 창작물이다.

국학진흥원은 2011년부터 운영하는 스토리테마파크(http://story.ugyo.net)에 조선 시대 일기류 244권을 기반으로 창작 소재 4천872건을 구축해 검색서비스를 지원하고 있다.

kimhj@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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