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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으려면 혼자 죽지"…日 흉기난동 범인 비난 놓고 '막말' 논란

송고시간2019-06-03 17:45

히키코모리 아들 살해 전직 차관 "아이들 해칠까봐 어쩔수 없었다"

전직 고위관료 범행에 '사회적 비난 분위기가 낳은 비극' 지적 나와

(도쿄=연합뉴스) 박세진 특파원 = 지난달 28일 일본 가와사키(川崎)시에서 발생한 50대 남자의 무차별 흉기 난동 사건에 대한 TV 출연자들의 비난을 놓고 '막말' 논란이 일고 있다.

이 사건 범인인 이와사키 류이치(岩岐隆一·51)는 통학버스를 기다리던 어린이 등을 향해 흉기를 마구 휘둘러 20명을 살상하고 경찰에 체포되기 직전에 자해해 숨졌다.

이 때문에 정확한 범행동기는 오리무중이다.

다만 일본 경찰과 언론은 범인이 80대 삼촌 집에서 '히키코모리'로 불리는 은둔형 외톨이로 살아온 점을 근거로 자포자기 상태에서 사회에 품었던 막연한 불만이 범행으로 이어진 게 아닌가 추정하고 있을 뿐이다.

이런 가운데 일부 민방 출연자들의 막말 투 코멘트와 인터넷 공간에서 퍼지는 증오성 글이 논란을 낳고 있다.

논란의 대상은 자살한 이와사키를 향해 "죽고 싶으면 혼자서 죽지"라는 취지의 발언이나 글이다.

힘없는 초등학생들을 노린 범인에 대한 분노 표출로 볼 수 있지만, 일본의 전문가들은 이런 비난이 또 다른 자살을 방조하거나 유사 사건을 유발할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가와사키 교도=연합뉴스) 지난달 28일 통학버스를 기다리던 초등생 등을 상대로 흉기난동 사건이 발생한 가와사키시 현장에 추모의 꽃이 놓여 있다.

(가와사키 교도=연합뉴스) 지난달 28일 통학버스를 기다리던 초등생 등을 상대로 흉기난동 사건이 발생한 가와사키시 현장에 추모의 꽃이 놓여 있다.

3일 도쿄신문에 따르면 이와사키 용의자가 흉기 난동을 벌인 당일인 지난달 28일 오후 한 민영방송 생활정보 프로그램 진행자인 안도 유코(安藤優子)는 "혼자서 목숨을 끊으면 끝나는 것 아닌가요"라고 말했다.

이에 같은 프로에 출연한 기타 하루오(北村晴男) 변호사는 "죽고 싶으면 혼자서 죽으라고 말하고 싶어지네요"라고 맞장구를 쳤다.

또 지난달 28일 오전 다른 민방 프로그램에서 만담가인 다테카와 시라쿠는 아이를 둔 부모들이 느끼는 두려움을 강조하면서 "죽고 싶으면 혼자 죽어 주세요. 그런 사람은 말이죠"라는 코멘트를 날렸다.

이런 취지의 발언과 글은 인터넷 공간에서 기사에 달리는 댓글 등의 형태로 자주 등장하고 있다.

사회적 약자를 돕는 비영리(NPO)법인인 '홋토(후유라는 뜻의 감탄사) 플러스'의 후지타 다카노리(藤田孝典) 대표는 이런 민감한 시기에 "죽으려면 폐를 끼치지 말고 죽어라"라고 하는 식의 말을 해선 안 된다고 지적했다.

그는 "인터넷의 영향력은 엄청나다"며 "혼자서 죽으라고 하는 것은 자살을 부추기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별 생각 없이 하는 말이 당사자에게는 큰 상처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후지타 대표는 실제로 생활보호를 신청하려던 한 30대 남성이 인터넷에서 '젊은 사람이 교활하다'라는 비판을 들은 뒤 마음의 상처를 입고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례가 있다고 소개했다.

히키코모리(은둔형 외톨이)를 지원하는 단체를 소개한 책자. [교도=연합뉴스 자료사진]

히키코모리(은둔형 외톨이)를 지원하는 단체를 소개한 책자. [교도=연합뉴스 자료사진]

가와사키 사건 이후 4일 만에 발생한 전직 차관의 아들 살해사건도 '히키코모리'를 잠재적 범죄자로 취급해 막말을 쏟아내는 사회적 분위기가 낳은 비극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농림수산성 전 사무차관(차관급)인 구마자와 히데아키(熊澤英昭·76) 씨는 지난 1일 도쿄도 네리마(練馬)구의 자택에서 히키코모리로 지내던 장남 에이이치로(英一郞·44)를 흉기로 찔러 숨지게 했다.

구마자와 씨는 경찰 조사에서 가와사키 사건을 직접 거론하면서 아들이 다른 사람에게 위해를 끼칠 수 있다고 생각해 죽일 수밖에 없었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구마자와 씨의 집은 초등학교 바로 옆이고, 사건 당일 학교 운동회로 시끄러운 소리가 들린다고 아들이 화내는 것을 보고 타이르는 과정에서 심한 말싸움이 있었다고 한다.

아사히신문은 구마자와 씨가 아들의 분노가 다른 아이들을 향해 분출돼서는 안 되겠다고 느끼고 수 시간 후에 직접 흉기를 들었다고 진술했다며 '아들을 죽일 수밖에 없다'는 취지의 메모도 발견됐다고 전했다.

이런 정황으로 미뤄보면 구마자와 씨는 가와사키 사건을 계기로 TV나 인터넷에서 '히키코모리'를 겨냥해 쏟아진 막말에 어느 정도 영향을 받은 셈이 된다.

범인만을 겨냥한 막말의 위험성을 경고한 후지타 대표는 "사건 배경에는 용의자를 둘러싼 환경이 있다"며 사회적 약자의 삶을 지탱해 주는 의료나 전문인력이 부족한 복지 등 지원 체계를 확충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정신과 의사인 가야마 리카 씨는 막말이 범행을 유발할 수도 있다고 지적한다.

그는 "사는 것에 염증을 느끼는 사람에게 죽으라는 것은 최후통첩과 같은 것"이라며 "절망감을 안겨 자포자기 상태로 만드는 것은 다른 사람에게 위해를 주는 사건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parksj@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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