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검색 바로가기 메뉴 바로가기
배너
배너

[실시간뉴스]

최종업데이트YYYY-mm-dd hh:mm:ss
검색

[영화 속 그곳] 인문학적 상상력 자극하는 '강변호텔'

홍상수 감독의 영화 '강변호텔'의 스틸컷. 주인공인 시인(기주봉 분)은 아무 이유 없이 죽을 것 같다는 느낌이 들어 강변의 호텔에 묵으면서 오랫동안 안 본 두 아들을 부른다. [콘텐츠판다 제공]
홍상수 감독의 영화 '강변호텔'의 스틸컷. 주인공인 시인(기주봉 분)은 아무 이유 없이 죽을 것 같다는 느낌이 들어 강변의 호텔에 묵으면서 오랫동안 안 본 두 아들을 부른다. [콘텐츠판다 제공]

(남양주=연합뉴스) 권혁창 기자 = 홍상수 감독의 스물세번째 장편영화 '강변호텔'. 처음 제목을 본 순간, 호기심과 상상력이 발동했다.

단순히 공간적 배경이 강변호텔은 아니겠지 생각했다. '강'(江)이 갖는 풍성한 메타포(metaphor)에 흥미가 솟구쳤다.

우선 단어의 조합이 눈에 띈다. '강'(江)은 흐르는 것이고 '호텔'은 머무는 곳이다. 두 개념은 충돌하고 있지만, 동시에 자연스럽게 호응한다. '흐르다 머무는 곳'이 강변호텔 아닌가. 어쩌면 그 자체가 우리들 인생일지도 모르겠다.

영화 '강변호텔'을 촬영한 남양주 북한강변의 한 호텔 커피숍에서 내다보이는 북한강 풍경 [사진/권혁창 기자]
영화 '강변호텔'을 촬영한 남양주 북한강변의 한 호텔 커피숍에서 내다보이는 북한강 풍경 [사진/권혁창 기자]

서정인의 단편소설 '강'에는 물이 흐르는 강이 전혀 나오지 않는다. 강에 대한 묘사나 서술도 전혀 없다. 그런데 제목은 '강'이다.

소설에는 이런 말이 나온다. " 너는 아마도 너희 학교의 천재일 테지, 중학교에 가선 수재가 되고, 고등학교에 가선 우등생이 된다. 대학에 가선 보통이다가 차츰 열등생이 되어서 세상으로 나온다. " 실개천이 바다로 흘러가는 게 우리네 삶이고, 결국 여기서 강은 인생이다.

정회성은 시 '저문 강에 삽을 씻고'에서 "흐르는 것이 물 뿐이랴/ 우리가 저와 같아서/ 일이 끝나 저물어/ 강물에 나가 삽을 씻으며/ 거기 슬픔도 퍼다 버린다"라고 썼는데 그는 노동자나 민중의 한과 비애를 '흐르는 물'에 비유했다.

호텔 앞에서 바라다보이는 북한강변 풍경 [사진/권혁창 기자]
호텔 앞에서 바라다보이는 북한강변 풍경 [사진/권혁창 기자]

한남철이 쓴 소설 '강 건너 저쪽에서'에서 '강'은 중국식으로 말하면 '황천'(黃泉), 서양식으로 말하면 '레테(Lethe)의 강'이다.

소설 속 할머니의 죽음은 "나룻배를 먼저 탔기 때문에 앞서 떠나게 된 할머니가 강 저쪽에서 뒤의 행보에 타고 올 아들들을 기다리고 있는 것"이라고 표현된다.

몇해 전 90대 노부부의 이별 이야기로 관객의 눈물샘을 자극한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나 가장 오래된 서정시로 공인받은 공무도하가(公無渡河歌)와 마찬가지로 여기서 강은 죽음이다.

삶이 되기도 하고 죽음이 되기도 하는 이 아이러니한 존재는 결국 삶과 죽음의 영속적인 반복도 의미하는데 그건 곧 '역사'가 된다.

시인 박두진은 강물이 미래를 향해 흘러가는 역사의 물줄기와 같다고 생각했다. 그는 시 '강2'에서 "강이여. 강이여. 내일에의 피 몸짓"이라고 썼다. 역사가 희망적인 미래로 향할 것이라는 믿음을 '강물'을 통해 표현했다.

영화 '강변호텔' 스틸컷 [콘텐츠판다 제공]
영화 '강변호텔' 스틸컷 [콘텐츠판다 제공]

이런 역사에 대한 긍정은 자연스럽게 인간과 자연의 근원적인 생명력으로 이어진다. 이는 영원과 불멸이라는 코드로도 읽힌다.

이청준은 소설 '흐르지 않는 강'에서 이같은 '소망과 생명의 강'을 꿈꾸었다. 그는 이 생명의 강이 근대화와 산업화로 인해 소멸해 간다고 한탄하고 있다.

중국에선 예로부터 강의 본질인 '흐른다'는 것에 최고의 가치를 뒀다.

'도덕경'에서는 "최고의 선(善)은 물과 같다. 물은 만물을 이롭게 하는 데 뛰어나지만 다투지 않고, 모든 사람이 싫어하는 곳에 머문다. 그러므로 도에 가깝다.(上善若水, 水善利萬物而不爭, 處衆人之所惡, 故幾於道)"라는 유명한 문장이 있다.

법(法)이라는 한자어를 뜯어보면 '물'(水)과 '가다'(去)로 이뤄져 있다. 이는 법이라는 게 물이 흐르는 것과 같아야 한다는 뜻이니 물이 흐른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세상사의 원리인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영화 '강변호텔'을 촬영한 남양주의 호텔 전경 [사진/권혁창 기자]
영화 '강변호텔'을 촬영한 남양주의 호텔 전경 [사진/권혁창 기자]

영화 '강변호텔'에서 주인공인 시인(기주봉 분)은 아무 이유 없이 죽을 것 같다는 느낌이 들어 강변의 호텔에 묵으면서 오랫동안 안 본 두 아들을 부른다. (영화를 보면서 토마스 만의 소설 '베네치아에서의 죽음'이 떠올랐다.)

그러면서 시인은 마치 '베네치아에서의 죽음'의 주인공인 노년의 소설가가 미소년을 쫓으며 그 신적인 아름다움에 감탄하듯, 같은 호텔에 묵고 있는 두 젊은 여자에게 "정말 아름다우십니다"라는 말을 반복하기도 한다.

여배우와의 관계가 공개된 홍상수 감독의 영화는 이번에도 이러쿵저러쿵 해석이 분분하지만, 필자는 유독 '강변'에 자꾸 눈길이 간다.

촬영지인 남양주의 한 북한강변이라는 특정 장소가 아니라 '강'이라는 일반명사가 자꾸 상상력을 자극하는 것이다.

※ 연합뉴스가 발행하는 월간 '연합이매진' 2019년 6월호에 실린 글입니다.

faith@yna.co.kr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2019/06/16 08:01 송고

광고
댓글쓰기
배너
광고
AD(광고)
광고
많이 본 뉴스
많이 본 뉴스
종합
정치
산업/경제
사회
전국
스포츠
연예ㆍ문화
세계
더보기
AD(광고)
광고
AD(광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