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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급실 24시 르포] ②"야 간호사 어딨어!"…반말·폭력에 성희롱까지

송고시간2019-05-08 06:00

응급실 출근 20시간 만에 첫 식사…'역류성 식도염'은 직업병 수준

"죽음의 문턱 선 환자 살릴 때 표현할 수 없는 보람"

병원의 최전선 '응급실'
병원의 최전선 '응급실'

(서울=연합뉴스) 이정훈 기자 = 29일 저녁 서울 동작구 서울특별시보라매병원 응급의료센터 앞에 환자를 긴급 이송한 119 구급대 앰뷸런스가 대기하고 있다. uwg806@yna.co.kr

(서울=연합뉴스) 김철선 기자 = "하루 평균 150여명이 우리 응급실을 찾는데, 한 명 한 명을 진료하다 보면 시간이 훅 가버려요. 아침 7시에 출근했으니까 20시간 만에 제대로 된 첫 끼네요."

지난달 30일 오전 3시 30분께 서울대병원운영 서울특별시보라매병원(보라매병원) 응급의료센터. 줄지어 오는 응급환자들로 분주하던 응급실에 잠시 여유가 생기자, 서울대병원 수련의 1년 차 김유나(29)씨는 도시락으로 15분 만에 식사를 해결했다.

김씨는 "응급환자들은 쉴 새 없이 실려 오고, 환자들 상태를 확인하다 보면 끼니 거르는 것은 일상"이라며 "보통 초콜릿이나 과자로 허기를 채우다가 환자가 뜸해지면 후다닥 밥을 먹는다"고 했다.

응급환자를 진료하느라 식사를 못 한 전공의 1년 차 허지한(28)씨는 컴퓨터 모니터에 눈을 고정한 채 "출근 후 밥을 한 끼조차 못 먹고 있다. 흙이라도 먹고 싶은 상태"라며 애써 웃음을 지었다.

이날 새벽 보라매병원 응급실은 의료진 12명(당직 교수 1명, 전공의 2명, 수련의 2명, 간호사 7명)이 통증을 호소하는 응급환자들 사이를 바삐 오가며 진료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응급실에서 근무하는 의료진에게 철야 근무는 기본이다. 당직 교수와 전공의는 오후 7시부터 다음날 오전 7시까지 12시간씩 2교대로 응급실을 지키고, 수련의는 격일마다 오전 7시에서 다음날 오전 7시까지 24시간 연속으로 근무한다. 간호사들은 8시간씩 3교대다.

피곤에 지친 응급실 의료진
피곤에 지친 응급실 의료진

(서울=연합뉴스) 김주성 기자 = 지난달 30일 오전 서울 동작구 보라매병원 응급실에서 한 의사가 회의실에 책상에 엎드려 잠시 휴식을 취하고 있다.utzza@yna.co.kr

의료진 책상 위에는 졸음과 피곤을 쫓기 위한 자양강장제와 커피 등 카페인 성분이 함유된 음료가 어지럽게 놓여 있었다.

전공의 4년 차 김하영(36)씨는 "응급실 사람들이 새벽에 커피를 많이 마시다 보니 대부분 역류성 식도염을 앓고 있다"며 "일종의 직업병"이라고 했다.

근무 강도가 워낙 높은 탓일까. 응급실 의료진 사이에는 응급환자에 관해 여러 속설과 징크스가 널리 퍼져 있다.

김하영 전공의는 "'환타'를 마시면 '환자가 탄다'(환자가 몰린다)는 얘기가 있어 응급실에서는 환타를 잘 마시지 않는다"며 웃었다.

또 아침에 딸기 맛 우유를 마시면 그날 환자가 적어진다거나, 응급실 환자가 적을 때 '한가하다'고 말하면 환자가 다시 몰려 바빠진다는 속설도 있었다.

보라매병원 근무 8년 차 배기탁(33) 간호사는 "속설은 속설일 뿐"이라면서도 "응급실 근무가 워낙 힘들다 보니 그런 얘기들이 우스갯소리처럼 돌아다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응급의학과는 전문의를 준비하는 수련의와 전공의 사이에서도 업무 강도가 가장 높은 곳으로 '악명'이 높다.

특히 시립 공공병원인 보라매병원 응급실에는 행려자나 노숙인 등 취약계층 응급환자가 많이 몰려 일반병원보다 더 힘든 편이다. 주취자응급의료센터로도 지정돼 술 취한 환자로 인한 소동도 잦다.

이날도 환자 난동 등 긴급상황에 대비해 체격이 좋은 보안요원과 테이저건 등 진압 장비를 휴대한 경찰관이 대기 중이었다. 완력이 필요한 상황이 잦은 응급실 업무 특성으로 보라매병원 남자간호사의 3분의 1이 응급실에서 근무한다.

난동의 결과
난동의 결과

(서울=연합뉴스) 이정훈 기자 = 29일 저녁 서울 동작구 서울특별시보라매병원 응급의료센터에서 욕설을 하며 난동을 피우던 한 환자가 보안요원에 의해 결박당하고 있다. uwg806@yna.co.kr

응급실 근무가 육체적으로 고되기도 하지만, 의료진은 환자들로부터 받는 '마음의 상처' 역시 크다고 했다.

오전 6시께 응급실 침상에 누워 있던 한 환자는 "야 간호사! 간호사 어딨어"라고 소리치며 의료진을 불러댔다.

김하영 전공의는 "환자들로부터 '아가씨', '언니' 소리 듣는 것은 일상이고, 일부 환자는 여성 전공의를 보고는 '간호사 말고 의사를 데려오라'고 요구하기도 한다"며 "응급실 근무 초기에는 자주 상처를 받곤 했다"고 말했다.

배기탁 간호사는 "술에 취한 환자들이 의료기구를 던지거나, 의료진을 대상으로 폭행을 저지르는 경우가 종종 발생한다"며 "응급실에 함께 근무하는 동료 간호사가 환자로부터 뺨을 맞는 것을 목격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이어 "일부 주취 환자들은 체격이 좋은 남자간호사에게는 그렇게 하지 못하면서 여자 간호사에게만 무례하게 행동하기도 한다"며 "여자 간호사들이 환자로부터 성희롱이나 성추행을 당하는 경우도 많다"고 설명했다.

환자로부터 상처받는 일도 많지만, 의료진은 응급실에서 버틸 수 있는 이유 역시 환자라고 입을 모았다.

김하영 전공의는 "다른 전공과 달리 응급실에선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더 많다고 생각한다"며 "실제 환자들의 아픔을 가장 먼저, 직접 해결해줄 수 있다는 것은 응급실만의 매력"이라고 했다.

보라매병원 응급의학과 송경준 교수는 "죽음의 갈림길에 서 있는 응급환자를 소생실에서 살려내는 것이 제일 큰 보람"이라며 "환자들이 회복 후 감사를 표할 때 느끼는 보람은 잊을 수 없다"고 말했다.

폭력적인 환자에게 투입된 보안직원
폭력적인 환자에게 투입된 보안직원

(서울=연합뉴스) 김주성 기자 = 지난달 30일 오후 서울 동작구 보라매병원 응급실에서 한 환자가 의료진의 통제에 따르지 않고 폭력적인 언행을 계속하자 보안 직원들이 대응하고 있다. utzza@yna.co.kr

kcs@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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