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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교분리 철저한 프랑스, 노트르담 화재로 '라이시테' 뛰어넘어

노트르담 성당, 佛 문화적 정체성의 '정수'…프랑스 전체가 감정이입
지난 15일(현지시간) 파리 노트르담 대성당 화재가 발생하자 기도하는 파리 시민들 [AP=연합뉴스]
지난 15일(현지시간) 파리 노트르담 대성당 화재가 발생하자 기도하는 파리 시민들 [AP=연합뉴스]

(파리=연합뉴스) 김용래 특파원 = "우리의 뿌리는 죽지 않는다. 오래된 국가여 일어나라."

프랑스의 역사학자이자 작가인 장 세비야가 파리 노트르담 대성당 화재가 발생하자 15일(현지시간) 트위터에서 이 성당이 프랑스 국가와 문화의 '정수'임을 강조하면서 쓴 말이다.

엄격한 세속주의에 따라 종교와 정치의 분리가 확고한 프랑스가 노트르담 대성당 화재를 계기로 '라이시테'(정교분리)의 전통을 초월해 단합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는 노트르담 대성당이 단순히 가톨릭교회 건물이 아니라 프랑스의 정치·종교·문화적 정체성을 아우르는 문명의 상징이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파리 노트르담 대성당 화재 발생 당일 많은 프랑스 시민들은 성당 주변으로 몰려들어 화마가 성당을 집어삼킬 듯 확산하는 모습을 가슴 졸이며 지켜봤다.

이때 평소 프랑스의 거리에서 쉽게 보기 어려운 장면들이 여러 곳에서 목격됐다.

시민들은 불타는 성당을 멀리서 초조하게 지켜보며 함께 무릎을 꿇고 기도했고, 가톨릭 성가를 같이 부르며 속히 화재가 진압되기를 빌었다.

라이시테의 원칙과 전통에 따라 공립학교와 관공서 등 공적 공간에서 특정 종교를 드러내는 복장이나 상징물을 엄격히 금지하는 프랑스에서는 거리에서 쉽게 보기 어려운 광경이었다.

프랑스 헌법에도 명시된 '라이시테'는 사적인 영역에서 종교의 자유를 철저히 보장하되 정치 등 공적인 영역에서는 비(非)종교성을 엄격하게 지켜야 한다는 내용으로 요약된다.

프랑스는 역사적으로 중세의 신·구교 간 종교전쟁과 드레퓌스 사건 등을 겪으며 종교가 정치에 개입하는 것에 매우 비판적인 전통이 생겨났고, 공화정 수립과정에서 이를 헌법에 반영해 오늘날에 이르렀다.

파리 노트르담 대성당도 공화정과 세속주의의 원칙에 따라 1905년 국가의 재산으로 귀속됐다.

이처럼 정교분리의 원칙이 확고한 프랑스에서 가톨릭을 넘어서 노트르담 대성당의 화재에 시민들이 감정이입을 하는 것은 대성당이 프랑스의 문화의 '정수'로서 가톨릭과 기독교를 넘어서 보편적인 가치를 체현한 공간이기 때문이다.

작가 장 세비야는 "노트르담 성당 화재로 느낀 국민적 충격은 세속주의 원칙을 가장 신봉하는 사람들에게까지도 모든 분야가 프랑스의 기독교 유산과 연결됐다는 점을 보여준다"고 설명했다.

지난 15일(현지시간) 파리 노트르담 대성당 화재가 발생하자 기도하는 파리 시민들 [AFP=연합뉴스]
지난 15일(현지시간) 파리 노트르담 대성당 화재가 발생하자 기도하는 파리 시민들 [AFP=연합뉴스]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이 노트르담 성당의 화재 소식에 예정된 대국민 담화까지 취소하며 발표한 첫 메시지가 "우리의 일부가 불탔다"였던 것은 노트르담 대성당이 프랑스인들에게 갖는 의미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일간 르 몽드도 17일(현지시간) 분석 기사에서 "가톨릭에서 우리는 종교적이라기보다는 정치적이고 문화적인 정체성을 확인한다"면서 "종교적 정체성은 세대를 거쳐 내려오면서 상당 부분 사라졌지만, 화염에 휩싸인 노트르담 대성당 앞에서 느낀 프랑스인들의 집단적 감정은 종교적 정체성이 여전히 뿌리 깊게 자리 잡고 있음을 보여준다"고 평가했다.

프랑스 가톨릭계는 노트르담 화재 발생 직후부터 계속해서 기독교 사회가 아닌 프랑스 전체에 호소하고 있다.

미셸 오프티 주교는 RMC 방송에 출연해 "노트르담 성당은 우리의 역사와 함께한 프랑스의 영혼"이라면서 노트르담이 종교의 유무와 상관없이, 그리고 기독교인 여부와 관계없이 모든 이들에게 의미가 큰 존재이며 화합의 근원이라고 강조했다.

프랑스 제1야당 공화당의 유럽의회 선거 후보이자 독실한 가톨릭 신자로 알려진 정치인 프랑수아 자비에 벨라미도 트위터에서 "마음의 충격을 받는데 (가톨릭) 신자라는 사실이 필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가족의 재발견"이라고 말했다.

신앙과 종교적 정체성과 상관없이 프랑스인들은 하나의 연대의식으로 묶인 공동체라는 것을 강조한 것이다.

종교사학자 베르나르 르콩트는 BFM TV와 인터뷰에서 "만일 파리가 에펠탑이라면 프랑스는 노트르담 대성당이다. 프랑스의 모든 문화와 역사가 이 건축물에 구현됐다"고 말했다.

yonglae@yna.co.kr

2014년 10월의 파리 노트르담 대성당 [AFP=연합뉴스 자료사진]
2014년 10월의 파리 노트르담 대성당 [AFP=연합뉴스 자료사진]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2019/04/17 20:13 송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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