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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이 모두 잊은 천재화가 '뻰 봐를렌'…변월룡을 만나다

학고재서 첫 상업화랑 전시…"한국미술사 부족한 부분 채워줄 작가"
묘사력·생동감 탁월한 인물화·동판화 등 189점 선보여
1947년 레핀미술대 졸업심사를 받는 변월룡.
1947년 레핀미술대 졸업심사를 받는 변월룡.그는 '조선의 어부들'로 러시아 최고의 레핀미술대를 수석 졸업했다. [학고재갤러리 제공]

(서울=연합뉴스) 정아란 기자 = 어촌 풍경을 담은 대형 회화 앞에 중절모를 쓴 나이 지긋한 서양인들이 몰려 있고, 맞은편에는 동양인 청년이 서 있다. 젊은이는 공손한 자세이지만, 야무진 입매에서는 자신감이 묻어난다.

흑백사진 속 청년은 1947년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레핀미술대 졸업심사에 '조선의 어부들'을 선보인 변월룡이다. 당시 사회 분위기상 미대에서는 이념적인 색채가 짙은 작품을 선호했음에도, 변방 출신 고려인 젊은이는 뿌리의 풍경을 그려낸 작품으로 러시아 최고 미대를 수석 졸업했다.

정치적 배경 때문에 남·북한 모두에서 오랫동안 잊혔다가 2016년 국립현대미술관 회고전을 계기로 대대적으로 조명된 변월룡(1916∼1990) 작업이 국내 상업화랑에서 처음 전시된다.

17일 서울 종로구 소격동 학고재갤러리에서 개막하는 '우리가 되찾은 천재 화가, 변월룡' 전을 통해서다.

변월룡, 햇빛 찬란한 금강산, 캔버스에 유채, 78×59cm, 1953
변월룡, 햇빛 찬란한 금강산, 캔버스에 유채, 78×59cm, 1953[학고재갤러리 제공]

학고재 전시는 유족 소장품 중에서 회화 64점, 판화 71점, 데생 54점을 추려 총 189점을 선보인다. 약 200점을 소개한 국립현대미술관 회고전 못지않은 규모다. 본관과 신관 모두를 사용함에도 갤러리가 비좁게 느껴질 정도다.

'햇빛 찬란한 금강산'(1953) 등 출품작 절반가량은 국립현대미술관 회고전 당시 소개되지 않은 작품이라는 점에서 이번 전시 의미가 있다.

25년간 변월룡 연구에 전념한 문영대 미술평론가가 전시 기획을 맡았다.

그는 1994년 국립러시아미술관에 전시된 '금강읍에서'를 보면서 4년 전 고인이 된 변월룡과 인연을 맺게 됐다. "복도에 걸린 작품에서 너무나 한국적인 정서를 느꼈습니다. 서양인이 그린 한국 풍경일 리는 없다고 생각했죠. 러시아어를 알지 못한 탓에 이름 '뻰 봐를렌'(변월룡의 러시아 이름)만 적어 뒀다가 작가를 찾아 나섰습니다."

변월룡, 토고인 제자 라이몬드 델라케나, 캔버스에 유채, 100×65cm, 1974
변월룡, 토고인 제자 라이몬드 델라케나, 캔버스에 유채, 100×65cm, 1974[학고재갤러리 제공]

전시는 변월룡 삶과 예술을 시간순으로 소개한다.

변월룡은 연해주 유랑촌에서 유복자로 태어났다. 어릴 적 학교 미술교과서 삽화를 맡아 '월룡이는 자기가 그린 교과서로 공부한다'는 이야기를 들을 정도로 일찌감치 미술에 탁월한 재능을 보였다. 그는 레핀미대를 수석 졸업한 뒤 대학교수가 됐다. 소련 정부 지시로 1953년 북한으로 건너간 그는 평양미대 학장을 맡아 학교 초석을 다지는 데 공헌했다.

변월룡은 그러나 북한 당국의 귀화 종용에 응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북한 땅을 다시는 밟지 못했다. 북한에서는 숙청됐다는 이유로, 남한에서는 미술계와 아무런 끈이 없었던 관계로 잊혔지만 '평양 모란봉 을밀대'(1958)와 같은 전시장 그림들은 조국을 향한 진한 그리움을 드러내 보인다. 그림 한 귀퉁이에 한글로 제 이름과 제목을 쓴 점도 그 마음을 짐작게 한다.

국내에 처음 공개된 '토고인 제자 라이몬드 델라케나'(1974) 같은 작품은 인물화에 유독 출중했던 면모를 보여준다. 변월룡 초상화는 무용가 최승희, 화가 정관철, 지도자 블라디미르 레닌 등 유명 인사부터 잡역부, 학생 등 평범한 학생까지 다양하다.

변월룡, 레닌께서 우리 마을에 오셨다!, 동판화 Etching, 49.3×91.5cm, 1964
변월룡, 레닌께서 우리 마을에 오셨다!, 동판화 Etching, 49.3×91.5cm, 1964[학고재갤러리 제공]

전시장을 거닐다 보면 펜화보다 더 뛰어난 사실감과 생동감을 안겨주는 동판화들이 자연히 눈에 들어온다.

변월룡은 17세기 네덜란드 화가 렘브란트를 존경했지만, 정작 레핀미술대 동료들은 "동판화에 있어서만큼은 변월룡이 렘브란트보다 낫다"라고 말할 정도였다.

이번 전시는 사실상 남한 미술사에 머물렀던 한국미술사의 경계를 좀 더 넓히려는 시도이기도 하다. 문 평론가는 "통일 한국미술사에서 남과 북을 잇는 연결 고리 구실을 할 작가"라면서 "아카데미즘과 리얼리즘을 망라한 변월룡 작품은 한국미술사에서 부족한 부분을 채워줄 것"이라고 강조했다.

전시는 5월 19일까지.

airan@yna.co.kr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2019/04/17 17:11 송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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