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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승 교수 "독립선언서 공약삼장, 만해가 안썼다"

송고시간2019-04-09 15:30

3·1운동과 임시정부 실증적으로 재조명한 '1919' 출간

"1919년은 20세기 한국사에서 가장 빛났던 시기"

신간 '1919' 소개하는 박찬승 교수
신간 '1919' 소개하는 박찬승 교수

(서울=연합뉴스) 류효림 기자 = 박찬승 교수가 9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1919' 출간 기념 기자간담회에서 책 소개를 하고 있다. 2019.4.9 ryousanta@yna.co.kr

(서울=연합뉴스) 박상현 기자 = "만해 한용운 선생이 독립선언서 마지막 부분인 공약삼장(公約三章)을 썼다는 이야기가 정설로 굳어졌습니다. 공약삼장은 본문과 비교하면 문체가 단호해요. 하지만 여러 기록을 보면 독립선언서는 육당 최남선이 단독 집필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박찬승 한양대 사학과 교수는 출판사 다산초당이 9일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마련한 '1919: 대한민국의 첫 번째 봄' 출간 간담회에서 "한용운은 최린에게 독립선언서 작성을 일임한다고 했고, 최린은 선언서만은 육당이 짓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다"며 최남선이 초안을 쓴 뒤 첨삭은 없었다고 주장했다.

'배타적 감정으로 일주(逸走)하지 말라', '최후의 일인까지 민족의 정당한 의사를 쾌히 발표하라', '일체의 행동은 질서를 존중하라'로 요약되는 공약삼장은 독립선언서 초안에 만해가 추가했다고 널리 알려졌으나, 이런 견해는 사실이 아니라는 것이다.

3·1운동과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아 다양한 논문과 저서가 발표되는 상황에서 한국 근현대사 연구자인 박찬승 교수가 내놓은 신간 '1919'는 일반인 눈높이에 맞춰 1919년에 일어난 역사적 사실을 실증적으로 정리하고 잘못 알려지거나 왜곡된 정보를 지적한 책이다.

그는 "일단 해석은 접어두고 사실을 쓰고자 했다"며 "많은 사람이 읽도록 쉽고 재미있게, 감동적 이야기를 섞어가면서 서술했다"고 강조했다.

그동안 3·1운동과 임시정부에 관한 책은 대부분 사건의 원인과 배경, 전개 과정, 결과와 영향으로 나눠 기술했다. '1919'는 이러한 구성을 따르면서도 영화나 소설처럼 1919년에 일어난 일을 시간순으로 촘촘하게 기록했다.

박 교수는 "3·1운동을 준비하면서 천도교와 기독교가 합작하게 된 과정, 민족대표 33인 선출, 독립선언서 인쇄, 1919년 3월 1일과 5일 서울 만세시위에 대한 내용을 날짜와 시간까지 고려해 세세하게 적었다"며 "3·1운동 시위는 제각각 성격이 다른데, 평화 시위·항의 시위·공공기관 점거 및 공격 시위로 구분했다"고 설명했다.

박찬승 교수, 100년 전 그 날의 이야기 담은 '1919' 출간
박찬승 교수, 100년 전 그 날의 이야기 담은 '1919' 출간

(서울=연합뉴스) 류효림 기자 = 박찬승 교수가 9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1919' 출간 기념 기자간담회에서 책 소개를 하고 있다. 2019.4.9 ryousanta@yna.co.kr

그는 독립선언서 작성자뿐만 아니라 인쇄 매수에 대한 오류도 항간에 전파되고 있다는 견해를 드러냈다.

박 교수는 "독립운동가 이종일이 남긴 비망록에 독립선언서를 며칠에 걸쳐 인쇄해 3만5천 부를 찍었다고 기록됐지만, 재판기록과 다른 인물의 회고록을 보면 1919년 2월 27일 오후 9시부터 자정까지 2만1천 부를 인쇄한 것이 옳다"며 "독립선언서 중에는 보성사판과 신문관판이 전하는데, 신문관판은 당시에 인쇄한 문서가 아니다"라고 역설했다.

신문관은 최남선이 세운 출판사인데, 국가기록원이 지정한 국가지정기록물 독립선언서 중에는 보성사판과 신문관판이 있다. 두 선언서는 단어와 국문 표기·성명 등에서 구별되는데, 첫 줄에서 신문관판이 '조선'(朝鮮)이라고 정확히 표기한 부분을 보성사판은 '선조'(鮮朝)라고 인쇄했다.

박 교수는 "독립선언서를 찍을 당시 상황이 매우 급박하게 돌아갔다"며 "신문관판은 띄어쓰기가 돼 있고 맞춤법도 현대적인데, 보성사판은 그렇지 않다. 신문관판은 해방 이후 언젠가 삼일절 행사를 하면서 참석자에게 나눠준 것으로 보인다"고 추정했다.

아울러 박 교수는 민족대표 33인이 변절자라는 비판에 대해 "민족대표는 자수한 것이 아니라 민중이 무장한 경찰들에게 다치는 것을 우려해 독립선언 사실을 통고했을 뿐"이라며 "민족대표가 고문을 받지는 않았으나 옥살이를 하면서 힘든 나날을 보냈다"고 설명했다.

그는 정부가 지난해 임시정부 수립일을 4월 13일에서 4월 11일로 바꾼 것은 역사적 사실로 입증되는 사안이며, 임시정부가 임시헌장에 '민주공화제'라고 명기한 점은 매우 선구적이었다고 강조했다.

박 교수는 최근 정치권을 중심으로 이뤄진 3·1운동 관련 조처와 문제 제기에 대한 입장도 밝혔다. 그는 "유관순 열사에게 1등급 훈장을 추가로 서훈하기 전에 시간을 두고 여론을 수렴했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며 "서훈은 학술적이지 않고 정치적인 행위인데, 훈장 등급은 다양한 변수를 고려해 결정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3·1운동을 혁명으로 보기에는 시기적으로 조금 이른 듯하다"면서 "혁명이라는 말이 멋있기는 하지만, 이에 연연하고 집착할 필요는 없다"고 덧붙였다.

그는 책에 실은 '감사의 말'에서 책을 집필하는 동안 새삼스레 3·1운동에 참여한 이들에 대한 존경심을 느꼈다고 털어놨다. 간담회에서도 1919년을 매우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20세기 한국사 중에서 가장 빛나는 시기가 1919년입니다. 한국인이 하나로 똘똘 뭉친 사건은 3·1운동밖에 없어요."

psh59@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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