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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 새 연호, 중국 아닌 일본 고전 첫 인용 의미는

日 국민 자부심 고양 효과 기대한 듯…국수주의 강화 우려도

(도쿄=연합뉴스) 박세진 특파원 = 일본이 오는 5월 1일 즉위하는 나루히토(德仁·59) 새 일왕 시대를 규정할 연호를 처음으로 일본 고전에서 인용한 '레이와'(令和)로 결정한 것은 여러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일본에서 원호(げんごう, 元號)라고 통칭하는 연호는 기원전 중국에서 시작된 제도를 받아들인 것으로, 일본인들이 '덴노(天皇)'라 부르는 임금이 즉위하는 해에 붙이는 이름이다.

일본 새 연호 전하는 TV
일본 새 연호 전하는 TV(지바 교도=연합뉴스) 스가 요시히데 일본 관방장관이 1일 총리관저에서 일본의 새 연호 '레이와'(令和)를 발표하는 장면이 가전양판점의 TV에 나오고 있다. 2019.4.1

일본은 아스카(飛鳥) 시대인 서기 645년 제36대 고토쿠(孝德) 일왕의 다이카(大化) 연호를 시작으로 중국에서 받아들인 이 제도를 1천400년 가까이 유지하는 유일한 나라다.

지금도 연호가 시작되는 원년(元年)을 기준으로 삼는 햇수를 서기(西紀)와 함께 공문서 등에서 광범위하게 쓴다.

그간 일본의 연호는 사서삼경으로 대변되는 중국 고전에 나오는 좋은 글을 인용해 한자(漢字) 두 자로 만들어온 게 일반적인 관례였다.

현지 언론에 따르면 출전이 명확히 확인되는 서기 10세기 이후 일본 연호의 출전을 보면 서경(書經)이 36차례로 가장 많고, 그다음이 역경(易經) 27차례, 시경(詩經) 15차례라고 한다.

현 아키히토(明仁) 일왕의 연호인 헤이세이(平成)를 포함해 종전까지 채택한 총 247개 연호의 출전이 예외 없이 중국 고전이었던 셈이다.

하지만 이번에 처음으로 일본 고대 시가집인 만요슈(万葉集)에 나오는 구절에서 연호를 따왔다.

이에 대해 아베 신조 총리는 "만요슈는 1천200여년 전 편찬된 일본 최고의 노래집"이라며 "천황, 황족, 귀족은 물론이고 농민까지 폭넓은 계층의 사람들이 부른 노래가 들어 있다"고 말했다.

일본의 풍부한 문화와 오랜 전통을 상징하는 국서(國書)라는 것이다.

아베 총리는 유구한 일본의 역사를 계승하면서 봄철에 화사하게 피어나는 매화꽃처럼 일본인 모두가 내일을 향한 희망과 함께 꽃을 피워 나가자는 염원을 담아 '레이와'로 결정했다고 설명했다.

일본 국민은 일상생활에서 자주 쓰는 연호가 처음으로 자국 고전에서 나왔다는 점에 대해 자긍심을 높일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레이와' 속의 '와'(和)는 일본 요리를 의미하는 '와쇼쿠'(和食)라는 단어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일본 자체를 뜻하는 말이기도 하다. 이런 배경에서 새 연호를 놓고 연호와의 일체화가 한층 강해지고 있는 '천황제'를 바탕으로 아베 총리 정부가 일본 중심의 국수주의를 강화해 나가겠다는 메시지를 던진 게 아니냐는 지적이 나올 수 있다.

(도쿄=연합뉴스) 나루히토 새 일왕의 연호로 결정된 '레이와'(令和)가 인용된 일본 고대 시가집 '만요슈'의 해당 구절.
(도쿄=연합뉴스) 나루히토 새 일왕의 연호로 결정된 '레이와'(令和)가 인용된 일본 고대 시가집 '만요슈'의 해당 구절.

일본에서 연호는 제국주의로 치닫는 계기가 됐던 1868년의 메이지(明治) 유신 이후 일왕을 중심으로 시대를 구분 짓는 의미가 한층 강해졌다.

'1대(代) 덴노의 연호를 하나로 한다'는 일세일원(一世一元) 원칙이 정착됐기 때문이다.

그전에는 한 일왕의 재위 기간에 천재지변이나 국가적으로 경축할 일이 있을 때 사회 분위기를 바꾸기 위해 새 연호를 도입하기도 하는 등 연호와 특정 왕 간의 연결고리가 약했다는 평가다.

실제로 메이지 일왕 직전인 제121대 고메이(孝明) 일왕 시기의 경우 21년간 고카(弘化), 가에이(嘉永), 안세이(安政) 등 7개의 연호가 사용됐다.

그러나 메이지 이후 자리 잡은 일세일원 원칙은 1979년 제정된 원호법을 통해 완전히 뿌리를 내렸다.

옛 일제 헌법하에서는 연호 규정이 왕실(황실)전범에 명기돼 있었지만 천황제를 약화하고자 했던 미국 주도 연합군의 입김이 반영된 새 일본 헌법하의 왕실전범에는 관련 조문이 빠졌다. 연호를 유지할 법적 근거가 사라진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연호 사용의 법적 근거를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보수층을 중심으로 높아져 결국 원호법이 만들어졌다.

이 법은 '연호는 정령(내각이 제정하는 시행령)으로 정하고, 왕위(황위) 계승이 있는 경우만 바꾼다(일세일원 원칙)'는 딱 두 개의 본문 조항으로 이루어져 있다.

중국에서조차 사라진 이 제도를 일본이 고수하는 배경에는 천황제를 지키고자 하는 사회 분위기와도 연관이 있다.

중국에서는 1911년 신해혁명이 일어나 청나라가 멸망하고 중화민국이 성립하면서 청 마지막 황제인 푸이(傅儀)의 '선통'(宣統)을 끝으로 2천년 이상 이어져 온 연호 제도가 폐지됐다.

일본은 국민 생활과 밀접한 연호를 유지함으로써 태평양전쟁 패전 후 제정된 새 헌법에서 국민통합을 상징하는 지위로 바뀐 일왕의 존재를 지속적으로 각인하는 효과를 보고 있다.

천황제에 반대하는 단체인 반천황제운동연락회(反天連) 등 일부 단체가 천황제와 연호의 폐지를 함께 요구하는 것은 그런 배경과 무관치 않다는 분석이다.

parksj@yna.co.kr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2019/04/01 14:46 송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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