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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년 넘게 이어진 강제노역의 아픔…239명 집단소송 신청

송고시간2019-03-31 13:21

일제 강제징용 집단 손해배상 접수 시작
일제 강제징용 집단 손해배상 접수 시작

(광주=연합뉴스) 25일 오전 광주시청 1층 민원실에 차려진 '일제 노무동원 피해자 손해배상 집단소송 접수처'에서 피해자 유가족들의 소송 신청과 문의가 이어지고 있다. 2019.3.25 iny@yna.co.kr

(광주=연합뉴스) 천정인 기자 = 일제 강제노역에 대한 집단 손해배상 소송이 추진되고 있는 가운데 소송에 참여한 피해자와 유가족들의 안타까운 사연이 주목받고 있다.

31일 근로정신대 할머니와 함께하는 시민모임에 따르면 광주 남구 진월동에 거주하는 서모씨는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난 부친의 한을 풀기 위해 소송에 참여했다.

서씨의 아버지는 1941년 5월 일본 경찰에 강제로 끌려가 나가사키에 있는 탄광 인부로 일해야 했다.

열악한 환경에서 탄광 막장 작업을 했던 그는 탄광 천장이 무너져 머리와 가슴 등을 심하게 다치는 사고를 당했다.

병원으로 옮겨져 겨우 목숨은 부지했지만, 그 때부터 부상 후유증 때문에 정상적인 생활을 하지 못했다.

서씨는 해방 후 집으로 돌아온 아버지가 병상에 누워 매일 피를 토하던 모습을 잊지 못한다고 했다.

당시 초등학교 1학년을 다니고 있던 서씨는 이런 아버지의 병간호를 위해 학교를 그만둬야 했다.

가족이 지극정성으로 보살폈지만, 부친은 5년 뒤인 1950년 42살의 젊은 나이로 세상을 등졌다.

전남 장성에 사는 차모씨의 부친도 탄광으로 끌려갔다.

그는 탄광 식당에서 작업장까지 밥통을 짊어지고 가다 험한 산길에서 굴러떨어지는 사고를 당했다.

이 사고로 척추에 이상이 생겼지만 제대로 치료를 받지 못해 평생을 허리가 굽은 채 살아야 했다.

해방 후 전남 고흥에 내팽겨쳐진 차씨의 부친은 같은 동네에 살던 형님들의 도움으로 손수레에 실려 집으로 돌아와야 했다.

광주 동구에 사는 이모씨는 일본 경찰 2명이 찾아와 아버지를 밧줄로 묶어가던 모습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이후 생사조차 모르고 있던 아버지는 해방 이후 집으로 돌아왔지만, 강제노역 후유증으로 금방 돌아가셨다.

그때 아버지의 병간호를 하느라 초등학교도 다니지 못했던 게 이씨에겐 평생의 한으로 남아있다.

이씨는 "아버지가 일하지 못하고 일찍 돌아가시자 어머니가 자식들 먹여 살리느라 궂은일을 많이 하셨다"며 "지금도 그 얘기를 하면 눈물이 난다"고 말했다.

또 다른 강제노역 피해자 유가족은 "대부분 피해자 가족들은 아버지들이 젊은 나이에 끌려가면서 경제적으로 어려운 삶을 살았다"며 "교육도 제대로 받지 못해 가난이 대물림 되는 등 일제의 만행이 현재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말했다.

한편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 광주전남지부와 근로정신대 할머니와 함께하는 시민모임은 지난 25일부터 일제 전범기업을 상대로 집단 손해배상 소송을 추진하기 위해 피해자와 유가족들의 신청을 받고 있다.

지금까지 현장접수 222건, 우편접수 17건 등 모두 239건이 접수됐다.

신청은 내달 5일까지 광주시청 1층 접수처에서 가능하다.

iny@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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