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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버스테러 저지한 이집트계 이민2세…"시민권 희망"

송고시간2019-03-22 06:00

13세 라미 셰하타 "장래 희망은 경찰"…살비니 부총리 "긍정적 검토"

(로마=연합뉴스) 현윤경 특파원 = 20일 이탈리아 북부 밀라노 인근에서 12∼13세의 아동 50여 명을 태운 스쿨버스가 정부의 강경 난민 정책에 불만을 품은 아프리카계 운전사에 의해 납치돼 방화로 전소되는 아찔한 일이 벌어진 가운데, 공포 속에서도 침착하게 기지를 발휘해 참사를 막은 영웅이 이집트 국적 소년인 것으로 드러났다.

21일 라레푸블리카, ANSA통신 등 현지 언론에 따르면, 범인이 40여 분 동안 이어진 납치·방화극의 초반에 버스 탑승자 전원으로부터 휴대전화를 압수하고, 손을 결박했으나 버스 뒷쪽에 타고 있던 라미 셰하타(13)라는 이름의 이집트 국적의 소년은 휴대전화를 은밀히 숨기는 데 성공했다.

스쿨버스 방화 사건에서 참사를 막은 '영웅'으로 떠오른 이집트 소년 라미 셰하타 [ANSA통신]

스쿨버스 방화 사건에서 참사를 막은 '영웅'으로 떠오른 이집트 소년 라미 셰하타 [ANSA통신]

그는 이후 감시의 눈을 따돌리고 결박을 풀었고, 범인의 의심을 피하기 위해 이슬람 기도를 하는 것처럼 웅얼거리는 척하며 경찰에 전화를 걸었다.

"영화가 아닌 실제 상황이다. 즉시 경찰을 보내달라"는 소년의 다급한 신고를 받은 경찰은 즉각 차량 추적에 나섰고, 범인이 지른 불이 차량을 삼키기 전에 차량 뒤편의 유리창을 깨고 재빨리 구조에 나섰다.

이 덕분에 탑승자 전원은 큰 부상 없이 부모의 품에 돌아갈 수 있었다.

사건이 종료된 뒤 한 학생은 "아무도 살아서 내리지 못할 것"이라고 위협한 범인이 비상 상황 시 유리 창문을 깨는 용도로 비치된 망치까지 다 치운 상태였다면서, "라미의 신고 전화가 아니었다면 집에 돌아갈 수 없었을 것"이라고 가슴을 쓸어내렸다.

또 다른 학생은 "라미는 평소에도 똑똑한 친구"라며 "모두가 공포에 떠는 와중에서도 그의 침착한 대처가 우리 모두를 살렸다"고 울먹였다.

20일 밀라노 외곽에서 방화로 전소된 스쿨버스 주변에 소방관과 경찰들이 몰려 있다. [EPA=연합뉴스]

20일 밀라노 외곽에서 방화로 전소된 스쿨버스 주변에 소방관과 경찰들이 몰려 있다. [EPA=연합뉴스]

언론에 경찰이 되는 게 꿈이라고 밝힌 라미는 이탈리아에서 태어났으나, 이탈리아 이민법에 따라 아직 시민권을 받지 못한 상태다.

라미의 아버지인 칼리드 셰하타는 "아들은 자신이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이라면서도 "아들이 이탈리아 시민권을 받을 수 있으면 좋겠다"고 희망을 피력했다.

그는 "이집트인들인 우리는 2001년에 이탈리아에 왔고, 라미는 2005년에 이곳에서 출생했지만, 아직 정식 시민권이 나오기를 기다리고 있다"고 설명했다.

부모의 국적을 따르는 속인주의를 채택하고 있는 이탈리아는 이탈리아에서 태어나, 5년 이상의 정규 교육 과정을 이수한 이민자 가정 어린이들에게 시민권을 부여하는 '유스 솔리'(Ius Soli·출생지주의) 법안을 지난 정부에서 추진했으나, 강경 난민 정책을 지지하는 우파 정당들의 반대로 법 제정이 무산됐다.

수십 명의 목숨을 구한 이집트 소년 영웅에게 시민권을 달라는 이 같은 호소에 이탈리아 반(反)난민 정책을 주도하고 있는 마테오 살비니 부총리 겸 내무장관도 "검토해 보겠다"고 화답해 귀추가 주목된다.

살비니 부총리는 이와 함께 "이런 끔찍한 짓을 저지른 범인에게는 시민권을 박탈하기 위해 모든 일을 다할 것"이라고 으름장을 놨다.

경찰에 체포된 이탈리아 스쿨버스 방화범 [ANSA통신]

경찰에 체포된 이탈리아 스쿨버스 방화범 [ANSA통신]

한편, 사법당국은 이번 사건이 테러 시도임을 배제하지 않은 채 범인인 세네갈 출신의 이탈리아 남성 우세이누 사이(47)의 범행 동기와 주변 인물 등을 집중적으로 조사하고 있다.

경찰은 일단 그가 극단주의 조직 등에 속해 있을 가능성을 배제한 채 개인적으로 범행에 나선 것으로 보고 있다.

경찰은 또한 그가 범행 직전 스쿨버스의 운전석에서 찍은 후 고국 세네갈에 있는 가족 등 주변인들에게 보낸 영상을 인터넷에서 찾아서 분석하고 있다.

현장에서 체포된 뒤 경찰에 "지중해에서 일어나고 있는 (난민) 죽음을 멈춰야 한다"고 외친 것으로 알려진 범인은 경찰 조사에서도 "지중해에서 아이들과 임산부들이 죽어가는 것을 더 이상 볼 수가 없다"고 말해, 이번 범행이 난민들에게 항구를 봉쇄한 이탈리아 정부의 강경 난민 정책에 대한 불만에서 비롯됐음을 시사했다.

이웃에게는 '파올로'라는 이탈리아 이름으로 통하는 그는 이탈리아 여성과 결혼해 슬하에 2명의 10대 자녀를 뒀으나, 이혼 이후에 급격히 고립된 생활을 한 것으로 전해졌다.

당국은 아울러 음주운전과 성추행 등으로 실형을 받은 전과가 있는 그가 어떻게 스쿨버스 운전사로 고용될 수 있었는지에 대해서도 들여다보고 있다.

그가 만약 테러 미수 혐의로 기소될 경우 이탈리아 국적이 박탈될 것으로 보인다.

ykhyun14@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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