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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시정부 역사에서 4월11일 과대평가…기념일 재고해야"

송고시간2019-03-19 06:10

반병률 한국외대 교수 "상하이정부보다 통합정부 의의 살려야"

1919년 10월 11일 임시정부 사진
1919년 10월 11일 임시정부 사진

[독립기념관 제공=연합뉴스 자료사진]

(서울=연합뉴스) 박상현 기자 = 정부가 역사학계의 문제 제기를 받아들여 임시정부수립일로 새롭게 지정한 4월 11일이 임정 역사에서 보면 아주 크게 의미 있는 날은 아니라는 주장이 나왔다.

이와 관련해 정부가 임시정부수립일을 기존 4월 13일에서 4월 11일로 바꾸기 전에 임시정부 역사를 종합적으로 고찰하고, 신중하게 기념일을 정했어야 한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한국 근현대사를 전공한 반병률 한국외대 교수는 한국외대 역사문화연구소가 펴내는 학술지 '역사문화연구' 최신호에 게재한 논문 '1919년 상해 임시정부 수립 과정에 대한 재검토'에서 "1919년 4월 11일에 조직된 임시정부는 역사적 사실에 부합하지 않게 중요성이 과대평가됐다"며 "상하이임시정부를 중심으로 '임정 수립기념일'을 정함으로써 소외되는 지역과 독립운동 세력이 생겨났다"고 밝혔다.

중국 동북 지역과 러시아 연해주 독립운동을 연구한 반 교수는 우선 임정 수립일을 4월 11일 혹은 4월 13일로만 보는 시각은 상하이임시정부에 초점을 맞춘 냉전시대에서 비롯한 제한된 역사 인식의 산물이라고 주장했다.

반 교수는 지금까지 연구 성과에 따르면 3·1운동 이후 국내외에서 임시정부 9개가 발표됐고, 그중 실질적으로 활동한 조직은 상하이임시정부와 러시아 대한국민의회였다고 강조했다.

그는 "상하이임시정부 조직 사실이 알려지자 먼저 독립선언서를 발표하며 대내외에서 존재를 알린 대한국민의회가 원세훈을 통해 이의를 제기하고 나섰다"며 "국민의회는 상하이임시정부 각원들이 현지에 없었고 실질적 내용도 없는 유명무실한 조직이라고 비판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국내에서 13도 대표들이 국민대회를 통해 선포한 한성 정부는 국내적 대표성과 법통성이라는 권위의 측면에서 상하이임시정부를 크게 압도했다"며 "이승만은 상하이임시정부 국무총리보다 훨씬 강력한 권한을 지닌 한성 정부의 집정관 총재로 행세하며 상하이임시정부를 사실상 부인하는 대내외적인 활동을 전개했다"고 덧붙였다.

반 교수는 상하이임시정부와 대한국민의회가 모두 적법성이나 정통성 면에서 한성 정부를 넘지 못했다면서 "1919년 9월에야 국내와 해외에 기반을 둔 대다수 독립운동 세력의 지지를 확보한 좌우 연합, 남북 연합, 각 지역 연합의 성격을 띤 통합임시정부가 출범했다"고 역설했다.

그는 새롭게 지정된 임시정부 수립일인 4월 11일에 대해서는 "상하이 임시의정원이 임시정부 국무원을 선출하고 이를 대내외에 반포한 날"이고, 4월 13일은 "열강과 내외 인민들에게 임시정부 수립을 선포한 날"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4월 11일의 '반포'는 우리 독립운동계 내부의 일이고, 4월 13일의 '공포'는 그야말로 열강과 인민들을 상대로 한 대내외적인 선포"라면서 1920년대 통합임시정부 국무원과 해방 직후 임시정부 인사들이 4월 11일을 '정부수립일'이 아닌 '헌법반포일'로 기념했다는 사실을 유념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상하이임시정부가 임시정부 전체를 대변하지 못한다는 의견을 제시한 반 교수는 "구태여 임정 수립기념일을 정한다면 통합임시정부 대통령과 각원을 선출한 9월 6일이나 주요 각원들의 취임일인 11월 3일 등이 대안이 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초지일관 임시정부에서 활동한 인물뿐만 아니라 임시정부에 참여했다가 탈퇴한 인물은 물론 임시정부 바깥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독립운동을 한 인물과 단체에 대해서도 평가하고 인정하는 열린 역사 인식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psh59@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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