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묵화가 김호석 "시대와 역사를 붓끝에 가두고파"
송고시간2019-03-13 18:29
제주 돌문화공원서 개인전 '보다' 열어
옅은 먹으로 역사·시대 담아낸 작품 65점 전시
(서울=연합뉴스) 정아란 기자 = 텅 빈 화면에 빼꼼한 구멍 하나뿐이다. 수챗구멍 같기도, 단춧구멍 같기도 하다. 젖꼭지를 떠올리는 사람도 있다. 분분한 해석을 낳은 이 그림은 옛 남영동 대공분실 조사실 문에서 따왔다.
대공분실을 20여 차례 찾았다는 수묵화가 김호석(62)은 조사실 문에 박힌 외시경을 유심히 봤다. 일반적인 외시경과는 반대로, 밖에서만 조사실 안쪽을 볼 수 있다. 작가는 이 곡절 많은 문을 수묵으로 그려놓고는 '세상으로 들어가는 문'이라고 이름 붙였다.
최근 제주시 조천읍 제주돌문화공원 오백장군갤러리에서 개막한 '보다'는 노무현 전 대통령, 법정·성철 스님 등의 수묵 인물화로 유명한 김호석이 오랜만에 여는 대규모 개인전이다.
경기도 여주 작업실에서 매진한 신작 50점과 2년 전 인도국립현대미술관 전시 출품작 중 15점을 추려 선보이는 자리다.
작가는 다양한 대상을 특유의 가는 필선으로 세밀하게 묘사하되, 최소한의 형상만 남겼다. '세상으로 들어가는 문'을 비롯한 대다수 작품에서는 역사와 시대를 바라보는 작가의 비판적 시선이 도드라지게 느껴진다.

(서울=연합뉴스) 정아란 기자 = 수묵화가 김호석이 13일 서울 광화문의 한 식당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제주 돌문화공원 개인전 '보다' 내용을 설명하고 있다. 2019.3.13. airan@yna.co.kr
13일 서울 광화문의 한 식당에서 만난 작가는 "그림을 배운 지 어언 50년이 됐지만, 시대와 역사 문제를 붓끝에 가두고 싶은 생각은 변함이 없다"라고 말했다.
"수묵화는 뜻을 그리는 그림입니다. (이번 전시에서는) 새로운 수묵화를 통해 나 스스로 갱생하자는 생각을 했어요. 지금까지의 전시와는 다른 양상이라, 관람객들이 보기에 약간은 어려울 수도 있습니다."
작가가 옅은 먹을 쓴 것도 그와 연결된다. 붓에 먹물을 묻힌 후, 살짝 짜서 물기가 적은 붓으로 그렸다. 작가는 "짙은 먹이 디자인적이고 시각적으로 강렬할지도 몰라도, 화단에서는 짙은 먹을 지극히 경계한다"라고 설명했다.
"옅은 먹이 작업하기 더 어렵습니다. 그러나 옅은 먹은 맑고 시원해서 사람과 사람을 통섭하는 데 최고의 경지라고들 합니다. 가장 사나운 그림일수록 먹은 옅고, 보는 사람에게도 여운을 길게 남깁니다."
전시는 4월 21일까지.
aira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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