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뉴스 본문 바로가기 메뉴 바로가기

연합뉴스 최신기사
뉴스 검색어 입력 양식

[마이더스] 상처도 질병도… '전자약'으로 단박에

송고시간2019-03-10 10:30

2017년 9월, 프랑스에서 15년간 식물인간 상태로 있던 35세 남성이 눈을 떴다. 그를 깨운 것은 수술도, 약물도 아니었다. 3개월간 신경에 전기자극을 준 '전자약(electroceutical)'이었다. 프랑스 국립인지과학연구소의 안젤라 시리구 박사팀은 뇌에서 목과 척추로 연결되는 미주신경에 전기자극을 줘 뇌가 기능을 찾게끔 했다.

전자와 약품의 합성어인 전자약은 말 그대로 IT와 의학이 융합한 새로운 치료법이다. 한 차례의 시술로 장기치료가 가능하고, 수술이나 약물치료보다 안전하고 간편하다. 각종 난치병 치료 효과도 속속 입증되면서 구글과 IBM, 아마존 등 글로벌 IT기업들이 투자를 서두르고 있다.

◇진단하고 치료도 하는 '전자약 밴드'

작년 말 미국 위스콘신대의 슈동 왕 교수팀은 단순히 붙이기만 하면 상처가 아무는 시간을 4분의 1로 줄이는 '전자약 밴드'를 개발했다. 테플론과 구리로 구성된 밴드는 피부가 움직일 때마다 전류를 발생시켜 세포 성장을 촉진하고 해로운 활성산소를 억제한다. 테플론은 코팅제로 쓰이는 고분자 물질로, 프라이팬 회사 '테팔'의 유래이기도 하다.

이 밴드는 쥐를 이용한 실험에서 상처 회복 시간을 12일에서 3일로 단축했다. 인체 피부와 유사한 돼지 실험을 거쳐 빠르면 2년 안에 상용화할 예정이다.

미국 오하이오 주립대 찬단 센 교수팀은 화상 치료용 전자약 밴드를 개발했다. 화상을 입으면 세균이 다량 증식해, 항생제와 면역세포 활동을 방해하는 '세균막'이 생긴다.

은과 아연이 입혀진 이 밴드에 땀이나 피가 맺히면 전류가 흘러 세균막 생성을 저지한다. 현재 미 국방성 지원을 받아 화상 환자 임상을 진행하고 있다.

스스로 진단하고 치료까지 하는 전자약 밴드도 나왔다. 미국 터프츠대 사미어 손쿠세일 교수팀이 만든 밴드인데 센서와 마이크로칩, 약물로 구성됐다.

상처에 세균이 감염돼 온도가 올라가면 센서가 칩에 신호를 보내고, 칩이 세균감염이란 진단을 내리면 약물이 방출된다. 단순히 상처 치유를 돕는 수준을 넘어선 지능형 밴드라 할 수 있다.

국내에선 전류가 아니라 빛으로 상처를 치료하는 전자약이 세계 최초로 개발됐다. KAIST 최경철 교수와 서울대 분당병원 박경찬 교수는 두께 1mm 미만의 초박형 밴드에 발광다이오드(OLED)와 배터리, 과열방지장치, 패치를 삽입했다. 실험 결과 세포 성장은 58%, 세포 이동은 46% 증가해 상처 회복이 15시간 이상 빨라졌다.

기존 빛 치료는 굴곡진 피부에 균일하게 쏘기가 어렵고 발열 탓에 밀착도 힘든 데다, 자주 병원을 찾아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었다. 이 밴드는 그런 문제를 일거에 해결했다. 300시간 이상 작동하고, 42℃ 이하로 유지돼 저온화상을 방지하며, 휘어져도 기능에 이상이 없다. 연구진은 "광량을 조절하면 피부미용, 피부암, 치매, 우울증 등에도 활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식물인간 깨운 전자약… 불치병 치료 도전

피부 상처뿐만 아니라 몸속 질환에도 전자약은 효능을 입증해 나가고 있다. 2015년 미국 식품의약처(FDA)는 엔테로메딕스가 개발한 비만 치료 전자약의 판매를 허가했다. 뇌와 위 사이의 신경전달 경로를 자극해 식욕을 조절하는 원리다. 기도 신경에 전류를 흘려 수면무호흡증을 치료하는 전자약도 나왔다.

나아가 심장박동 수를 높이는 교감신경을 차단하는 고혈압 전자약, 과도한 면역반응을 억제하는 관절염 전자약도 개발 중이다. 대구경북과학기술원(DGIST) 김민석 교수팀은 근육세포를 자극해 신체 노화를 지연시키는 전자약 연구에 몰두하고 있다.

지난해 10월 KAIST 강승균 교수와 미국 노스웨스턴대 구자현 박사는 말초신경 손상을 치료한 뒤 스스로 분해되는 전자약을 개발했다. 말초신경 손상은 빠른 재생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기존에도 전자약 치료 시도가 있었지만, 머리카락처럼 가느다란 신경에 전선을 감았다가 풀기가 극히 어렵고, 매번 제거 수술이 필요해 한계에 부딪혔다.

연구진은 초박막형 실리콘과 생분해성 고분자로 전자약을 만들어 문제를 해결했다. 일주일 정도의 자극치료가 끝나면 전자약은 몇 달간 서서히 분해돼 몸 바깥으로 배출된다. 강승균 교수는 "외상성 뇌 손상이나 척추손상 등 중추신경 재활에도 응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영대 기자 Lonafree@yna.co.kr

댓글쓰기
에디터스 픽Editor's Picks

영상

뉴스
댓글 많은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