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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여행 1919] 참혹한 학살의 현장, 제암리

송고시간2019-03-10 08:01

(화성=연합뉴스) 임동근 기자 = 1919년 경기도 화성은 독립을 향한 민중의 저항이 극렬했던 곳이다. 주재소를 습격하고, 일본인 소학교에 불을 질렀으며, 일본인 순사를 처단하기도 했다.

경기도 화성 제암리 3·1운동 순국기념관 [사진/조보희 기자]

경기도 화성 제암리 3·1운동 순국기념관 [사진/조보희 기자]

물론 일제의 탄압과 보복 응징도 강했다. 시위대에 총을 쏴 죽이고 연행하고, 마을에 불을 질렀다. 그리고, 일제 만행의 결정판은 4월 15일 향남면 제암리에서 벌어졌다.

1919년 4월 15일 오후 2시경 일본 육군 보병 79연대 소속 아리타 도시오 중위가 군인 11명, 일본인 순사 1명, 제암리에 살았던 순사보 조희창, 발안에서 정미소를 운영하는 일본인 거류단장 사사카의 안내를 받으며 제암리에 도착했다. 이들은 얼마 전 발안 지역 시위를 주도한 제암리의 주모자를 찾아내 없애려는 토벌대였다.

화성 지역 만세운동은 크게 3월 26∼28일 송산 지역 사강 장터 시위, 31일 향남 지역 발안 장터 시위, 4월 3일 장안, 우정 지역 시위 등으로 전개됐다.

특히 31일 발안 장터 시위 때는 주민 1천여 명이 만세운동을 벌였는데, 일본 경찰의 발포로 시위자 3명이 사망하자 흥분한 군중이 일본인 가옥에 돌을 던지고 일본인 소학교에 불을 질렀다.

4월 3일에는 장안면과 우정면 주민이 합세해 독립 만세를 부르며 장안면사무소와 우정면사무소를 파괴하고 화수리 주재소를 습격했다.

군중 2천여 명은 총을 쏘는 일본 경찰에 맞서 주재소를 불태우고, 일본인 순사를 처단하기에 이른다.

이에 일본군은 4월 5일 새벽 시위 진원지인 수촌리를 급습해 마을 전체 가옥 42호 가운데 40호를 불태웠다.

순국기념관에 걸려 있는 '제암리 뒷동산 만세소리' 그림 [사진/조보희 기자]

순국기념관에 걸려 있는 '제암리 뒷동산 만세소리' 그림 [사진/조보희 기자]

◇ 잊을 수 없는 그 날의 참상

제암리에 들이닥친 토벌대는 "심한 매질을 한 것을 사과하러 왔으니 다들 교회로 모이시오"라고 하며 40세 이상 남자를 소집했다. 그러나 모이지 않자 15세 이상 남자들을 불러모았다.

이들은 사람들이 모일 때마다 키를 재서 총 길이 보다 작으면 돌려보내고 큰 사람은 예배당 안으로 들여보냈다.

교회 입구에 있던 일본군 병사들은 교회당 안을 향해 무차별 사격을 가했다. 바닥에 앉아 있던 주민들은 뛰어오르고 쓰러지며, 그야말로 아비규환이었다. 3명이 교회를 탈출했으나 한 명은 총에 맞아 사살됐고, 다른 한 명은 집에 숨어 있다 처단됐다. 오직 노경태만이 탈출에 성공해 유일한 생존자가 됐다.

1982년 제암리 생존 주민 전동례 할머니는 "뒷동산에서 (한 여자가) 울고 있어서 왜 우느냐고 물으니까 '우리 남편이 저기 들어가더니 나오질 않는다'고 했다"고 증언했다.

일본군은 증거인멸을 위해 교회 안팎에 짚을 늘어놓고 석유를 끼얹어 불을 질렀다. 또 집마다 불을 질러 제암리는 온통 화염에 휩싸였다.

마을 주민들의 증언에 따르면 일본인들은 죽은 사람을 창으로 찔렀고, 시체를 토막 내기도 했다. 또 이튿날까지 재가 30리 밖까지 날아가고, 송장 타는 냄새가 났다고 한다. 이렇게 학살된 사람은 23명이나 됐다.

제암리에서 만행을 저지른 뒤 일본군은 10분 거리에 있는 고주리로 향했다. 이곳은 발안 지역 시위를 주도한 천도교인의 전교실이 있는 곳이었다. 일본군은 고주리를 포위하고 천도교인 6명을 찾아내 칼로 난도질한 후 불태웠다.

하지만 이런 일제의 만행은 그냥 묻히지 않았다. 사건 발생 3일 후 캐나다 선교사 프랭크 스코필드가 이곳에 도착해 그 참혹한 광경을 사진 찍고 '일본군 잔학행위에 관한 보고서'를 작성해 세상에 공개했다.

해외 여론이 악화하자 일제는 아리타 중위를 군법회의에 회부해 무마하려고 했다. 하지만 아리타 중위는 학살 행위가 인정되면서도 형법에 규정된 범죄가 아니라는 이유로 무죄를 선고받았다.

제암리 순국 지사 유해발굴 관련 전시물 [사진/조보희 기자]

제암리 순국 지사 유해발굴 관련 전시물 [사진/조보희 기자]

◇ 학살의 기억 남겨진 순국기념관

현재 제암리에는 제암·고주리 학살 사건을 보여주는 3·1운동 순국기념관이 제암리교회 옆에 마련돼 있다. 기념관 입구에는 1959년 제작된 3·1운동 순국 기념탑이 서 있다.

탑에는 월탄 박종화가 제암리·고주리 학살 사건에 관해 쓴 글이 새겨져 있다.

"스물아홉 분의 순국열사는 이렇게 푸른 피를 불 속에 뿌려 겨레의 넋을 지켰다.(중략) 후세에 영원히 이 사실을 전하려 하여 당시 피화처였던 예배당 터에 정성을 모아 아담한 기념탑을 세운다"

기념관 안에는 화성 지역 3·1운동 전개 상황을 보여주는 자료가 전시돼 있다.

제암리 학살 사건과 일제의 만행 사진이 함께 수록된 독립운동가 정한경의 '한국의 사정', 학살 사건 희생자 이름을 실은 독립운동가 이병헌의 '3·1운동비사', 화성 지역 만세시위 때 체포된 이들에 대한 법원의 판결문, 제암리 생존자들의 증언, 아리타 중위 판결문 등을 볼 수 있다.

또 유해발굴 당시 출토된 불탄 교회 건물 부재, 동전, 단추, 병 조각, 못 등이 참혹한 당시를 떠오르게 한다.

기념관은 전 세계의 집단학살에 관한 전시도 하고 있다. 간도 참변, 홀로코스트, 게르니카 학살, 난징 대학살, 코소보 사태, 캄보디아 킬링필드 등에 관한 내용을 살펴볼 수 있다.

기념관 앞에는 23개의 크고 작은 돌기둥으로 이뤄진 '자유롭게 저 하늘을'이란 제목의 조형물이 들어서 있고, 뒤편 언덕에는 무참히 학살된 23인을 함께 모신 순국묘지가 있다.

언덕 아래에는 제암리의 참상을 세상에 알린 스코필드 박사를 위한 공간도 있다. 카메라를 들고 바위에 앉아 있는 스코필드의 동상 옆에는 '그가 있어 제암리가 기억되고…'란 문구가 새겨져 있다.

스코필드 박사 동상 [사진/조보희 기자]

스코필드 박사 동상 [사진/조보희 기자]

◇ 3·1절 맞아 가볼만 한 장소들

전국 7개 도시에서 시작한 만세운동의 불길은 전국으로, 해외로 번져나갔다. 국사편찬위원회에 따르면 3·1운동 당시 두 달간 발생한 시위는 1천692건이며, 참여 인원은 79만9천17∼103만73명이다.

지역별 시위 건수는 서울·경기가 427건, 황해도 177건, 평북 148건, 경남 140건, 경북 118건, 충남 117건, 평남 112건 순이었다. 국외에서는 99건이 발생했다.

사망자가 발생한 시위는 모두 174건, 사망자 수는 725∼934명이었다.

▲ 서울 종로 = 서울 종로구에는 3·1운동 관련 장소가 많다. 만세운동의 출발지인 탑골공원을 비롯해 거사를 논의하고 2·8독립선언서를 전달한 중앙고등보통학교 숙직실 터, 독립선언서를 인쇄한 보성사 터, 민족대표들이 독립선언서를 낭독하고 만세 삼창한 태화관 터, 학생단 독립운동의 거점인 승동교회, 만해 한용운이 거처로 사용하던 유심사 터, 손병희의 집터 등이 있다. 3·1운동과 수원 제암리 학살 사건을 세계에 알린 미국 AP통신 임시특파원 앨버트 와일더 테일러(1875∼1948)가 살던 딜쿠샤라는 이름의 집도 있다.

▲ 서대문독립공원 = 일제강점기 의병투쟁, 3·1운동, 항일투쟁 등으로 투옥돼 옥고를 치른 선열을 기리기 위해 조성됐다. 서대문형무소 역사관, 독립문 등이 있다. 서대문형무소 역사관은 일제가 1907년 건립해 경성감옥이라 부른 곳이다. 1945년까지 수많은 독립운동가를 가두고 고문과 박해를 가했다. 김구, 강우규, 유관순 등이 이곳에 수감됐다. 해방 후 1946년에는 경성형무소·서울형무소로 이름이 바뀌었으며, 반민족행위자들이 수용됐다. 군사정권 때는 시국사범과 민주화 투사들이 수감된 곳이기도 하다. 현재 일제강점기를 엿볼 수 있는 박물관으로 꾸며져 있다. 2021년 독립공원에는 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관이 개관할 예정이다.

서대문형무소 역사관 [연합뉴스DB]

서대문형무소 역사관 [연합뉴스DB]

▲ 구 인천공립보통학교 = 인천지역 3.1운동은 3월 6일 인천공립보통학교 학생들에 의해 시작됐다. 학생들은 열흘간 동맹휴업하고 만세운동을 벌였고, 노동자들의 행동을 촉구하는 격문과 독립선언서를 뿌렸다. 이후 인천에서 만세시위가 확산했다. 24일 부평에선 일본 경찰의 발포에 5∼6명의 사상자가 발생했고, 몸싸움하던 이은선은 칼에 찔려 순국했다. 현재 인천시 동구 옛 인천공립보통학교(현 창영초등학교) 교정에는 3·1 독립 만세운동 인천지역 발상지 기념비가 서 있다. 붉은 벽돌로 지은 옛 교사가 남아 있는데 110년이 넘는 세월에도 상태가 매우 양호하다.

▲ 안성3·1운동 기념관 = 안성 만세운동은 3월 11일 시작해 4월 3일까지 이어졌다. 특히 4월 1일에는 주민 약 1천여 명이 주재소를 방화하고 우편소를 파괴했으며 일본인 상점과 고리대금업자의 집을 부쉈다. 또 면사무소를 습격해 서류, 집기, 일장기 등을 불태웠다. 2일에는 군중 2천여 명이 죽산주재소, 우편소, 면사무소를 파괴했다. 일죽면에서도 주민 수백명이 면사무소와 주재소에 돌을 던지며 시위를 벌였다. 이 기간 26명이 죽고, 약 800명이 체포됐으며, 177명이 투옥됐다. 기념관에는 관련 자료와 유물이 전시돼 있다.

▲ 양주 가래비 3·1운동 순국 기념비 = 양주의 만세운동 장소는 백석면(현 백석읍)과 광적면이다. 3월 27일 밤 양주군 백석면 주민 20∼30명이 횃불 만세시위를 벌였고, 28일에는 주민 600여 명이 오산리 대들벌로 행진하며 시위했다. 이날 가납리에서 주민 350여 명이 시위를 벌였는데, 일본 헌병의 발포로 백남식·김진성·이용화가 사망하고 40여 명이 부상했다. 이후 이곳은 '만세배미'라 불리게 됐다. 순국기념비 옆에는 순국열사의 흉상과 횃불 모양 봉화탑이 서 있다.

▲ 양양 만세고개 = 만세운동을 준비하던 지도자 22명이 일본 경찰에 체포되자 4월 4일 양양 장날을 기해 농민 1천600여 명이 시위를 벌였다. 농민 5명이 숨지고 수많은 부상자가 나왔다. 6∼7일에는 시위대 1천500여 명이 양양경찰서를 습격해 구속자 석방을 요구했고, 7일 밤에는 농민 100여 명이 면사무소를 습격했다. 9일에는 농민 600여 명이 기사문리의 주재소를 포위하자 일본 경찰이 발포해 9명이 숨지고 30여 명이 부상했다. 양양 만세운동은 영동권 최초의 만세운동이다. 사상자는 200여 명으로 강원도 전체 만세운동 사상자의 절반 이상을 차지했다. 기사문항에서 하조대로 가는 고개는 현재 만세고개로 불린다. 이곳에는 3·1운동 기념탑이 서 있다. 양양 옛 관아 터인 현산공원에도 기념비가 있다.

▲ 부산진일신여학교 = 경남 최초의 신여성 교육기관으로, 부산 지역 최초로 만세시위가 시작된 곳이다. 3월 11일 밤 9시 교사 2명과 학생 11명은 2시간 동안 좌천동 거리를 누비며 태극기를 들고 독립 만세를 외쳤다. 교사 2명은 1년 6개월, 학생 11명은 6개월간 복역해야 했다. 현재 이곳은 100년 전 신교육을 받던 여학생들의 생활, 부산 지역 3·1운동 등을 보여주는 기념관으로 꾸며져 있다.

▲ 제주 조천 만세동산 = 3월 21일 미밋동산(현 만세동산)에 모인 핵심 인사 14명과 인근 지역의 서당 생도와 주민 등 700여 명이 독립선언서를 낭독하고, '독립 만세'라고 쓴 혈서와 태극기를 들고 독립을 외쳤다. 시위는 나흘간 이어졌으며 시위 주역들이 체포되면서 종료됐다. 만세동산에는 추모탑, 제주항일기념관, 독립유공자 묘역, 기념광장 등이 조성돼 있다.

◇ 3·1운동 100주년 관련 전시

▲ '문화재에 깃든 100년 전 그날'(2월 19일∼4월 21일, 서대문형무소 역사관) = 문화재청이 진행하는 3·1운동과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기념하는 특별전이다. 1910년 경술국치 직후 절명시(絶命詩)를 쓰고 목숨을 끊은 매천 황현 유품, 저항시인 이육사 친필 원고, 임시정부 건국강령 초안 등 항일독립유산 56점을 볼 수 있다.

▲ '기록 기억 : 일본군 '위안부' 이야기, 다 듣지 못한 말들'(2월 25일∼3월 20일, 돈의문박물관 내 서울도시건축센터) = 일본군 위안부 기록물을 모은 전시다. 역사적 사료와 해외 소장 자료, 실물본 일부가 소개된다. 한국인 일본군 위안부 모습을 담은 사진 3장 원본도 최초 공개된다.

▲ '삼일운동 100주년 간송 특별전 <대한콜랙숀>'(1월 4일∼3월 31일, 동대문디자인플라자) = 간송 전형필의 삶과 문화유산을 돌아보는 전시다. 간송이 20대 때부터 우리 문화재를 구하려고 얼마나 고군분투했는지 보여준다. 지난 5년간 서울 DDP에서 열린 간송 특별전의 마지막 행사다.

▲ '대한독립 그날이 오면'(2월 22일∼9월 15일, 대한민국역사박물관) = 대한민국역사박물관과 국가기록원, 3·1운동 및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 100주년 기념사업추진위원회가 마련한 전시다. 100년 전 평범한 사람들이 품은 독립을 향한 열망을 조명한다. 기미 독립선언서, 1919년 조선총독부 고등법원 판결문, 임시정부가 펴낸 기관지 '독립신문', 신한청년당 기관지 '신한청년' 창간호 등 자료 200여 점이 전시된다.

▲ '황제의 나라에서 국민의 나라로'(2월 28일∼9월 15일, 국립중앙박물관) = 고종황제 장례식과 3·1운동, 순종황제 장례식과 6·10만세운동, 대한민국임시정부와 현재의 대한민국까지 왕조국가에서 민주주의 국가로의 발전사와 독립운동사를 되짚어 볼 수 있다.

▲ '100년 전, 고종의 국장'(3월 1∼31일, 국립고궁박물관) = 3·1운동의 도화선이 된 고종의 국장 관련 자료가 공개되는 소규모 전시다. 고종 독살설에 관한 이야기, 장례식, 민중 항쟁 등에 관한 자료를 볼 수 있다.

▲ '서울과 평양의 3·1운동'(3월 1일∼5월 26일, 서울역사박물관) = 가장 활발하게 전개된 서울과 평양의 3.1운동을 소개하는 전시다. 3·1운동의 준비와 실행 과정을 구체적으로 조명하고, 만세운동을 준비하면서 느꼈을 분노와 불안, 감옥에 갇힌 자의 투쟁과 고통, 두려움을 전시에 담았다.

▲ '모두를 위한 세계'(3월 1일∼5월 26일, 시립 남서울미술관) = 세계사적으로 3·1운동의 의미를 바라본다. 남아프리카공화국, 터키, 일본, 대만, 베트남, 덴마크 등 6개국 작가가 다양한 국가 통치 아래 드러나는 정체성을 보여준다.

▲ '한국의 독립운동과 캐나다인'(2월 23일∼3월 31일, 서울시청 시민청 시티갤러리) = '34번째 민족대표'로 불린 프랭크 스코필드(1889∼1970·한국명 석호필) 박사 등 일제강점기 독립운동을 도운 캐나다인 5명에 관한 글, 영상, 사진 50여점이 전시된다.

▲ '자화상-나를 보다'(3월 1일∼4월 21일, 예술의전당 서울서예박물관) = 글씨, 그림, 사진 등 독립운동을 위한 각계각층의 기록을 예술적, 역사적 관점으로 풀어낸다. 백범 김구가 경교장에서 쓴 친필 유묵 '학운야학'이 최초로 공개되고, 구본웅의 '김상옥 의사의 장렬한 최후', 흥선대원군의 '총란도' 등이 전시된다.

▲ '동무들아! 이날을 기억하느냐'(3월 1일∼6월 30일, 경기도 박물관) = 임시정부청사 사진, 태극기 목판각 등 독립운동 관련 전시물 100여 점을 볼 수 있다.

▲ '책 속, 경남 3·1운동 정신의 기억'(2월 23일∼4월 30일, 창원 경남대표도서관) = 3·1운동 관련 도서, 경남 독립운동 현장, 운동가를 소개하는 전시다. 경남대표도서관은 토크콘서트 '우리가 독립운동가를 기억하는 방법'(3월 7일), '경남 독립운동 정신을 찾아서' 강연회(3월 9일)를 마련한다. 3월 한 달간 매주 일요일에는 독립운동가의 삶을 재조명한 영화를 상영한다.

※ 연합뉴스가 발행하는 월간 '연합이매진' 2019년 3월호에 실린 글입니다.

dklim@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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