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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ㆍ1운동.임정 百주년](31) 청년 독립투사 박재혁을 아십니까

송고시간2019-02-20 06:00

의열단 거사 1호…적진 들어가 부산경찰서장 처단, 사형선고 뒤 옥중단식 사망

독립운동 불쏘시개 역할 했지만, 교과서에서도 찾기 힘들어

박재혁 의사가 거사 몇 시간을 앞두고 사진관을 들러 찍은 마지막 사진.
박재혁 의사가 거사 몇 시간을 앞두고 사진관을 들러 찍은 마지막 사진.

[개성고 역사관 보관 사진 촬영]

(부산=연합뉴스) 손형주 기자 = 1920년 9월 14일 오후 2시 30분께 부산경찰서는 굉음과 함께 흰 연기로 가득 찼다.

중국 고서 상인으로 위장해 집무실로 들어간 27살 청년 박재혁이 하시모토 슈헤이 부산경찰서장과 불과 1m도 떨어지지 않은 거리에서 의열단임을 밝히고 폭탄을 던진 것.

박재혁은 "왜놈 손에 죽기 싫어 아무것도 먹지 않겠다"며 사형 집행 전 긴 단식 끝에 1921년 5월 숨졌다.

박 의사 의거는 3ㆍ1운동 후 침체한 독립운동에 불쏘시개 역할을 했다.

동포들에게 다시 희망과 용기를 불러일으키고, 청년들에게는 항일독립 정신을 고취했다.

부산경찰서 폭탄 투척 의거 소식. 부산일보 호외
부산경찰서 폭탄 투척 의거 소식. 부산일보 호외

[개성고등학교 역사관 보관 사진 촬영]

박 의사는 1895년 5월 17일 부산 동구 범일동 183번지에서 1남 1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1915년 부산 공립상업학교(현 개성고)를 졸업한 그는 동급생 최천택, 오택(오재영)과 친형제보다 가깝게 지내며 독립운동에 기여할 방법을 찾았다.

그러던 중 3·1운동을 계기로 독립운동에 투신하기로 결심한다.

1920년 김원봉 의열단장의 제안을 받아 의열단에 가입했다.

무역업을 하다 의열단 호출을 받아 상해로 건너간 박재혁은 같은 해 8월 31일 김원봉으로부터 부산경찰서장을 죽여 독립운동에 기세를 높이자는 제안을 받았다.

당시 부산경찰서는 일본에서 조선으로 들어오는 관문인 부산에서 독립운동의 씨를 말리기 위해 의열단원 다수를 체포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박재혁은 폭탄 1개와 돈 300원을 수령해 고향 부산으로 왔다.

박재혁은 부산경찰서장이 고서적을 좋아한다는 정보를 입수, 무역업을 하던 경험을 살려 중국 고서 상인으로 위장했다. 상하이 서점에서 산 중국 고서 사이에 폭탄을 숨겼다.

일제 형사들 눈을 피하기 위해 대마도를 거쳐 부산에 들어왔다.

1920년 9월 14일 집무실 안에서 하시모토 서장과 작은 탁자 하나를 사이에 두고 박재혁은 이렇게 말했다.

"나는 상해서 온 의열단원이다. 네가, 우리 동지를 잡아 우리 계획을 깨트린 까닭에 우리는 너를 죽이는 것이다"

거사 후 붙잡힌 박재혁은 고문 취조에도 끝내 단독범을 주장함으로써 당시 함께 투탄을 모의했던 최천택, 김영주, 오재영 등의 석방을 도왔다.

박재혁 의거 이후 국내에서만 일본경찰서 습격이 91건이나 발생한 것으로 알려졌다.

[개성고 졸업사진. 윗줄 왼쪽에서 3번째가 박재혁이다.]
[개성고 졸업사진. 윗줄 왼쪽에서 3번째가 박재혁이다.]

[개성고등학교 역사관 보관 사진 촬영]

적의 소굴에서 적장을 처단한 뒤 단식으로 생을 마감한 27세 청년.

3ㆍ1운동 이후 꺼져가는 독립운동 불쏘시개 역할을 한 영웅.

하지만 국민 대부분은 박재혁 의사를 잘 알지 못한다.

대부분의 역사 교과서에서도 박 의사는 등장하지 않는다. 몇몇 교과서만 박 의사가 부산경찰서에 폭탄을 투척했다는 이야기가 한 문장으로 소개되는 것이 고작이다.

부산에서조차 박 의사 관련 현충 시설은 그리 많지 않다.

초읍 성지곡수원지에 롯데 후원을 받아 설치한 동상이 있지만, 유동인구가 많지 않은 맨 안쪽이라 동상 위치를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지난해부터 생가복원이 추진되는 듯했지만, 정부와 부산시는 예산 문제와 생가 위치가 명확하지 않다는 이유로 선뜻 나서지 않고 있다.

그간 박재혁 투탄을 다룬 대다수 글에서는 부친 이름, 생가 주소, 사망 일자, 재판과정 등이 불일치했다.

박철규 명지대학교 교수는 지난해 열린 부산 3·1운동 100주년 기념 학술대회에서 "아무리 높게 평가해도 지나치지 않을 박재혁 투탄에 대한 설명에서 불일치와 오류가 이렇게 많은 것은 기본적으로 연구 자체가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꼬집었다.

3·1운동 100주년을 앞둔 시점에서야 박 의사 모교인 개성고를 중심으로 박 의사가 재조명되고 있다.

개성고 총동창회는 박 의사 평전 발행을 추진해 완성을 앞두고 있다.

박 의사 여동생의 손녀 김경은(55) 씨는 "청년 때 생을 마감한 것조차 안타까운데 후손이 없어 더욱더 조명을 받지 못한 것 같다"며 "정부와 시에서 지금이라도 적극적으로 나서 박 의사의 업적이 재조명돼야 한다"고 말했다.

handbrother@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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