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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 구석구석 이야기 속으로…'어슬렁 부천인문路드'

'원미동 사람들' 그 골목의 흔적을 찾아

(부천=연합뉴스) 한미희 기자 = 그저 그런 평범한 동네와 골목길을 특별하게 만드는 것은 '이야기'의 힘이다. 이야기꾼과 함께 뒷골목을 누비다 보면 지금은 사라지고 없는 풍경과 그 시절의 사람들이 생생하게 되살아난다.

만화 작가와 기획자들의 단체인 카툰캠퍼스가 각 지역의 골목을 어슬렁거리며 발굴해 낸 이야기를 다양한 방식으로 펼쳐놓는 '어슬렁 프로젝트' 중, 처음으로 에어비앤비 트립을 통해 오픈한 '부천인문路드'를 따라가 봤다.

원미어울마당에 소설 '원미동 사람들'의 첫작품인 '멀고 아름다운 동네'의 일부와 배경을 형상화한 조형물이 있다. [사진/전수영 기자]
원미어울마당에 소설 '원미동 사람들'의 첫작품인 '멀고 아름다운 동네'의 일부와 배경을 형상화한 조형물이 있다. [사진/전수영 기자]

서울과 인천 사이에 낀 경기도 부천은 딱히 인기 있는 여행지는 아니다. 하지만 한국 만화와 웹툰의 산실(부천만화창작스튜디오)이자, 장르 영화의 중심지(부천판타스틱영화제)이고, 세계 무대에서도 인정받는 오케스트라(부천필하모닉)를 보유한 문화 도시다. 그리고 2017년에는 유네스코 문학 창의 도시 네트워크에 가입했다. 변영로, 목일신, 펄벅, 정지용, 양귀자 등 부천에 살았거나 묻힌 혹은 인연이 있는 문학가들이 그 동력이 됐다.

그중에서도 가장 먼저 떠올릴 수밖에 없는 건 양귀자의 연작 소설 '원미동 사람들'이다. 1986∼1987년 발표한 11편의 소설을 묶은 '원미동 사람들'은 1987년 초판이 발행된 이후 현재까지 111쇄를 기록한 한국 소설의 대표적인 밀리언셀러이자 베스트셀러다.

1980년대 부천 원미동 23통 골목에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 당대의 시대상과 인간군상을 담은 소설은 작가가 실제 그 골목의 주민으로 살면서 써 내려간 이야기다. 부천인문로드는 작가가 살았던 골목, 작품 속 인물들이 여전히 살아 숨 쉬는 그 골목으로 안내한다.

소설의 배경이 된 원미동 골목길. 멀리 신시가지에 들어선 초고층 아파트가 보인다. [사진/전수영 기자]
소설의 배경이 된 원미동 골목길. 멀리 신시가지에 들어선 초고층 아파트가 보인다. [사진/전수영 기자]

◇ '원미동 사람들'의 그 골목

부천인문로드의 시작은 원미어울마당이다. 옛 부천시청 자리다. '원미동 사람들'의 첫 번째 수록작인 '멀고 아름다운 동네'에서 은혜네가 서울에서 전세를 구하지 못해 만삭의 몸을 트럭 짐칸에 싣고 이사를 들어오던 한겨울의 그 길이다.

'원미동 사람들'이 2003년 중학교 교과서에 실린 것을 기념해 이곳에 '원미동 사람들의 거리'가 만들어졌다. '원미동 사람들' 속 작품 일부와 등장인물, 골목 풍경을 조형물로 펼쳐놨다. 원미지물포, 행복사진관, 써니전자, 강남부동산, 우리정육점, 서울미용실, 무궁화연립, 형제슈퍼가 늘어선 골목은 오래 들여다보게 된다. 70∼80년대 고만고만하게 살았던 이들에게는 아련하고도 익숙한 풍경이다.

원미어울마당을 나와 부천로148번길에 서면 골목 끝 너머로 원미산 정상이 보인다. 작가가 살았던 동네와 실재했던 상호가 작품 속 원미동 23통 골목에 뒤섞여 있는 곳이다. 호스트의 이야기를 들으며 진행되는 골목길 탐방이 주민들에게 누가 되지 않도록 착용한 수신기에서 이문세의 '옛사랑'이 흘러나오자 특별할 것 없는 흔한 주택가 골목이 문학 작품 속으로 걸어 들어가는 통로가 됐다.

소설 속 '무궁화 연립'을 떠올리게 하는 연립주택이 남아있다. [사진/전수영 기자]
소설 속 '무궁화 연립'을 떠올리게 하는 연립주택이 남아있다. [사진/전수영 기자]

◇ 상상을 불러일으키는 흔적

작가가 살았고 작품 속 은혜네 집이기도 한 무궁화 연립은 이제 헐리고 없다. 그 자리에는 재건축 아파트가 들어섰다. 아파트 끝자락에 <소설 '원미동 사람들' 언저리>라는 작은 안내판이 과거 무궁화 연립의 존재를 일깨운다. 작품 속 골목 지도와 작가 소개가 간략하게 담겨 있다.

30여년의 세월이 흐르는 동안 골목의 풍경은 물론 많이 달라졌지만 그 시절의 흔적을 찾아볼 수 있다. 아파트 바로 건너편 2층짜리 연립주택은 무궁화 연립을 떠올리기에 충분하다. 연립주택에서 상가가 들어서는 1층에는 지하에 창고가 딸려 있는데, 이 지하방을 다시 셋방으로 내주는 일이 흔했다. 문제는 화장실이 없다는 것. 언제든 자기 집 화장실을 쓰라는 주인 말을 믿고 지하방을 계약했지만, 당최 문을 열어주지 않는 주인 때문에 곤란을 겪는 주인공 '나'의 이야기가 '지하생활자'다.

일하는 공장으로, 주변 상가로, 때로 후미진 골목으로 화장실을 찾아 안절부절 헤매고 다녔을 주인공의 절박한 심정에 이입해 주변 골목을 둘러봤다. 다행히 아파트 옆 은행공원에 공중화장실이 있다. 주인공은 누리지 못했겠지만.

강 노인의 '마지막 땅'이 있던 은행공원 [사진/전수영 기자]
강 노인의 '마지막 땅'이 있던 은행공원 [사진/전수영 기자]

◇ 강 노인의 '마지막 땅'

은행공원에 서서 소설 속 원미동 제일의 땅 부자 강 노인의 이야기(마지막 땅)를 듣는다. '마지막 땅'에서도 언급되는 것처럼 원미동이라는 이름이 붙여지기 전 이 일대는 조씨 집안 사람들이 정착해 종가를 이루고 살던 곳이어서 조마루, 조종리로 불렸고 현재는 조마루로, 조마루 사거리라는 지명으로 남아 있다.

강 노인의 아버지는 조마루의 머슴으로 평생을 살면서 새경을 모아 논 몇 평을 마련하고 죽었다. 강 노인은 '조마루를 강마루로 만들라'고 한 아버지의 말대로 원미동에서 가장 많은 땅을 갖게 됐지만, 자식들 때문에 다 팔고 건물들 사이에 남은 마지막 땅에서 농사를 짓는다.

부동산에서는 자꾸 땅을 팔라고 꼬드기고, 동네 사람들은 인분을 사용해 악취를 풍기는 강 노인의 밭에 연탄 가루를 뿌리는 등 갈등을 빚는다. 땅을 판다는 헛소문이 나면서 자식들의 빚쟁이가 찾아오고 아내와 크게 싸운 강 노인이 결국 밭에 마지막으로 물을 주고 부동산으로 향한다는 이야기를 듣는 동안 멀리 신시가지의 높이 솟은 초고층 아파트가 눈에 들어왔다.

원미종합시장에서 뜨끈한 어묵과 국물로 몸을 녹이고 원미동 두산아파트를 지나 원미산 입구로 향한다. 강 노인의 땅이 이곳까지 이어진다. 그리고 광주 민주화 운동을 목격한 뒤 원미산으로 사라져버린 한 남자의 이야기(한 마리의 나그네 쥐)가 새로 시작된다.

산으로 사라지기 전, 평범한 회사원이었던 남자가 약수를 뜨러 원미산을 오갔을 언덕에는 길이 생기고 건물이 들어서 있다. 원미동과 원미산 사이에 새로 난 큰길(소사로) 아래 지하도를 지나 원미공원 문학동산과 원미산 둘레길 일부 구간을 걷는다. 봄이면 만발하는 진달래꽃 축제가 열리는, 원미동 주민이 사랑하는 안식처다.

원미종합시장 [사진/전수영 기자]
원미종합시장 [사진/전수영 기자]

◇ 정지용의 '고향'을 닮은 소사동

원미산을 내려오면 소사동이다. 제2차 세계대전 말인 1944년 일제의 소개령에 따라 부천군 소사읍으로 이사해 3년 동안 머물렀던 정지용 시인의 흔적을 따라갈 차례다.

정지용은 부천에서 시를 쓰는 대신 소사성당을 건립하는 데 힘을 쏟았다. 일본 유학 시절 천주교 세례를 받은 그는 귀국해 모교인 휘문고보에서 영어 교사로 일하며 1933년 창간한 월간지 '가톨릭청년'의 편찬위원을 맡기도 했다. 종교지였지만 사회 문제에 대한 논문과 해설을 실었고, 유명 문인의 작품을 소개하는 문예지이기도 했다. 엄혹한 시절 한글전용으로 발행된 잡지의 구독자는 8만명에 달했다. 정지용에게 가톨릭은 단순한 신앙이 아니라 식민지 시대 민중 교화와 투쟁의 수단이었던 셈이라고 트립 호스트인 이원영 카툰캠퍼스 이사는 설명했다.

해방 이후 미 군정을 찾아다니며 설득한 정지용의 노력으로 일본인 소유 별장이었던 적산가옥이 부천 최초의 성당인 소사성당이 됐다. 현재 부천성모병원 뒤 성가요양원의 부속 건물이 있는 자리다. 한국전쟁으로 파괴됐다가 재건된 이후에는 소명여자중·고등학교의 도서관으로 쓰이기도 했지만 2016년 요양원 재건축 과정에서 철거됐다. 이야기가 아니었다면 눈에 보이는 아무런 흔적도 찾을 수 없는 곳에서 잠시 말을 잊었다.

정지용 시인 주거지 터에 남아있는 안내문 [사진/전수영 기자]
정지용 시인 주거지 터에 남아있는 안내문 [사진/전수영 기자]

◇ 경인선 기찻길 옆에서의 탄식

소사성당 터에서 조용히 돌아 나와 향한 곳은 정지용 시인의 주거지 터다. 우리나라 최초의 철도인 경인선 기찻길 바로 옆이다. 정지용 시에 곡을 붙인 가곡 '향수'를 들으며 경인로를 따라 걷는다.

정지용이 이곳에 터를 잡은 이유는 서울로 출퇴근하기 편한 이유도 있겠지만, '향수'에서 그리는 고향 옥천의 풍경과도 비슷했기 때문이라는 이야기도 있다. 복사꽃이 지천이던 시절의 풍경을 상상하며 걷다 멈춘 상가 건물 앞. 큼직한 간판 사이에 폭이 좁은 셔터가 내려져 있고, 거기에 '여기는 한국현대시의 큰 별인 정지용 선생이 가장 어두웠던 시대에 약 3년 동안 은거하면서 시심을 키우던 곳입니다'라는 안내문이 직접 쓰여 있다.

건물 끝 기둥에는 부천시 문학단체인 복사골 문학회의 이름으로 된 같은 내용의 작은 석판 안내문이 하나 더 있었다. 그나마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안타까운 마음에 그만 탄식이 나오고 말았다.

마지막 코스인 갤러리 카페에 전시된 카툰 작품들 [사진/전수영 기자]
마지막 코스인 갤러리 카페에 전시된 카툰 작품들 [사진/전수영 기자]

◇ 어슬렁 프로젝트

카툰캠퍼스가 시민들과 함께 만드는 어슬렁 프로젝트는 최근 더 많은 예술가의 이야기가 넘쳐 나는 성북동(어슬렁 성북동)에서도 오픈했다. 강릉에서도 준비 중이다.

프로젝트의 문을 연 부천인문로드 역시 진행형이다. '원미동 사람들' 속 작품 11편을 각각 한장의 그림에 담은 카툰은 현재 마지막 코스인 갤러리 카페에 들어가서야 볼 수 있지만, 이 작품들을 원미동 골목 곳곳에서 볼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목표다. 이 목표는 관의 지원이 아닌, 원미동 주민들의 자발적인 지원과 지지를 받아 이루고 싶다고 호스트인 이 이사는 말했다.

새로운 기술과의 접목도 돋보인다. 들고 다니며 볼 수 있는 간략한 한장짜리 지도와 더욱 많은 이야기가 담긴 책자가 제공되는데, 지도와 책자의 QR코드를 찍으면 부천인문로드가 담긴 구글 지도, 관련 작품을 읽어주는 음성 파일, 양귀자와 정지용의 작품과 생애를 훑어보는 타임라인 맵 등으로 이동한다.

풍성한 이야기가 흥미로운 데 비해 현장에서 눈에 보이는 것들이 적다는 아쉬움은 VR(가상현실) 기술로 보완될 예정이다.

◇ 에어비앤비 착한 트립

이제 여행자는 유명 관광지에서 '인증샷'을 남기는 것으로 만족하지 않는다. 관광객이 아닌 현지인처럼 살아보고 싶은 여행자들의 욕구와 맞아떨어진 것이 현지인의 집에서 묵도록 연결해 주는 에어비앤비의 서비스다.

서비스는 현지의 독특한 숙소를 빌려주는 것에서 더 나아가, 현지 호스트가 기획하고 진행하는 트립을 통해 취미와 기술, 지식을 배우고 즐기는 체험 여행으로 그 영역이 넓어졌다.

현지인이 즐겨 찾는 골목의 바와 카페를 누비고, 가정집에서 함께 요리하고, 독특하고 작은 공간에서 콘서트를 즐기고, 향수나 가죽 소품을 직접 만들기도 한다.

한국에서는 2016년 11월 서울에서 처음 시작한 이후 제주와 부산 등 전국으로 확산하고 있다. 한국화 부채 만들기, 김치 담그기, K-POP 댄스 배우기, 메이크업 배우기, 막걸리 빚기 등 '한국적'인 선택지도 다양하다.

어슬렁 프로젝트는 지역 사회에 공헌하는 '착한 트립'에 속해 있다. 에어비앤비는 착한 트립에 수수료를 부과하지 않고 참가비 전액을 비영리 기관에 전달한다.

※ 연합뉴스가 발행하는 월간 '연합이매진' 2019년 2월호에 실린 글입니다.

mihee@yna.co.kr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2019/02/10 08:01 송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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