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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 향기 그윽한 여행] 녹차의 본향(本鄕) 보성

(보성=연합뉴스) 성연재 기자 = 일출과 함께 안개가 피어오르는 녹차밭 풍경은 청량하고 아름답다. 경남 하동과 함께 녹차의 본고장으로 이름난 전남 보성에는 이런 녹차밭들이 즐비하다.

보성만큼 CF와 드라마 촬영지로 사랑받고 있는 곳도 없다. 2013년엔 CNN이 선정한 '세계의 놀라운 풍경 31선'에 선정되기도 했다.

'보성 계단식 전통차 농업시스템'은 최근 국가중요농업유산 제11호로 지정됐다.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관광공사가 선정하는 '2019-2020 한국관광 100선'에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봇재다원의 일몰 [사진/성연재 기자]
봇재다원의 일몰 [사진/성연재 기자]

보성에는 4천곳에 달하는 다원이 있는데 그중 가장 유명한 곳이라면 대한다원이 꼽힌다. 풍광이 아름다운 이곳은 매일 아침 멋진 차밭의 일출 사진 한 장을 건지려는 전국의 아마추어 사진가들로 붐빈다.

수년 전 대한다원을 방문한 적이 있어 이번에는 다른 곳을 보고 싶었다. 그래서 방문한 것이 제2 대한다원. 정확한 명칭은 '대한다업보성다원 제2농장'이다. 제1 대한다원이 입체적인 풍경으로 유명하다면, 이곳은 평야에 늘어선 차나무들이 만들어내는 풍경으로 유명하다.

푸른 차나무들이 끝없이 펼쳐져 있다. 가끔 작업하는 인부들만 오갈 뿐이다. 추운 겨울 녹색의 바다를 보니 마음이 편안해진다. 스마트폰에서 본 보성지역의 미세먼지 지수를 나타내는 색상도 녹색이었다.

해가 질 무렵 '봇재'로 향했다. 원래 봇재는 보성읍과 회천면 사이의 고개 이름이다. 무거운 봇짐을 내려놓고 잠시 쉬어가는 곳이었기에 이런 이름을 얻었다. 그만큼 고개가 가파르다. '봇재'라는 명칭으로 방문해야 할 곳은 모두 두 곳이다.

첫 번째는 봇재 고갯길 언덕에 있는 봇재다원이다. 다원을 배경으로 낭만적인 석양 풍경을 카메라에 담을 수 있는 곳이다. 언덕 위 주차장에 차를 세운 뒤 지는 해를 바라볼 수 있다.

'녹차의 바다' 제2 대한다원 [사진/성연재 기자]
'녹차의 바다' 제2 대한다원 [사진/성연재 기자]

조금 부지런한 사람은 아래쪽으로 난 길을 통해 다원으로 내려갈 수도 있다. 보성은곡녹차판매장을 검색하면 쉽게 갈 수 있다.

두 번째 봇재는 녹차와 관련된 전반적인 체험을 할 수 있는 곳이다. 티 카페와 보성 역사관 등 보성의 차와 관련된 모든 것을 접할 수 있다. 보성 차밭 빛 축제장 바로 앞이어서 빛 축제를 창문 밖으로 감상할 수 있다.

티 카페에선 녹차 밭을 바라보며 다양한 종류의 녹차를 즐길 수도 있다. 특별히 눈에 띄는 메뉴가 하나 있었다. 바로 인도 아삼 지역 홍차와 보성 녹차를 조합한 차였다.

봇재에서는 다양한 차를 마실 수 있다. [사진/성연재 기자]
봇재에서는 다양한 차를 마실 수 있다. [사진/성연재 기자]

보성이 차를 두고 얼마나 노력하는지 알 수 있었다. 보성의 자랑 '세작' 한 잔과 아삼-보성녹차 한 잔을 따로 시켰다. 아삼 홍차 블렌딩은 알싸하고 진한 인도 아삼홍차의 맛과 보성 녹차의 깔끔함이 함께 전해졌다. 그래도 역시 가장 좋은 것은 깔끔한 녹차 한 잔의 맛이었다.

◇ 보성의 녹차는 진화 중

중국에서는 차의 제조 공정과 제품 색상에 따라 백차, 녹차, 황차, 우롱차, 홍차, 흑차 등 6가지로 분류하고 있다.

보성군의 소개로 다원 한 군데를 찾았다. 노동면 돈다길에 있는 한 작은 다원이다. 젊을 때 뇌졸중으로 쓰러졌던 주인 문정자 씨는 찻잎을 발효시키는 방법을 연구해 다양한 발효차를 만들어냈다.

보성군의 한 다원에서 문정자 씨가 차 재료를 살펴보고 있다. [사진/성연재 기자]
보성군의 한 다원에서 문정자 씨가 차 재료를 살펴보고 있다. [사진/성연재 기자]

문씨는 특히 황차(黃茶)에 관심이 많다. 황차는 녹차와 달리 찻잎을 쌓아두는 퇴적과정을 통해 습열(濕熱) 상태에서 차엽의 성분변화가 일어나 특유의 품질을 띠게 된다. 녹차 일색의 보성에도 작은 변화가 일어나고 있었다.

다음날엔 보성읍에 있는 전라남도농업기술원 소속 차 산업연구소를 찾았다. 우량 신품종 차를 육성하고 차나무 교배육종 등을 연구하는 곳이다.

전라남도농업기술원 소속 차 산업연구소 뒤편의 녹차밭 [사진/성연재 기자]
전라남도농업기술원 소속 차 산업연구소 뒤편의 녹차밭 [사진/성연재 기자]

가장 인상적인 것이 이곳에서 한 잔 얻어 마신 홍차였다. 5년 전부터 홍차를 개발하고 있다고 한다. 녹차의 고장에서 홍차를 마시다니…. 스리랑카나 인도의 경우 홍차를 대엽종 차나무에서 생산하는데 우리나라의 소엽종 차나무에서 생산하는 홍차 맛은 어떨까? 한 잔 들이켰더니 구수한 느낌이 먼저 혀끝으로 올라온다. 대엽종일수록 떫은맛을 내는 타닌이나 카테킨 성분이 많다. 우리나라에서 나는 소엽종 차나무의 경우 감칠맛을 내는 아미노산 성분이 더 많다.

전라남도농업기술원 소속 차 산업연구소에서 마신 홍차 [사진/성연재 기자]
전라남도농업기술원 소속 차 산업연구소에서 마신 홍차 [사진/성연재 기자]

홍차를 한 잔 마시고 연구소 뒤쪽으로 올라갔더니 차밭이다. 각종 차에 여러 가지 이름을 붙여놨다. 어떤 나무는 한 고랑 전체를 부직포로 씌워놓았다. 지난해 강추위로 추위에 약한 차나무가 동해를 많이 입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연구소는 동해를 이길 수 있는 방법을 연구 중이다.

◇ 녹차로 할 수 있는 것은 다 한다

보성은 녹차로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체험할 수 있는 곳이다. 그중 하나가 보성 녹차를 먹인 돼지 '녹돈'이다.

녹돈과 관련된 재미있는 일화가 하나 있다. 몸에 좋은 찻잎을 먹인 돼지는 살이 찌지 않고 자꾸 살이 빠져만 갔다고 한다. 녹차는 살을 빼는 데 도움이 되는 성분을 다량 함유하고 있어서다. 결국, 녹돈은 잡기 3개월 전부터만 찻잎을 먹이기로 했다고 한다. 녹차를 먹인 돼지는 냄새가 나지 않고 깔끔한 맛을 내기로 유명하다.

깔끔한 맛을 내는 녹차떡갈비 [사진/성연재 기자]
깔끔한 맛을 내는 녹차떡갈비 [사진/성연재 기자]

시중의 한 녹돈 음식점을 찾아 미리 음식을 주문했다. 주말에는 줄을 설 정도로 인기가 있기 때문이다.

취재를 마친 뒤 다시 식당을 찾았을 땐 주방에서 참숯으로 떡갈비를 익히고 있다 했다. 양해를 구하고 주방으로 들어가 떡갈비 굽는 장면을 취재했다.

떡갈비를 버무릴 때부터 녹차 가루를 넣지만, 특별히 녹차 가루를 좀 더 묻혀달라고 부탁했다. 다 익혀 나온 떡갈비는 잡냄새가 전혀 없는 깔끔한 맛이 났다.

◇ 율포해수녹차센터

율포해수녹차센터 노천탕에서 연인들이 온천욕을 즐기고 있다. [사진/성연재 기자]
율포해수녹차센터 노천탕에서 연인들이 온천욕을 즐기고 있다. [사진/성연재 기자]

회천면 율포 앞바다에는 율포해수녹차센터가 최근 문을 열었다. 바닷물과 녹차를 활용한 힐링 휴양공간으로 단장해 재개장한 것이다.

1층엔 카페테리아와 특산품 판매장, 2층엔 해수녹차탕, 3층엔 테라피 체험시설과 물을 이용한 마사지 전문 아쿠아 토닉, 야외 노천탕 등이 있다.

지하 120m에서 끌어 올린 암반 바닷물과 찻잎을 우려낸 녹찻물로 목욕을 즐길 수 있다. 야외 노천탕의 경우, 인근 솔밭해변 풍광과 남해안의 정취를 함께 느낄 수 있다. 수영복을 입고 들어가는 노천탕은 아이들과 함께 이용할 수 있는 가족탕과 성인들에게 알맞은 성인탕 등 2곳이 있다.

◇ 제암산 자연휴양림·윤제림

일출이 아름다운 제암산휴양림 [사진/성연재 기자]
일출이 아름다운 제암산휴양림 [사진/성연재 기자]

보성에 머무르면서 제암산 자연휴양림을 놓칠 수 없다. 전남 보성군 웅치면과 장흥군 장동면에 걸쳐 있는 제암산(807m). 이 산을 잘 활용하는 곳은 장흥군이 아니라 보성군이다.

보성군은 1991년 제암산 일대 국유지 160㏊를 산림청에서 빌렸고 5년여간 공사 끝에 1996년 자연휴양림 문을 열었다.

한국관광공사가 선정한 '2018년 한국관광의 별'에 이름을 올렸다. 풍광이 아름답기로 둘째가라면 서러운 곳으로 꼽힌다.

특히 최근 리모델링을 통해 새로운 장소로 거듭났다. 장애인·노인까지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5.8㎞에 달하는 데크길을 조성해 안전하게 산림욕을 즐길 수 있도록 했다. 트레킹 코스로 올라가 봤다.

무장애 데크길이 아름다운 제암산휴양림 [사진/성연재 기자]
무장애 데크길이 아름다운 제암산휴양림 [사진/성연재 기자]

잘 만들어진 데크길은 휠체어도 2대가 충분히 교행할 수 있을 만큼 넓고 편안했다. '무장애 데크길'이란 이름도 그래서 얻게 됐다.

한군데 더 가야 할 곳을 꼽는다면 윤제림(允濟林)을 권한다. 국내 최대 사유림으로 손꼽히는 윤제림은 호남정맥 주월산 일대 337㏊(약 100만 평)에 개인이 50여 년에 걸쳐 가꾼 숲이다.

지금은 세상을 뜬 윤제 정상환 선생의 호에서 이름을 따왔다. 정 선생은 한국전쟁 전후 사업을 통해 큰 부를 이뤘으나, 이를 모두 고향 땅에 나무를 심는 데 투자했다.

일본을 자주 왕래하던 그에게 잘 조림된 일본의 산과 조국의 민둥산은 너무나 큰 차이로 다가왔다. 정 선생은 1964년부터 갖은 어려움을 극복하고 민둥산에 묘목을 심기 시작했다. 현재는 장남 정은조 씨가 이를 이어받고 확대해 숲을 가꾸고 있다.

활공장의 탁 트인 전망이 매력적인 윤제림 [사진/성연재 기자]
활공장의 탁 트인 전망이 매력적인 윤제림 [사진/성연재 기자]

윤제림의 백미는 득량 평야와 득량만, 고흥군까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활공장이다. 이곳에서는 아름다운 보성군의 풍경들이 360도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직접 SUV를 몰고 활공장까지 안내했던 정씨는 서둘러 서울로 향해야 한다며 양해를 구했다. 정부에서 추진 중인 '숲속의 한반도' 프로그램에 참여하기 위해서라 한다. 정씨는 "한반도 전역을 푸른 숲으로 가꾸려는 정부 정책에 윤제림의 노하우를 보탤 예정"이라고 말했다.

윤제림 방갈로 모습 [사진/성연재 기자]
윤제림 방갈로 모습 [사진/성연재 기자]

※ 연합뉴스가 발행하는 월간 '연합이매진' 2019년 2월호에 실린 글입니다.

polpori@yna.co.kr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2019/02/09 08:01 송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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