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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변호사 "일제 강제노동, 韓이 中보다 규모 크고 기간 길어"

中피해자-日기업 화해 성립 힘쓴 우치다 변호사

(도쿄=연합뉴스) 김정선 특파원 = 그동안 중국 측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와 일본 기업과의 화해 성립에 힘쓴 우치다 마사토시(內田雅敏) 변호사는 "중국과 한국에서의 강제노동·연행은 그 규모가 다르다는 차이점이 있다"고 14일 말했다.

우치다 변호사는 이날 오후 도쿄(東京) 메구로(目黑)에 있는 도쿄대 고마바(駒場)캠퍼스에서 열린 '강제동원피해자 문제에 대한 학습회'에서 이같이 말했다.

그는 "중국 측 (강제노동) 규모는 4만명 정도로 알려졌지만 한국은 강제노동 기간이 길뿐 아니라 규모도 그보다 훨씬 크다"고 설명했다.

우치다 마사토시 변호사
우치다 마사토시 변호사(도쿄=연합뉴스) 김정선 특파원 = 그동안 일본에서 중국 강제연행 피해자와 일본 기업과의 화해 성립에 힘쓴 우치다 마사토시(內田雅敏) 변호사가 14일 도쿄대 고마바(駒場)캠퍼스에서 열린 '강제동원피해자 문제에 대한 학습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2019.1.14 jsk@yna.co.kr

우치다 변호사는 전후(戰後·일본의 2차대전 패전 이후) 보상 재판에서 원고 측 변호단의 중심적 역할을 해온 변호사로, 미쓰비시(三菱)머티리얼 소송을 비롯해 일본 기업과 중국인 피해자와의 화해 성립에 힘쓴 것으로 알려졌다.

미쓰비시머티리얼은 중국인 피해자들이 2014년 중국 법원에 제기한 강제징용 손해배상 소송과 관련해 2016년 피해자 3천765명에게 1인당 10만위안(약 1천654만원)을 지급하는 내용의 화해 협의를 한 바 있다.

우치다 변호사는 "2000년 하나오카(花岡) 사건과 관련해 화해가 있었기 때문에 2009년 니시마쓰(西松)건설과의 화해가 가능했고 이로 인해 2016년 미쓰비시머티리얼과의 화해도 가능했던 것"이라고 말했다.

하나오카 사건이란 태평양전쟁 말기 아키타(秋田)현 하나오카광산에 강제 연행됐던 중국인들이 학대와 차별에 항의하는 폭동을 일으켰다가 수백명이 살해당했던 사건을 뜻한다.

2000년 도쿄 고등법원 판결로 가해의 주체였던 가시마구미건설이 피해자 대리인인 중국적십자회에 5억엔을 내면서 일단락됐다.

우치다 변호사는 "지금 돌아보면 초반에는 협상의 진전이 잘 이뤄지지 않았는데 그것은 해당 기업이 타 기업에 미치는 영향을 생각했기 때문"이라며 "다른 사안도 마찬가지로, 기업 측이 일본 정부와의 관계도 생각했던 것 같다"고 말했다.

중국 정부는 1972년 일본과 국교를 정상화할 때 '양국 우호를 위해 전쟁 배상 청구권을 포기한다'고 밝혔다.

지난해 10월 우리 대법원의 징용배상 판결 이후 신일철주금과 일본 정부 등이 이에 반발하자 한국 피해자들을 차별하는 게 아니냐는 비판이 일었다.

우치다 변호사는 이날 행사 참가자의 질문에 답하는 과정에서 "시간이 지날수록 식민지 시대 문제는 마주 보는 것이 어려워진다"고 지적했다.

그는 특히 "역사문제에 돈을 지불하면 (해결)되는 것이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전후 보상·화해의 경험으로부터 생각한다'는 부제가 붙은 이번 학습회는 우치다 변호사의 활동과 경험을 토대로 한일간 관련 상황의 개선 방안을 모색해 보자는 취지에서 마련됐다.

jsk@yna.co.kr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2019/01/14 19:04 송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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