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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길원의 헬스노트] 故 임세원 교수를 'Respect' 합니다

송고시간2019-01-04 06:13

(서울=연합뉴스) 김길원 기자 = 5년 전 미국 미네소타대학 호멜(Homel) 연구소에서 방문연구원으로 연수할 때의 일이다.

이제서야 고백하지만, 사실 필자는 호멜연구소의 협력 연구기관으로, 그곳에서 약 1시간 정도 떨어진 메이요클리닉에 머무르는 시간이 더 많았다.

당시 인구 3만명이 채 안 되는 조그만 도시에 위치한 이 병원이 미국 내 병원 평가에서 늘 1위를 다투고, 전 세계의 부호들이 찾는 이유가 의학 담당 기자로서 너무나 궁금했기 때문이다.

이런 궁금증을 풀기 위해 메이요클리닉에 가는 날이면 병원 이곳저곳을 둘러보고, 여러 의사와 환자들을 만나 서툰 영어로 병원의 특징과 경영 노하우를 취재했다.

강북삼성병원 임세원 교수 빈소로 들어가는 조화
강북삼성병원 임세원 교수 빈소로 들어가는 조화

(서울=연합뉴스) 임헌정 기자 = 외래 진료환자가 휘두른 흉기에 숨진 고(故) 임세원 강북삼성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의 빈소가 2일 서울 종로구 새문안로 서울적십자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됐다.
이날 고인을 추모하는 근조화환이 장례식장으로 들어가고 있다. 2019.1.2 kane@yna.co.kr

역시나 메이요클리닉에는 몇 가지 놀라운 점이 있었다.

그중에서도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건 상당수 의사가 전통적인 의사 가운을 걸치지 않는 채 간편한 정장 차림으로 진료한다는 점이었다. 그래서인지 우리네 병원과 달리 병원 로비에서조차 가운을 입고 다니는 의사를 보기가 힘들었다.

그 이유를 묻자 의사들은 "환자들에게 편안함을 주기 위한 것" "진료에 가운을 입을 필요가 없다" 등의 이유를 대며 대수롭지 않게 얘기했다.

그게 환자를 바라보는 메이요클리닉 의사들의 시각이었다.

그렇다면 의사에 대한 환자의 시각은 어떨까.

취재에 응해 진료 과정을 보여준 한 당뇨병 환자는 의사와의 진료 시간이 총 30분이나 되는데 놀란 기자와 대화를 나누면서 담당 주치의를 'Respect'(리스펙트) 한다고 표현했다. 필자가 인터뷰한 다른 환자들도 자신을 진료하는 의사에 대해 곧잘 이 단어를 썼다.

'Respect'는 우리 말로 존경, 존경하는 마음, 경의 등으로 해석된다. 한 한국계 의사는 기본적으로 미국에서 의사라는 직업은 이런 존경의 대상에 포함되기에 (환자들이) 존경한다는 표현을 하는 게 낯설지 않다고 했다. 그는 이렇게 존경받는 위치에 있기 때문에 간혹 의사가 위험할 수 있는 환자를 거부해도 크게 문제가 되지 않았다는 얘기도 전했다.

세밑에 의료계에 비보가 날아들었다. 임세원 강북삼성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가 환자가 휘두른 흉기에 찔려 유명을 달리한 것이다. 필자는 고인과 취재차 딱 한 번 통화한 적이 있다.

고인은 환자에게 늘 극진했다. 이날도 외래업무가 이미 종료된 시간에 찾아온 환자를 거절하지 못한 채 진료하다 변을 당한 것으로 알려진다. 더욱이 마지막까지 진료실 밖에 있는 간호사들을 염려한 나머지 간호사들을 피신시키는 과정에서 제대로 대피하지 못했다는 게 동료 의사들의 전언이다.

고 임세원 교수 추모, SNS서 확산
고 임세원 교수 추모, SNS서 확산

(서울=연합뉴스) SNS서 확산하고 있는 故 임세원 교수 추모 그림. 원작자 늘봄재활병원 문준 원장. 2019.1.2 photo@yna.co.kr

그런데도 고인의 유족은 피의자나 세상을 비난하지 않았다. 유족은 안전한 진료환경을 만들어 줄 것과 마음이 아픈 사람들이 편견과 차별 없이 언제든 쉽게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 달라고 당부했다. 고인의 평소 뜻을 받든 것이다.

고인의 진료 덕에 우울증을 앓던 아들을 살렸다는 한 여성은 빈소를 찾아 끝내 울음을 토해냈다. 이런 고인을 정부가 나서 '의사자'로 추서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우리나라에서 환자와 의사 관계는 이미 끝났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환자 진료에 온 힘을 다해도 알아주지 않을뿐더러, 어쩌다 문제가 생기면 그동안의 노력도 다 허사가 된다고 푸념한다. 반면 환자들은 의사가 돈만 밝히고, 권위적으로 진료한다며 꼬집는다. 이는 비윤리적인 행태를 저지르는 일부 의사들의 모습이 투영된 탓이 크다.

결국 돌이켜보면 의사나 환자, 양측의 말이 때론 맞기도 하고 틀리기도 하다. 하지만 고 임세원 교수의 비보를 접하면서 한가지는 분명해졌다. 한국에도 '리스펙트' 대상이 될 수 있는 의사가 꽤 있다는 점이다.

진료실에 마주 앉는 의사와 환자의 물리적 거리는 고작 1m 남짓이지만, 갈수록 마음의 거리는 멀어지는 게 현실이다. 이제 서로가 그 마음의 거리를 좁혀 고인의 숭고한 정신을 기렸으면 하는 바람이다.

'진료중 참변' 고(故) 임세원 교수 발인
'진료중 참변' 고(故) 임세원 교수 발인

(서울=연합뉴스) 홍해인 기자 = 진료 중 환자가 휘두른 흉기에 찔려 유명을 달리한 고(故) 임세원 강북삼성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의 발인식이 엄수된 4일 오전 임 교수의 영정이 서울 종로구 서울직십자병원 장례식장을 떠나고 있다. hihong@yna.co.kr

bio@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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