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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쉿! 우리동네] 고대 제철 산업 요람…울산 달천철장

삼한시대부터 1990년대까지 철광석 생산했던 광산
울산북구, '쇠부리 축제'로 철기 문화 계승

(울산=연합뉴스) 김용태 기자 = 오늘날 울산은 우리나라 산업의 중심지로서 '산업수도'를 표방하고 있다.

울산은 1960년대 정부에 의해 특정공업지구로 지정된 이후 자동차, 조선, 석유화학 등 3대 산업이 급속도로 성장해 불과 수십 년 만에 비약적인 발전을 이뤘다.

그러나 울산 산업의 역사는 수십 년 전이 아닌 먼 옛날 고대에서부터 그 기원을 찾아야 한다.

울산 북구 달천동은 고대 삼한 시대부터 영남 지역 최대의 철 생산지로 추정된다.

제철 산업의 요람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울산 철기문화 유적지 달천철장
울산 철기문화 유적지 달천철장[울산시 북구 제공]

◇ 달천 철장은 고대부터 철을 캐던 곳

북구 달천동 산 20-1 일원에는 철의 원료인 토철이나 철광석을 캐는 '철장'이 고대부터 존재했다.

이곳을 '달천(達川) 철장'이라고 한다.

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포털에 따르면 중국 문헌 '삼국지 위서 동이전'(三國志 魏書 東夷傳)과 '후한서'(後漢書)에는 '한·예·왜 모두가 변·진한에서 철을 가져가며, 모든 시장에서 철을 사용하여 매매하는 것이 마치 중국에서 돈을 사용하는 것과 같다'라는 기록이 있다.

당시 철이 경제 발달에 크게 기여했음을 알 수 있는데, 이 철이 생산된 곳이 바로 달천 철장이라고 추정되고 있다.

우리나라 문헌에 달천 철장의 존재가 등장하는 것은 아주 오랜 세월이 지난 후인 조선 시대다.

'조선왕조실록'의 '세종실록 지리지'에는 달천 철장에서 세공(歲貢·해마다 지방에서 나라에 바치던 공물)으로 생철 1만2천500근을 바쳤다는 기록이 있다.

이는 '세종실록 지리지'에서 철장이 있었다고 언급된 경주, 안동, 영덕, 합천 등지에서 바친 철 중 가장 많은 양이다.

이 때문에 당시 달천에서 생산되던 철의 양이 다른 지역보다 많았거나 질이 우수했을 것으로 유추해볼 수 있다.

이후 달천 철장은 다시 기록에 나오지 않다가 효종 8년인 1657년 울산 출신 구충당 이의립 선생에 의해 재발견됐다는 이야기가 문헌을 통해 전해진다.

이의립은 달천에서 나온 철을 이용해 병기와 농기구를 만들어 나라에 바치는 등의 공을 인정받아 왕으로부터 가선대부(조선 시대 종2품 문무관의 품계)의 직위와 달천 철장을 하사받았다고 한다.

이후 철장은 이의립의 후손들에 의해 대대로 관리되다가 결국 1906년 일제에 빼앗기게 된다.

일제 패망을 앞둔 1943년에는 다시 소유권이 개인에게 넘어갔고, 1964년 대한철광개발 울산광업소로 재탄생해 철광석 생산 작업이 이어졌다.

1990년대까지도 철광석과 광물을 생산했지만 2002년 폐광되면서 광산으로서의 달천 철장의 역사는 막을 내리게 됐다.

달천 철장은 2003년 울산시 기념물 제40호로 지정됐다.

달천 철장 삼한시대 수혈유구
달천 철장 삼한시대 수혈유구[연합뉴스 자료사진]

◇ 달천 철에는 '비소'가 들어 있다

2006년 울산문화재연구원은 달천 철장 주변 아파트 및 학교 건설 예정 부지 2만5천115㎡에 대한 발굴 조사를 한 결과 삼각형 점토대토기, 주머니호, 장경호 등 50여점의 삼한 시대 전기 생활 유구를 발견했다.

또 삼한 시대 주거지 2동과 석관묘 1기, 수혈유구 4기 등이 발굴됐다.

발굴을 통해 삼한 시대 취락이 확인되면서 유적의 중요성이 제기됐고, 2008년까지 3차에 걸친 발굴 조사로 청동기 시대 주거지와 삼한 시대 주거지 등과 함께 삼한·조선 시대 채광유구, 근대 채광 관련 선로 등이 함께 확인됐다.

삼한 시대 채광유구는 표토층에서 넓게 채굴한 것과 구덩이를 파서 채굴한 것 등 두 가지 형태로 확인됐다.

조선 시대는 채광 갱을 통해 철광석을 캤는데, 전체적으로 삼한 시대보다 깊이가 훨씬 더 깊었다.

달천 철장 유적에서 출토된 철광석, 토양, 사문암 등에는 특징적으로 비소가 높게 검출됐는데, 비소는 달천 철장의 철임을 드러내는 표식과 같은 역할을 하게 된다.

특히 초기 신라 시대 대규모 제철 유적인 경주 황성동 유적에서 출토된 철광석 등에 함유된 비소 비율이 달천 철장 철광석과 거의 같다는 사실이 알려져 달천 철장에서 경주 일대에 제철 원료를 공급하던 광산이라는 점이 드러났다.

또 일본에서 출토된 철기를 분석한 결과 고농도의 비소가 검출된 유물이 발견돼 일본까지 달천 철이 수출됐다는 추측을 가능하게 한다.

쇠부리 축제서 열린 제철기술 복원 실험
쇠부리 축제서 열린 제철기술 복원 실험[울산시 북구 제공]

◇ 철기 문화 계승하는 '쇠부리 축제'

울산시 북구는 달천 철장이 있는 지역의 정체성을 살리고, 철기 문화를 계승하고자 2005년부터 매년 '쇠부리 축제'를 개최하고 있다.

'쇠부리'는 '쇠를 부리다'라는 뜻으로 철광석을 원료로 쇠를 만드는 제철법을 말한다.

북구는 매년 달천 철장에서 고유제를 지내는 것을 시작으로 축제의 막을 올리고 있다.

특히 2016년부터는 전통 방식으로 철을 생산하는 '쇠부리 제철기술 복원 실험'을 매년 시행하고 있어 축제 정체성이 더 강화됐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올해 5월 열린 '제14회 쇠부리 축제'에서는 17세기 중엽의 석축형 제련과 유사한 방형 제련로를 만들어 선철(철광석에서 직접 제조되는 철의 일종) 생산을 시도해 쇳물 40㎏을 만드는 데 성공했다.

북구는 쇠부리 문화에 대한 기초를 정립하고, 지속적인 보존과 활용 방안을 찾기 위한 연구 용역에도 착수한 상태다.

용역에서는 쇠부리 문화와 관련된 문헌, 유적, 유물, 인물, 스토리 등을 조사하고, 국내외 쇠부리 관련 사례 검토, 쇠부리 문화의 여건과 경쟁력 분석도 이뤄진다.

이 밖에 쇠부리 전시관 건립 계획 및 관광 자원화 가능성과 달천 철장 갱도 개발 가능성도 확인한다.

북구는 또 달천 철장을 상징화하는 사업으로 '영원한 불꽃' 조성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영원한 불꽃'을 각종 기념관과 공원 등에 조성해 철기 문화를 계승하는 북구를 홍보하는 콘텐츠로 활용하자는 것이다.

철 생산지로서의 오랜 역사를 가진 달천 철장이 새로운 문화 콘텐츠로 재탄생할 수 있을지 기대된다.

yongtae@yna.co.kr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2018/12/29 11:00 송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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