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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 "땅 돌려주는 것 고맙지만 다 받지 못하면 생계 막막"

송고시간2018-12-26 18:07

양구 펀치볼 무주지 3천여 필지 국유화 뒤 경작민에 매각 방침

"맨손으로 일군 황무지, 나라에서 가져간다니 억울해"

양구 해안면 펀치볼 마을
양구 해안면 펀치볼 마을

[촬영 양지웅]

(양구=연합뉴스) 양지웅 기자 = "수십 년 동안 맨손으로 황무지를 일궜어. 그땐 나라에서 제비 뽑아서 9천900㎡(3천평) 준다고 했지만, 실상은 6천600㎡(2천평) 남짓이었지. 주위에 야산도 다 갈아엎어서 밭으로 만들어놨는데 나라에서 도로 가져간다니 억울해."

강원 양구군 해안면은 한국전쟁 당시 8번이나 점령군이 바뀔 정도로 격한 전투를 통해 수복한 땅이다.

당시 원주민의 80%가 북한으로 피난했지만, 전쟁이 멈춘 뒤 휴전선에 가로막혀 돌아오지 못하게 되면서 대규모의 '무주(無主)부동산'이 생겨났다.

정부는 1956년과 1972년, 2차례에 걸친 집단 이주정책을 통해 이주민에게 토지의 경작권을 주면서 개간하도록 했다.

경작권을 받은 이주민들은 수십 년간 황무지를 일구고 농작물을 기르면서 옥토로 바꿔놨으나 토지 소유권은 부여받지 못한 채 살아왔다.

1970년대 초반 2차 집단 이주정책을 통해 해안면 만대리로 시집온 주명래(68)씨는 당시를 이렇게 회상했다.

"당시는 트랙터는커녕 경운기도 귀한 시절이었어. 나라에서 나눠준 땅으로는 먹고 살기 어림도 없었지. 귀한 경운기 빌려서 비탈길을 일구다가 구르기 일쑤였고, 소달구지는 힘이 없어서 나무뿌리도 뽑아내지 못했지만 그래도 그런 땅에 감자, 옥수수, 콩을 심으며 버텼어."

무주지 정책에 관해 얘기하는 만대리 주민들
무주지 정책에 관해 얘기하는 만대리 주민들

[촬영 양지웅]

수십 년간 농사를 지어온 땅이지만 주인 행세를 할 수 없었던 그는 최근 면사무소를 통해 나라에서 땅을 돌려준다는 얘기를 들었다.

하지만 마냥 기뻐할 수 없는 소식이었다.

주민들에게 경작지 2만9천여㎡(9천평)만 등기를 허가하고, 나머지 땅은 국유화한다고 했기 때문이다.

고마운 마음도 잠시, 주민들은 억울함을 호소했다.

"여기 땅 1만∼2만평 넘는 사람들이 부지기수야. 1950년대부터 이주한 어른들은 이제 농사지을 힘도 없어서 농지를 전대(재임대)하고 그 돈 받아서 겨우 사는 분들이지. 나라에서 9천평 빼고 다 가져가면 어떻게 살라고…"

옆에 있던 주민 박옥분(69)씨도 말을 거들었다.

"물론 땅 주인으로 인정해주는 것은 고맙지만 갖은 고생 겪으며 일군 땅을 경작비 한 푼 못 받고 나라에 갖다 주면 억울한 게 사실이지"

한편 국민권익위원회는 26일 오후 세종컨벤션센터에서 기획재정부·국방부·국토교통부·행정안전부·한국자산관리공사 등 관계기관과 민원인이 참석한 가운데 현장조정회의를 열어 1차 조정안에 합의했다고 밝혔다.

이를 통해 '펀치볼 마을'로 불리는 강원도 양구군 해안면의 민통선 내 소유자를 알 수 없는 '무주(無主)부동산'이 국유화 절차를 거쳐 경작민에게 매각될 전망이다.

해안면 무주부동산 현장조정회의
해안면 무주부동산 현장조정회의

[양구군 제공]

회의에 참석한 한기택 주민대책실무협의회장은 "이날 회의는 첫 만남 정도의 의미만 가진다"며 "반세기 넘게 살아온 우리 주민들의 권리를 소중하게 생각해주기를 정부에 부탁드린다"고 호소했다.

2017년 9월 권익위에 집단민원을 내며 해안면 무주지 사태를 이끌어온 김규호 강원도의원은 "정부가 해안면 주민들의 노고를 헤아린다면 땅을 감정가가 아니라 공시지가 정도나 아니면 경작비를 인정한 정도의 값으로 책정해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어 "9천평 규모의 땅만 등기를 허락하고 나머지는 국유화한다는 방침은 이날 회의를 통해 정해지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펀치볼 마을의 무주지는 3천429필지, 960만6천809㎡로 국내 최대 규모다.

정부는 내년 상반기까지 무주부동산을 국유화하기 위한 특별조치법 제정을 추진하고, 경작민의 거주 유형을 면밀히 분석한 뒤 '차등 매각' 등 세부매각 기준을 마련하기로 했다.

현장조정회의 참석한 마을 주민들
현장조정회의 참석한 마을 주민들

(세종=연합뉴스) 이진욱 기자 = 26일 세종시 정부컨벤션센터에서 열린 '양구군 해안면 무주부동산 및 국유지 매각 요구' 현장조정회의에서 마을 주민들이 참석해 있다. cityboy@yna.co.kr

yangdoo@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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