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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권·왕권을 누르고 역사를 지배한 사상 최강 재벌

'대부호' 야코프 푸거 일대기 다룬 '자본가의 탄생'

(서울=연합뉴스) 이승우 기자 = 중세 유럽은 신권과 왕권이 모든 것을 지배하는 사회였다.

성 베드로 후계자이자 신의 지상 대리인인 교황, 유럽 각국을 다스린 왕과 군주들은 전제적 권력을 휘둘렀고, 평민은 이들의 권위와 명령에 복종하는 삶을 살았다.

그런데 일개 상인이 교황과 왕을 막후에서 제어하거나 조종하고 중세 유럽 역사의 물줄기를 이끌었다면 믿을 수 있을까.

독일의 거부(巨富)이자 은행가인 야코프 푸거는 이처럼 극적이고 거짓말 같은 이야기의 주인공이다. 메디치, 로스차일드, 록펠러 등 음모론에까지 등장하는 많은 거대 재벌이 있지만, 역사학자와 경제학자들은 세계사에서 가장 중요한 자본가로 푸거를 꼽는다.

언론인이자 애널리스트인 그레그 스타인메츠가 지은 신간 '자본가의 탄생(부키 펴냄)'은 이러한 푸거의 일대기를 다뤘다. 영어권에서조차 제대로 조명되지 않은 푸거의 삶과 그가 개척해낸 역사가 상세히 소개된다.

2015년 영미권에서 출간 당시 '천재들의 머니게임' 저자 로저 로웬스타인은 추천사에서 "실제 있었던 일이라고 믿기 어려울 정도로 재미있다"고 했고, '문 앞의 야만인들'을 쓴 브라이언 버로는 푸거를 "재계의 마키아벨리"라고 평가했다.

실제로 푸거는 15~16세기 유럽 역사의 주요 고비마다 등장해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한다. 사실상 세계사 전체에 지금까지도 그의 흔적이 남아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군소 가문에 머물던 합스부르크 가문의 발호와 부상, 가톨릭교회의 대금업 허용, 면죄부 판매와 종교 개혁, 복식 부기 발전과 전파, 자본가와 노동가 간 본격적 갈등 구도, 세계 경제 판도 변화 등 근대 자본주의 사회로 나아가던 과정에 유럽에서 일어난 모든 주요 사건의 이면엔 푸거가 있었다.

자본가의 탄생
자본가의 탄생

푸거는 시작이 미약했으나 끝은 창대했다. 초기엔 직물을 사고팔던 중개상에 불과했지만, 요즘으로 치면 권리 투자로 볼 수 있는 채권 방식 대출을 통해 거상으로 급성장했다.

푸거는 돈을 빌려주고 그 대가로 이자 대신 수익성이 높은 사업의 권리를 받았다. 특히 대출 조건으로 은과 구리 광산 채굴권과 소유권을 얻는 방식을 통해 부를 쌓았는데 그 수완이 보통이 아니었다.

당시 유럽 최대 은광 도시였던 슈바츠에 진출할 땐 통치자인 지기스문트 대공이 배상금 문제로 막대한 대출금이 필요하다는 점을 간파하고 주변에서 돈을 끌어모아 엄청난 금액을 빌려주는 과단성을 보였다. 대신 상환 시까지 슈바츠 은광의 모든 수익권을 갖는 등의 조건을 얻어냈다. 요즘 말로 '하이 리크스 하이 리턴(고위험 고수익)'인 셈이다.

사실 지기스문트 대공이 높은 지위를 이용해 채무 상환을 사실상 거부하거나 무한정 미룬다면 푸거는 파산할 수도 있었지만, 특유의 사업가적 감각으로 지기스문트가 계속 자신으로부터 대출을 받으려 할 것으로 봤다.

예측은 적중했고 푸거는 막대한 양의 은을 확보했다. 그는 이 여유 자금을 기존 직물 사업 대신 구리 광산에 투자하는데, 이는 이전보다 더 위험이 따르는 결정이었다. 막대한 투자와 기반 시설은 물론 오스만 튀르크의 침공이 빈번해 안보 위협이 극심한 헝가리에서 채굴해야 했기 때문이다. 자칫 투자만 해놓고 모든 것을 잃을 수도 있었다.

푸거는 독일 왕 막시밀리안에게 많은 대출을 해준 상태였고, 막시밀리안은 오스트리아와 헝가리까지 침공해 구리 공장 용지 확보에 기여한다. 이어 헝가리 국왕과 가까운 동업자까지 확보해 사업 기반을 다진다.

구리 사업을 통해 막대한 부를 얻으며 종교 지도자와 군주를 막후에서 주무르는 실력자 재벌로 부상한 푸거는 이번엔 본격적으로 현대적 개념의 로비 활동에 나선다.

이자 부과와 고리대금을 금지한 교회를 상대로 전방위 로비를 펼쳐 마침내 성서 해석마저 바꾸는 믿기 어려운 힘을 발휘한다. 이 과정에서 오래전부터 후원한 젊은 신학자들을 동원해 이론적 기반을 마련하는 치밀함을 보였고 주교와 귀족은 물론 교황 레오 10세에까지 서신 등을 통해 로비의 손길을 뻗었다.

결과는 대성공. 현대 은행의 제도적 기반이 마련되는 역사적 순간이었다.

심지어 면죄부(면벌부) 판매와 종교개혁 이면에도 푸거가 있었다. 우리에게는 마르틴 루터만 주인공으로 기억되지만, 어찌 보면 푸거의 영향이 더 컸다.

16세기 초반 마인츠 대주교 자리를 놓고 경쟁이 붙었을 때 가장 조건이 빈약한 '언더도그' 알브레히트는 푸거로부터 많은 돈을 빌려 부패하고 사치스러운 교황에 전달함으로써 승리를 쟁취했다.

대주교에 오른 알브레히트는 푸거에 빌린 돈을 갚고자 '면죄부 판매'라는 악하고도 기발한 아이디어를 짜냈다. 교황은 이에 동의했고 대출금 상환은 면죄부 판매 대금을 교황과 푸거가 나눠 갖는 방식으로 이뤄졌다. 그러나 비밀은 없다던가. 이를 전해 들은 루터가 그 유명한 '95개 조 반박문'을 쓰면서 종교개혁이 촉발됐다.

엥겔스가 '자본주의와 공산주의 대결의 전초전'으로 평가한 독일 농민전쟁에서도 어김없이 푸거가 등장한다.

전쟁 원인을 제공한 건 아니지만 전황이 심각해지면서 푸거의 근거지인 아우크스부르크와 영지인 바이센호른이 위협받자 푸거는 정치적 인맥을 활용해 농민 봉기군을 진압한다. 냉전 시절 서독과 동독은 각각 우표와 지폐에 푸거와 농민군 리더 뮌처 초상화를 넣어 대결했을 만큼 푸거는 공산주의로부터 유럽을 지켜낸 상징적 인물로 통했다.

푸거는 복식 부기를 비롯한 근대적 회계를 개량해 주도적으로 전파했고 '푸거 뉴스레터'라고 부르는 정보망까지 구축했다. 광산업과 대금업에 이어 금융 표준을 만들고 언론 사업에까지 진출하는 현대 재벌의 원형을 보여줬다고 할 수 있다.

종교와 정치 권력이 현재보다 더욱 강력했던 중세 시절에도 돈으로 모든 것을 지배한 푸거는 자본가의 표상이자 역사상 최대 재산가라고 저자는 말한다.

노승영 옮김. 384쪽. 1만8천원.

leslie@yna.co.kr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2018/12/26 16:57 송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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