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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우며 찍었다'…공군조종사겸 기록사진가 이강화 장군 별세

6·25때 전투기타고 임무수행하며 공군활약상 100여장 사진에 담아
"성공이든 실패든 기록으로 남기고 보존해야"

6·25때 전투기타고 임무수행하며 공군활약상 100여장 사진에 담아
"성공이든 실패든 기록으로 남기고 보존해야"

이강화 장군 생전 모습
이강화 장군 생전 모습[공군 제공=연합뉴스]

(서울=연합뉴스) 김귀근 기자 = "성공이든 실패든 반드시 기록으로 남기고 보존하여, 다시는 실패의 역사를 되풀이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6·25 전쟁 당시 전투기를 몰고 임무를 수행하는 와중에 공군의 활약상을 100여장의 사진으로 남긴 이강화 예비역 준장이 23일 국립서울현충원에 안장돼 영면에 들어갔다. 향년 92세.

지난 21일 별세한 이 장군은 학사 5기 출신의 대한민국 공군 1세대로 꼽힌다. 6·25전쟁 당시 전투기와 정찰기를 타고 한반도 상공을 종횡무진 누빈 조종사이자 당시 공군의 활약상을 직접 촬영한 기록사진가였다.

그는 당시 사진과 기록들을 모아 2014년 '대한민국 공군의 이름으로'라는 제목의 자서전을 펴내기도 했다.

이 장군은 자서전에서 "사진은 역사를 기록하는 또 다른 방편이다…두 번 다시 이 땅에 비극적인 전쟁이 일어나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교훈만이라도 남길 수 있다면 그것으로 만족하고 싶다"라고 사진기를 들었던 배경을 소개했다.

그는 6·25 전쟁 당시 미군 수송기로 서울의 전쟁고아 1천여명을 제주도로 무사히 피신시킨 딘 헤스 미 공군 대령과 수차례 동반 출격하기도 했다. 헤스 대령이 무고한 양민이 희생되는 것을 막고자 애쓰는 모습을 보고 '휴머니즘'이 무엇인지 체득했다는 기록도 남겼다.

T-6 항공기를 타고 한강철교 파괴 여부를 확인하는 비행에 나섰다가 적 야크 전투기 3대의 기습을 받고 구사일생 목숨을 건지기도 했다. 1952년 공군의 공지(空地)합동작전에 대한 이해를 돕고자 공지작전학교(AGOS)를 개설하는 등 공지합동작전 시스템 구축 공로로 금성충무무공훈장을 받았다.

휴전 후에는 공군 현대화의 일환으로 미국에서 F-86 제트요격기 비행훈련을 받았고 1963~1964년 공군대학 총장을 역임했다. 전투비행대대 베트남 파병을 추진하기도 했다. 1969년 박정희 당시 대통령의 특명으로 국방부 산하 특명검열단을 조직하고 제4부장을 맡았다.

전역 전 미래 항공 꿈나무 육성을 위한 한국항공청소년단(KCAP)을 창단했다. 전역 후에는 공군역사기록단 자문위원으로 활약했으며 공군 제1호 을지무공훈장 등을 받았다. 유족으로는 3남 2녀가 있다.

이강화 장군이 촬영한 사진
이강화 장군이 촬영한 사진[공군 제공=연합뉴스]

threek@yna.co.kr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2018/12/23 14:21 송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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