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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성 왕건릉은 100년 사이에 어떻게 변했을까

송고시간2018-12-10 14:41

국사편찬위원회 '개성의 역사와 유적' 사진자료집 발간

개성 현릉(顯陵)의 일제강점기 모습(위쪽)과 현재 모습
개성 현릉(顯陵)의 일제강점기 모습(위쪽)과 현재 모습

[국사편찬위원회 제공]

(서울=연합뉴스) 박상현 기자 = 개성에는 고려를 세운 태조 왕건(877∼943)과 그의 첫 번째 부인인 신혜왕후가 함께 묻힌 현릉(顯陵)이 있다. 1992년 무덤 외곽에서 왕건상이 발견돼 화제를 모은 현릉은 남북이 분단돼 갈 수 없다.

일제강점기 주변에 가옥과 전답이 있던 현릉은 오늘날 경관이 확연히 바뀌었다. 깔끔하게 정비돼 한눈에 소중한 문화유산임이 느껴진다.

국사편찬위원회는 고려 건국 1천100주년을 맞아 개성에 남은 고려시대 문화유산을 촬영한 사진 약 320장을 수록한 260쪽 분량 자료집 '개성의 역사와 유적'을 출간했다고 10일 밝혔다.

일제가 반일감정을 무마하고 통감부 설치 정당성을 알리기 위해 1909년에 추진한 순종 순행 모습과 조선사편수회가 1925∼1935년에 찍은 사진, 국편이 중국 연변대 정경일 교수와 협업으로 받은 오늘날 개성 사진을 담았다.

1909년 순종의 개성 순행 모습
1909년 순종의 개성 순행 모습

[국사편찬위원회 제공]

일제강점기와 최근 사진 중 일부는 뚜렷한 대비를 이룬다.

순종이 1909년 2월 3일 고려 궁궐터인 개성 만월대를 방문했을 때는 계단이 일부 무너졌으나, 지금은 훼손 흔적을 찾기 어렵다.

공민왕이 묻힌 현릉(玄陵)과 노국공주가 잠든 정릉(正陵) 주변 모습도 현재는 왕건릉처럼 말끔하게 단장됐다.

반면 개성 첨성대와 선죽교는 일제강점기나 지금이나 유적 모습이 별반 다르지 않다.

국편은 자료집에 사진과 함께 학계 연구와 발굴 성과를 정리한 글을 실었다.

조광 위원장은 "고려 역사와 문화의 특질이 소중한 자산으로 활용되길 바란다"며 "자료집 발간을 계기로 남북 역사학 교류가 재개되면 좋겠다"고 말했다.

psh59@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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