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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EA NOW] 日 보상금 거절한 이용수 할머니 "내가 왜 위안부입니까?"

16세에 젖먹이 동생 두고 일제에 끌려간 이 할머니 구순 맞아 '코리아나우'와 인터뷰
"왜 10억 엔을 받아가지고 또 팔아넘기노…200살까지 살아 日 사죄받겠다"
영화 '아이 캔 스피크'의 실제 주인공

(서울·대구=연합뉴스) "나는 이용수입니다. 내가 왜 더러운 위안부입니까. 위안부라는 말을 해설하면 뭔지 압니까. 우리가 스스로 (위안소에) 갔다는 거예요. 야비한 말이죠. 200살까지 살아서라도 일본에 사죄받겠습니다. 돈(보상금)이 전부가 아닙니다."

1944년 16세의 어린 나이에 일본군에 끌려가 해군함정을 거쳐 대만 등지에 주둔하던 일제의 군부대에서 형언할 수 없는 고통을 겪었던 이용수 할머니(90)는 지난달 구순 잔칫상을 받았다. '정신대 할머니와 함께하는 시민모임' 등 5개 단체가 마련한 자리였다. 하지만 이 할머니는 구순도 여전히 젊은 나이라고 말한다. 일본의 사죄와 배상을 받을 때까지 눈을 감을 수 없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용수 할머니가 11월 26일 오후 대구 자택에서 연합뉴스 영어유튜브채널 '코리아나우'(KOREA NOW)의 인터뷰에 응했습니다.
이용수 할머니가 11월 26일 오후 대구 자택에서 연합뉴스 영어유튜브채널 '코리아나우'(KOREA NOW)의 인터뷰에 응했습니다.

연합뉴스 영어유튜브채널 '코리아나우'(KOREA NOW) 취재진은 지난달 26일 이 할머니의 대구 자택을 찾았다. 이 할머니는 취재진에 오욕의 긴 세월보다 더 힘들었던 것은 자신에게 붙여진 '위안부'라는 욕된 호칭이었다고 말했다. 그리고 일본 정부가 진정한 사죄 대신 '화해와 치유재단'에 전달한 10억엔의 보상금을 내친 깊은 속내도 토로했다.

인터뷰 마지막에 이 할머니는 대중가요 '내 나이가 어때서'를 개사한 노래를 취재진에 들려주었다. 이 노래는 '세월아 비켜라. 내 나이가 어때서. 활동하기 딱 좋은 나인데. 사죄받기 딱 좋은 나인데'라는 가사를 담았다.

이 할머니는 2017년 개봉됐던 영화 '아이 캔 스피크'(I can speak)의 실제 주인공이다. 이 할머니는 2007년 미국 연방하원에서 통과된 위안부 결의안을 앞두고 공청회에 참석해 피해를 증언했으며 이러한 과정이 영화화됐다.

-- 간략한 자기소개 부탁합니다.

▲ 안녕하세요. 이용수입니다. 내가 1928년 12월 13일생이에요. 저는 성주에서 태어나서 여섯 살에 대구에 나왔어요. 동생이 많아요. 동생들 업어 키우고 아부지가 이제 뭐.. 노동일을 하시니까 도시락 갖다 드리고. 농사짓는데 잘 따라다니고 가서 메뚜기도 잡고 엄마 따라다니고 해가지고. 엄마를 많이 따라다녔어요.

-- 일본군에 납치되던 날, 무슨 일이 있었나요.

▲ 15살 되던 해에, 우리 나이로는 16살이고. 어느 날 저녁인데 보니까 엄마가 없어. 엄마는 어데 갔는가 하고 보니까 없어가지고 그래 또 이렇게 누워있으니까. 창문 거기에 군인이 모자를 내리쓰고, 코하고 입밖에 안 보여요. 그런 군인이 여자아이를 이렇게 목에다가 뭐 시커먼 걸로 들이대고 가니까 여자아이가 나한테 손짓을 하더라고요.

'아 놀자고 장난하는구나. 놀자고 그러는구나 싶어서 그래서 아무 생각 없이 일어나가지고 마루가, 물레 마루가 있는데 이렇게 나와가지고 앉았어요. 군인 하나하고 여자애하고 싹 돌아가지고 여자애가 날 어깨로 이렇게 감싸고. 군인은 뒤에 가서 뭘 콱 찌르더라고요.

이용수 할머니가 11월 26일 오후 대구 자택에서 연합뉴스 영어유튜브채널 '코리아나우'(KOREA NOW) 취재팀에게 사진 자료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용수 할머니가 11월 26일 오후 대구 자택에서 연합뉴스 영어유튜브채널 '코리아나우'(KOREA NOW) 취재팀에게 사진 자료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 납치된 건 어떻게 아셨나요.

▲ 대구역에 가서 기차를 처음 탔어요. 처음 타니까 머리도 아프고 하니까.. 막 울었어요.

언니들한테 '언니야 나는 안 간다. 나는 엄마한테 가야 된다. 엄마 어디 갔는지 엄마 봐야 된다' 하고 막 울고 그러니까 조센징이라 하던가.. 조센삐라 하던가.. 구둣발로 막 아무 데나 차요.

아무 데나 차 가지고 정신없게 만들어가지고 그래가지고 기차를 탔어요. 열차 안에서 뭐 너무너무 많이 두드려 맞았어요. 그걸 이제 도망 못 가게 하려고 만드는 건데, 손바닥하고 발바닥이 부어가지고 걸음을 못 걷도록 만들어요. 너무 많이 울어서 지금도 한번씩 헐떡임을 느껴요 내가.

기차를 타고 지나가는데 우리 집을 지나가더라고요. 그런데 막 창문을 이래 있어도 유리가 없으니까 "엄마 엄마! 엄마 이 사람들이 내 죽일라칸다 엄마!" (군인들이) 그냥 와가지고 머리를 막 당겨가지고 땅에다가 쿵쿵 찍어가지고 이래가지고 여기 막 혹뿔도 나고 이래가지고 너무 안 먹고 하니까. 기절해가지고 죽은 것처럼 어디 가서 내렸어요.

-- 끌려간 곳은 어디였나요.

▲ 중국 다롄(大連)에 내리니까 국방색 배가 쫙 있어요. 그 배에 일본 해군 300명이 타요. 배를 타면 빨리 간다고 타라고 하더라구요. 엄마한테 빨리 간다고 해서 탔는데…. (대만에 도착해서) 이 배가 못간다고 해요. 트럭이 와있더라구요. 트럭을 타고 가니까 삼각형 집이 있는데 거기에 나는 뒤에 서가지고 보니까 이쪽에는 커다란 마루가 있고. 이쪽에는 담요로 칸칸이 한 칸씩 칸을 쳐놓은 다섯 개가 있고. 이쪽에는 보니까 기모노 입은 언니들 굉장히 이쁜 언니들이 한 10명 되는 거지. 이렇게 꿇어앉아 있더라고요. 그런데 들어갔어요.

언니 하나가 하는 말이 너는 너무 어리니까 내가 감춰줄게 하면서 자기 방으로 데려갔어요. 벽장에 나를 넣어놨는데, 벽장이 좁아서 조금 있으니까 군인이 긴 칼을 차고 와가지고 이 언니들이 조센삐를 어디다 감췄냐고 하면서 내놓으라고 하면서 막 그냥 때려가지고. 내가 무서워가지고 문을 안고 넘어졌어요.

와가지고 언니를 보고 뭐라뭐라하니까 언니가 고개를 끄덕끄덕하더라고. (나한테) 기모노를 입혀주고 뭐 좀 발라주면서 하는 얘기가 너 저 사람 말 안 들으면 너 죽인다. 저 사람 말 들어야 된다 하면서 복도가 이렇게 있는데, 나를 이렇게 등을 밀면서 동생아 말 들어야 된다. 안 들으면 너 죽인다. 이러더라고.

-- 살아 돌아와서 부모님께 자초지종을 말씀드렸나요.

▲ 3년만에 돌아왔는데 엄마 아부지한테도 얘기 못 했어요. 부모님이 돌아가신 뒤에 나중에 산소에 가서 얘기했어요. 아부지 엄마 그때 엄마가 옆에 없었잖아. 그래서 내가 붙들려갔다. 엄마 있을 적에 그러면 엄마가 얼마나 가슴 아팠겠어요. 그래서 산소에 가서 얘길 했어요.

-- '위안부'라는 말, 할머니에게는 어떤 의미인가요

▲ 내가 왜 위안부입니까. 나는 이용수입니다. 내가 더러운 위안부, 왜 위안부입니까. 위안부 해설하면 뭔지 압니까. 우리가 스스로 갔다는 거예요. 스스로 가서 일본을 위로하면서 군인을 위로하면서 일본 상대해줬다는 이겁니다. 그게 위안부예요.

이렇게 일본놈들은 야비하게 .. 하지만 진실은 밝혀지게 마련입니다. 거기에서 전신을 망쳐가면서 내가 해방시키고 나왔는데, 누가 어느 누가 할 말이 뭐가 있습니까.

-- 정권이 바뀌고 나서 '화해와 치유재단'이 해산 절차를 밟게 됐어요. 어떻게 생각하세요?

▲ 2015년. 12월 28일. 그게 뭡니까. 억울하고 분한 건, 왜 10억 엔을 받아가지고 또 팔아먹노. 팔아넘기노. 왜. 이런 억울한 게 어딨어요. '화해와 치유재단' 마땅히 그건 해산해야지요. 더 중요한 것은 받은 10억엔 반드시 돌려줘야 합니다. 내가 강경화 외교장관님한테 그랬어요. '화해와 치유재단' 10억엔 받을 때 계좌번호로 왔을 거 아니가. 그 계좌번호로 보내라. 분명히 얘기했어요.

일본한테 사죄받아야 되죠. 돈이 아닙니다. 사죄를 받고 배상받아야죠. 그래서 완전하게 두 번 다시 이런 일이 없도록. 내가 해결해야 된다는.. 내 책임이 있는 것 같아요.

-- 김순옥 할머니도 가시고.. 이제 피해자 할머니들이 26명이세요. 함께 했던 언니들, 기억나세요?

▲ 지금도 안보이지만 하늘나라에서 다 수요일 되면 집회도 하고 증언도 하고 다 하고 있어요. 그분들이 다 힘을 주고 있습니다.

젊은 사람도 아니고. 나이 구순이 됐는데. 내가 힘이 없더라도 기어 다니더라도 사죄를 받아야죠. 나는 200살까지 살아가지고 사죄받고 다 해결하고.

세계가 평화로워지도록 저는 200살까지 살 것이고. 꼭 앞장설 것입니다.

이용수 할머니가 대구에 세워진 소녀상을 바라보며 상념에 젖은 모습입니다.
이용수 할머니가 대구에 세워진 소녀상을 바라보며 상념에 젖은 모습입니다.

(정주원 기자·강주희 PD·이태주 촬영기자)

jwc@yna.co.kr, juheekang@yna.co.kr, dopedogs@yna.co.kr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2018/12/11 08:06 송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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