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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불독립운동가 홍재하의 임시정부 지원 입증 친필자료 확인

파리위원부 황기환 서기장, 자필서한서 "보내주신 1만불 잘 전달했어요"
1차대전 복구 참여 한인노동자들, 고된 노동으로 번 돈 모아 임시정부에 보태
홍재하, 국제연맹 상대로 한 독립운동에도 직접 관여…사후 60년 만에야 공적 조명
재불 독립운동가 홍재하(1960년 파리 근교서 타계)가 차남 장자크 홍 푸안 씨를 안고 기뻐하는 모습. 하단에 '아버지와 나 1943년'이라고 적혀 있다. [홍재하 차남 장자크 홍 푸안 씨 제공=연합뉴스]
재불 독립운동가 홍재하(1960년 파리 근교서 타계)가 차남 장자크 홍 푸안 씨를 안고 기뻐하는 모습. 하단에 '아버지와 나 1943년'이라고 적혀 있다. [홍재하 차남 장자크 홍 푸안 씨 제공=연합뉴스]

(파리·생브리외[프랑스]=연합뉴스) 김용래 특파원 = '잊혀진 재불 독립운동가' 홍재하(1898∼1960)가 100년 전 프랑스로 건너온 한인 노동자들이 전후복구 노동으로 번 돈을 모아 임시정부에 보내고 유엔의 전신인 국제연맹을 상대로 한 독립운동에 참여한 정황이 구체적인 자료로 확인됐다.

26일(현지시간) 홍재하의 차남인 장자크 홍 푸안(76)씨가 보관 중인 기록물에 따르면, 임시정부 파리위원부 서기장이었던 황기환은 1920년 9월 2일 홍재하에게 보낸 서한에서 "보내주신 혜함과 금 220불을 접수하였소이다. (중략) 윤 선생에게 1만불을 전하였소이다"라고 적었다.

'혜함'은 은혜로운 편지라는 뜻이고, 언급된 화폐단위 '불'은 당시 프랑스 화폐 '프랑'을 의미한다.

편지의 '윤 선생'은 1차대전 후 전후질서를 논의하는 파리평화회의(파리강화회의) 참석을 위해 프랑스로 건너온 독립운동가 윤해(尹海·1883∼?)다.

황기환이 자필로 흘려 쓴 이 서한은 임시정부 파리위원부(대표 김규식)의 기관지 '자유한국'(La Coree Libre)의 로고가 뚜렷이 인쇄된 편지지에 쓰였다.

홍재하의 삶을 추적 연구해온 온 재불 사학자 이장규 씨(파리 7대 박사과정)는 "임시정부 파리위원부의 살림과 행정을 책임진 황기환에게 홍재하가 독립운동 자금을 모아서 보낸 것을 보여주는 직접적 증거"라고 평가했다.

편지 내용 중 220불은 홍재하가 임시정부 파리위원부에 개인적으로 추가로 보탠 돈으로, 1만불은 홍재하와 함께 1919년 프랑스로 흘러들어와 1차대전의 전사자 시신 안치와 묘지 조성 등의 작업에 투입된 한인 노동자 30여 명이 십시일반 모은 돈으로 추정된다.

이 돈을 윤해가 받아 임시정부의 유럽에서의 외교활동 자금에 보탠 것으로 보인다.

대한민국 임시정부 파리위원부 황기환 서기장이 1920년 9월 2일 홍재하에게 보낸 자필 서신. 임시정부 파리위원부(대표 김규식)의 기관지 '자유한국'(La Coree Libre)의 로고가 뚜렷이 인쇄된 편지지에 쓰였다. "보내주신 돈 220불을 접수했다…윤 선생에게 1만불을 전했다"라고 적혀 있다. [홍재하 차남 장자크 홍 푸안 소장자료=연합뉴스]
대한민국 임시정부 파리위원부 황기환 서기장이 1920년 9월 2일 홍재하에게 보낸 자필 서신. 임시정부 파리위원부(대표 김규식)의 기관지 '자유한국'(La Coree Libre)의 로고가 뚜렷이 인쇄된 편지지에 쓰였다. "보내주신 돈 220불을 접수했다…윤 선생에게 1만불을 전했다"라고 적혀 있다. [홍재하 차남 장자크 홍 푸안 소장자료=연합뉴스]

홍재하 등 한인들은 3·1 운동을 전후로 일제의 압제를 피해 만주와 연해주, 북해를 거쳐 영국 에든버러까지 흘러들어 갔다가 황기환의 끈질긴 노력 끝에 프랑스로 들어온 재불동포 1세대 37명이다.

1차대전 당시 일본과 동맹이었던 영국은 자국군을 따라 북해에서 에든버러까지 흘러들어온 한인 노동자들을 일본의 요구로 한반도로 돌려보내려 했다.

임시정부 파리위원부는 이런 정보를 입수해 황기환 서기장을 영국으로 급파했다. 그리고 그는 1차대전 때 미군으로 유럽 전선에 참전한 경험을 살려 유창한 영어 실력과 끈질긴 설득전 끝에 에든버러의 한인 노동자 중의 일부인 37명을 프랑스로 데리고 들어오는 데 성공했다.

프랑스는 1차대전의 승전국이었지만 국토의 상당 부분이 소모전 끝에 초토화해 엄청난 사상자가 발생했었다. 한인들은 프랑스 입국과 동시에 독일과 영·불 연합군의 격전이 벌어진 마른(Marne) 지방의 쉬프(Suippes)라는 소도시에서 시신 안치와 전사자 묘지 조성에 투입됐다.

이번에 발견된 황기환이 홍재하에게 보낸 편지는 홍재하가 재불 한인 노동자들의 리더로 활동하며 임시정부 파리위원부와의 연락책 역할을 하던 때 받은 편지다.

또 다른 서한에서는 1차대전 직후 창설된 국제연맹(League of Nations·유엔의 전신)을 상대로 임시정부가 외교를 통한 독립운동을 활발히 펼 때 홍재하가 이에 관여한 정황도 드러났다.

황기환은 1920년 11월 29일 홍재하에게 보낸 편지에서 "개진회에 관해 물을 말이 있으시거든 윤 선생께 물으면 알 터이외다. 만일 모든 일에 대해 의논할 일이 있거든 시간을 얻어 나가려고 합니다"라고 적었다.

'개진회'는 임시정부 파리위원부가 결성한 '한국민 국제연맹개진회'로, 1920년 10월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열린 국제연맹옹호회 연합대회에 대표(윤해·이관용)들을 파견한 이후, 이 조직에 가입하기 위해 외곽단체로 꾸린 조직.

'윤 선생'은 앞의 편지에서도 언급된 윤해다. 그는 그해 10월 밀라노에 임시정부 대표로 파리에서 파견됐다.

이장규 씨는 이에 대해 "임시정부 파리위원부의 뜻을 재법한국민회에 전달하는 역할은 윤해가 맡고, 황기환이 국제연맹개진회 준비와 관련해 홍재하와 의논했음을 보여준다"고 설명했다.

재법한국민회(在法韓國民會)는 1세대 재불한인들이 1919년 11월 결성한 프랑스 최초의 한인단체로 홍재하가 2대 회장을 지냈다. 재법한국민회는 1920년 3월 1일 쉬프에 모여 3·1운동 1주년 기념식을 열기도 했다.

실제로 1920년 10월 30일 총회에서 윤해는 국제연맹개진회의 의장에, 홍재하는 서기장에 선임됐다.

홍재하는 생전에 끝내 그리던 고국행의 꿈을 이루지 못하고 1960년 파리 근교에서 암으로 타계했다.

프랑스에서의 독립운동 공적이 제대로 조명받지 못했던 홍재하는 최근 그의 차남이 프랑스에서 부친이 남긴 기록물들을 소장하고 있는 것이 한인 동포들의 도움과 연합뉴스 보도로 처음 알려지면서 사후 약 60년 만에 본격적인 행적조사와 서훈추진이 시작됐다.

yonglae@yna.co.kr

재불 독립운동가 홍재하의 차남과 그를 돕는 동포들
재불 독립운동가 홍재하의 차남과 그를 돕는 동포들지난달 재불 독립운동가 홍재하(洪在廈·1898∼1960)의 차남 장자크 홍 푸안(76. 아랫줄 가운데)씨의 자택에 모인 프랑스 교포 부부와 유학생들.
[연합뉴스 자료사진]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2018/11/27 06:20 송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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