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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이매진] 대청호오백리길 청남대 사색길

호수 옆에 끼고 낙엽 이불 밟으며

(청주=연합뉴스) 한미희 기자 = 늦가을과 초겨울 사이, 단풍이 졌다고 아쉬워할 필요는 없다. 가지에 매달려 있다가 내려와 땅 위에 몸을 뉘운 나뭇잎들은 내딛는 발걸음에 바스락거리는, 혹은 폭신하게 발을 감싸는 이불이 되어 준다. 대청호 오백리길 19구간 청남대 사색길은 산과 호수, 마을 길과 늪지를 오가며 대청호를 눈에 담고 걷는 길이다.

청남대 가로수길에 쌓인 낙엽을 밟으며 걷는다.
청남대 가로수길에 쌓인 낙엽을 밟으며 걷는다.[사진/전수영 기자]

대청호 오백리길은 대전 대청댐물문화관에서 시작해 대청호 주변 200㎞를 돌아온다. 충북 옥천, 보은, 청주를 거쳐 다시 대전으로 돌아오는 길은 21개 구간으로 나뉜다. 이 중 대통령 별장 청남대를 오가는 호젓한 드라이브 길이 포함된 19구간, 청남대 사색길을 골랐다.

낙엽에 파묻힌 길…"여기가 아닌가벼"

청남대 사색길은 충북 청주시 상당구 문의면 산덕리 상산마을에서 출발한다. 청남대 방향을 가리키는 안내판을 따라 김장배추가 자라는 밭과 잎을 거의 다 떨군 오래된 은행나무를 지나 야산을 오른다. 쉬워 보이던 길은 정비 중이었고, 안내판도 없는 등산로는 의외로 찾기 어려우니 마을 주민에게 물어 미리 확인하는 것이 좋다. 가시덤불을 헤치고 곰실봉(326m) 전망대에 오르니 뺑 둘러 삼면으로 대청호 풍경이 눈에 들어온다. 미세먼지가 심한 날, 헉헉거리는 숨을 고르면서 호흡기 걱정은 둘째, 뿌연 시야에 이 풍경을 제대로 누리지 못하는 것이 아쉽다.

곰실봉에서 보는 대청호 풍경
곰실봉에서 보는 대청호 풍경[사진/전수영 기자]

청남대 방향으로 내려가는 산등성이에는 상수리나무와 소나무가 많다. 낙엽으로 길에 깔린 솔잎은 폭신하고, 상수리나무 잎은 바스락거린다. 폭신하고 바스락거리는 낙엽 이불을 밟으며 마음이 한껏 풀어진 것도 잠시, 어느새 발목까지 파묻히게 쌓인 낙엽과 여기저기 널브러진 잡목들에 길을 잃고 말았다. 처음 발견한 이정표는 등산객이 매달아 놓는 리본인데 부러진 나뭇가지에 초라하게 매달려 바위에 얹혀 있었다. 대청호 오백리길의 정식 이정표는 몇 개 되지 않아 만나면 반가웠다. 그리 반갑던 이정표를 따라갔다가 길을 헤매고 되돌아와서야 이정표가 갈림길에서 애매한 방향을 가리키고 있는 것을 확인했다. 비탈길에 설치된 밧줄이 아예 흙 속에 파묻혀 있었던 것을 보면 어지간히 오가는 사람이 없었던 모양이다.

푹푹 빠지는 낙엽과 힘없이 바스러지는 나무토막을 밟고 미끄러지며 헤매다 다리에 힘이 풀려 꼬이기 시작할 때쯤, 드디어 저 아래로 청남대 가로수길이 보였다. 길 아닌 곳에서 길이 보이니 "길이다!"하는 소리가 절로 나왔다.

대청호오백리길 이정표
대청호오백리길 이정표[사진/ 전수영 기자]

대청호 끼고 걷는 가로수길

청남대를 오가는 가로수길은 2005년 '한국의 아름다운 길 100선'에 꼽혔다. 남쪽으로 해를 등지고 왼쪽으로 대청호를 옆에 끼고 북쪽으로 걸어 올라간다. 길이 조금씩 꺾일 때마다 서로 다른 나무가 만들어내는 길의 표정도 달라지고, 길옆에 쌓여 있는 낙엽 이불의 색깔도 바뀐다. 앞으로 옆으로 따라오는 내 그림자와 발밑에서 바스락거리는 낙엽을 친구 삼아 천천히 걷다가 왼쪽 호수 방향으로 시야가 트이는 곳에서는 잠시 걸음을 멈추고 늦가을의 정취를 즐긴다. 풍경이 좋은 곳마다 묏자리가 많다. 청남대 가로수길은 인도가 없는 왕복 2차로라 길 한쪽에 붙어 걸어야 한다. 사전 예약한 차량만 오갈 수 있어 시내만큼 차량 통행이 잦지는 않지만, 관광버스도 많이 다니다 보니 아무래도 위험하긴 하다. 호숫가 가까이 산책로가 만들어지면 더할 나위가 없을 것 같다.

좌골 삼거리에서 호숫가에 가까이 붙은 마을로 들어선다. 낯선 이에게 손을 흔드는 동네 꼬마와 꼬리를 흔들거나 짖어대는 강아지, 잽싸게 도망가는 고양이를 마주친다. 야산의 밭과 과수원, 묘소부터 호숫가에서 자라는 갈대가 가꾸지 않은 그대로의 모습을 드러낸다. 수확이 끝나 휑한 논과 포도밭의 쓸쓸함은 마지막까지 힘을 다해 자라고 있는 김장용 채소들이 채우고 있다.

작은용굴
작은용굴[사진/전수영 기자]

이무기가 용이 되어 승천한 작은용굴

좌골 마을에서 나와 다시 청남대길을 만나면 잠시 방향을 남쪽으로 틀어 작은용굴을 보러 간다. 구석기 시대 석회암 동굴인 작은용굴은 발굴 조사가 이뤄지지 않아 정확한 유적의 성격이나 역사는 알 수 없지만, 안쪽에 널찍한 광장이 있어 선사 시대 사람들이 생활공간으로 이용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동굴 입구 안쪽 오른쪽 위에는 하늘이 보이는 구멍이 있는데 이무기가 용이 되어 올라갈 때 생긴 것이라는 전설이 전해 내려오고 있다.

청남대길을 다시 내려와 괴실 삼거리에서 청남대 사색길의 마지막 구간인 노현리 생태습지공원으로 향한다. 처음에는 농업용수로 사용하기 위해 조성한 소류지였으나 이후 다양한 수생식물이 자라고 야생조류가 산란하거나 서식하는 습지로 자연스럽게 바뀌었다. "이름만 공원이지 아무것도 없다"는 한 주민의 말을 뒤로하고 계속 걸었다. 멀리 야트막한 산 아래로 하얗게 반짝이는 갈대밭이 다가온다. 그 풍경 안으로 들어가고 싶었지만, 길은 아쉽게도 물에 잠겨 있었다.

노현리 생태습지공원
노현리 생태습지공원[사진/전수영 기자]

※ 연합뉴스가 발행하는 월간 '연합이매진' 2018년 12월호에 실린 글입니다.

mihee@yna.co.kr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2018/12/10 08:01 송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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