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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년간 어둠에 묻힌 학자 '이덕리'를 밝힌 추적담

정민 교수 '잊혀진 실학자 이덕리와 동다기' 출간
'강심'의 '기다' 부분. [글항아리 제공]
'강심'의 '기다' 부분. [글항아리 제공]

(서울=연합뉴스) 박상현 기자 = 다산 정약용(1762∼1836) 연구자인 정민 한양대 교수는 12년 전 전남 강진군 성전면 고가에서 '강심'(江心)이라는 책을 접했다.

강심에는 '기다'(記茶), '기연다'(記烟茶)라는 제목의 글이 있었는데, 그중 일부가 다산과 교류한 초의선사(1786∼1866)가 차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를 모은 '동다송'(東茶頌)에 인용됐다.

초의는 '동다기(東茶記)에 이르기를'이라는 표현을 사용해 '기다'의 내용을 소개했기에 동다기와 '기다'는 같은 책이라고 정 교수는 추론했다.

당시에 동다기를 지은 사람은 다산으로 널리 알려졌다. 그러나 정 교수는 '강심' 끝부분에 남은 초서를 해독해 저자가 다산이 아닌 이덕리(李德履)라는 사실을 찾아냈다. 그는 이 같은 성과를 발표했고, 그 덕분에 동다기 저자는 이덕리로 수정됐다.

신간 '잊혀진 실학자 이덕리와 동다기'는 정 교수가 이덕리라는 인물의 실체를 10년 넘게 추적한 내용을 담은 책이자 학자로서의 양심 고백을 담은 저작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정 교수가 2006년 동다기를 쓴 인물로 추정한 이덕리는 실제 저자가 아니었다. 비슷한 시기를 산 동명이인 이덕리가 존재했다. 두 사람은 모두 전의 이씨다.

종전에 알려진 이덕리는 1728년에 태어나 1763년 조선통신사 자제군관으로 수행했고, 창경궁 위장을 지냈다.

그러나 정 교수는 2015년 동다기를 저술한 사람이 1725년에 태어나 1797년에 세상을 떠난 문인 이덕리라는 사실을 새롭게 확인했다. 이덕리는 족보에 이덕위(李德威)라는 이름으로 올랐던 터라 실체를 파악하기 힘들었다.

문인 이덕리는 1776년 4월 전남 진도로 귀양을 갔다가 1795년 영암으로 거처를 옮겼고, 결국 2년 뒤에 유배지에서 숨을 거뒀다.

정민 교수(왼쪽)가 강진 성전면 고가에서 만난 고 이효천 씨. 이씨는 정 교수에게 '강심'을 보여줬다. [글항아리 제공]
정민 교수(왼쪽)가 강진 성전면 고가에서 만난 고 이효천 씨. 이씨는 정 교수에게 '강심'을 보여줬다. [글항아리 제공]

그러면 이덕리는 왜 동다기라는 걸출한 서적을 남기고도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을까.

실마리는 이덕리가 유배된 시점에 있다. 1776년은 조선 제22대 임금 정조가 즉위한 해다.

정조는 왕위에 오른 직후 "과인은 사도세자의 아들"이라면서도 "선대왕께서 종통(宗統)의 중요함을 위해 나에게 효장세자를 이어받도록 명하셨다"고 밝혔다. 9세에 죽은 효장세자는 영조 맏아들이자 사도세자의 이복형이다. 노론의 집중적 견제를 받은 정조가 불안정한 정치 기반을 고려해 어중간한 태도를 취한 셈이다.

하지만 이덕리의 형인 이덕사(李德師)는 그해 4월 1일 정조 친부인 사도세자의 신원을 요청하는 상소를 올렸고, 이튿날 동소문 밖에서 극형에 처해졌다.

이어 의금부는 4월 3일 이덕사 아들도 교수형에 처하거나 종으로 보내야 한다면서 "아우 덕리(德履)는 3천 리 떨어진 진도군으로 유배 보내 안치한다"는 계청(啓請)을 올렸다.

약 220년 전에 유배지에서 쓸쓸하게 사망한 이덕리는 동다기의 자매편이라고 할 만한 '상두지'(桑土志)라는 책도 썼다. 상두지는 다산이 편찬한 '경세유표'(經世遺表), 대동수경(大東水經), 민보의(民堡議)에 등장하는 서적이다.

문제는 상두지도 동다기처럼 후대에 다산 저술로 둔갑했다는 점이다. 정 교수는 "구한말 김윤식(1835∼1922)도 상두지 저자를 다산으로 소개한 점으로 미뤄 애초부터 잘못 알려진 듯하다"면서도 다산이 상두지를 인용할 때 이덕리가 지었다는 점을 명시했다고 지적한다.

동다기와 상두지에서 이덕리는 실학자로서의 면모를 여실히 보인다. 동다기는 차에 관한 책이지만, 핵심 내용은 차로 부를 창출하자는 것이었다.

정 교수는 "이덕리는 '기다'에서 농한기 유휴 인력을 활용해 차를 생산하고 국가가 전매해 국부를 쌓자고 제안했고, '기연다'에서는 금연 정책을 시행해 담배로 인해 재화가 연기처럼 사라지는 현실을 바로잡자고 했다"고 설명한다.

이어 상두지는 변방의 둔전 경영과 축성, 도로와 수로 운영, 화포와 수레 제도를 꼼꼼하게 정리한 군사 서적이라면서 이덕리가 국방에 필요한 재원을 조달하는 방안으로 차 전매를 제시했다고 주장한다.

그러면서 "본래는 동다기를 꼼꼼하게 교주(校註)해 학계에 소개하려 했으나, 실학자 이덕리를 드러내 올바로 자리매김해야겠다는 책무를 느꼈다"며 "이덕리가 18세기 지성사의 한 인물로 새롭게 위치 지어져야 한다"고 강조한다.

정 교수는 책에서 이덕리 생애와 저작, 그가 차와 인연을 맺은 과정, 동다기 이본(異本) 분석에 대해 상세히 다룬 뒤 동다기 원전 교감(校勘·여러 판본을 대조해 정확한 원문을 복원하는 작업)과 주해를 싣고 여러 고서의 영인본을 부록으로 수록했다.

이덕리의 또 다른 저서인 상두지 번역서는 추후 출간할 예정이다.

글항아리. 436쪽. 2만2천원.

220년간 어둠에 묻힌 학자 '이덕리'를 밝힌 추적담 - 3

psh59@yna.co.kr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2018/11/16 15:26 송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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