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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산안 반기 伊 "재정지출 확대 불가피…EU 유연성 보여야"(종합)

伊 재무 "자연재해·교량붕괴 등 특수상황 고려해 달라"
살비니 부총리 "1㎜도 물러설 수 없어"…금융시장 약세
오스트리아·네덜란드 장관 "伊 예산 수정 안해 실망" 우려 표명

(로마=연합뉴스) 현윤경 특파원 = 막대한 국가부채를 안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재정지출을 대폭 늘린 내년 예산안을 끝까지 고수함으로써 유럽연합(EU)에 반기를 든 이탈리아가 자국이 처한 특수성을 호소하며, EU가 유연성을 보여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탈리아 정부는 EU가 요구한 수정 예산안 제출 마감 시한인 13일(현지시간) 밤 EU에 보낸 서한에서 "이탈리아는 당초 예산안에 어떤 수정도 가하지 않을 것"이라며 "이탈리아가 처한 이례적인 사건들을 고려해 EU는 예외적인 유연성을 보여줘야 한다"고 요구했다.

조반니 트리아 이탈리아 재정경제부 장관 [로이터=연합뉴스]
조반니 트리아 이탈리아 재정경제부 장관 [로이터=연합뉴스]

조반니 트리아 재정경제부장관 명의로 보낸 이 서한에서 이탈리아는 최근 전국을 강타한 홍수 피해와 지난 8월 북서부 항구도시 제노바에서 일어난 고가교량 붕괴 참사 등을 거론하며 재난 복구 비용을 재정적자 확대 요인으로 고려해 줄 것을 EU 측에 요구한 것으로 보도됐다.

이탈리아에서는 지난 달 말부터 약 열흘 가까이 북동부 베네토와 북서부 리구리아 주, 남부 시칠리아 섬 등을 휩쓴 악천후로 30여 명이 사망하고, 막대한 재산피해가 발생했다.

43명이 숨진 제노바 모란디 교량 붕괴 사고로 열악한 인프라 관리의 민낯이 드러나자 정부는 전국 곳곳에 있는 노후 기반 시설의 개선 작업에 착수한 상황이다.

트리아 장관은 이날 EU에 보낸 서한에서 "최근 재난으로 인한 손실을 복구하는 데 향후 3년 동안 GDP의 0.2%의 재정지출이 필요한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트리아 장관은 재정지출 확대 필요성을 역설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이탈리아가 EU에 제시한 GDP의 2.4%의 재정적자를 넘어서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탈리아는 EU 회원국 가운데 꼴찌 수준인 빈약한 경제 성장을 촉진하기 위해서는 재정 지출을 대폭 늘려 소비와 투자를 활성화할 필요가 있다며 중도좌파 민주당이 이끈 전임정부의 목표치보다 3배 높은 GDP의 2.4%를 내년 재정적자 규모로 설정, EU와 반목하고 있다.

국가부채가 GDP의 130%가 넘는 이탈리아가 확장 예산을 편성할 경우 채무가 급증해 그리스식 채무 위기에 직면해 EU 전체의 안정이 위협받을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는 EU는 이탈리아가 지난 달 제출한 내년 예산안을 퇴짜 놓은 뒤 수정을 요구한 바 있다.

EU는 이탈리아가 추진하고 있는 저소득층을 위한 기본소득, 연금수령 연령 하향조정, 세금 인하 등 값비싼 정책을 고려할 때 이탈리아의 실제적인 재정지출 규모는 내년에는 GDP의 2.9%, 후년에는 3.1%에 달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밀라노 금융시장에서 스프레드 추이를 바라보고 있는 투자자 [ANSA통신]
밀라노 금융시장에서 스프레드 추이를 바라보고 있는 투자자 [ANSA통신]

EU가 이탈리아의 예산안을 다시 거부할 경우 이른바 '재정적자 초과 관련 절차'(EDP)로 불리는 제재의 칼을 본격적으로 휘두를 것으로 보인다.

EU는 GDP의 0.2%까지 과징금을 부과하거나 EU의 지원금을 삭감할 수 있다. 이는 이탈리아 경제규모에 견줘보면 350억 유로(45조5천억 원 상당)에 달하는 것이다.

유례없는 EU의 EDP 제재가 현실화되면 이탈리아 금융 시장에도 상당한 충격이 점쳐져 시장은 예산안을 둘러싼 이탈리아와 EU의 줄다리기를 예의주시하고 있다.

이탈리아가 EU의 예산안 수정 명령에 응하지 않고 갈등이 증폭되는 양상을 보이자 14일 개장한 밀라노 주식시장은 2% 가까이 급락하고, 이탈리아와 독일 국채 10년물 금리차를 의미하는 스프레드는 한때 317bp까지 치솟는 등 불안 양상을 보였다.

밀라노 FTSE MIB 지수는 이후 낙폭을 줄여 0.78% 하락한 채 거래가 종료됐다.

EU는 당초 계획을 전혀 수정하지 않고 다시 제출한 이탈리아 예산안에 대해 오는 21일까지는 입장을 밝힐 것으로 관측된다.

이런 가운데, EU 회원국 장관들도 이탈리아가 EU의 요구를 무시하고 기존 예산안을 고수한 것에 대해 우려를 표명했다.

유럽연합(EU) 순회의장국인 오스트리아의 하르트비히 뢰거 경제장관은 "이탈리아 정부는 포퓰리즘(대중영합주의) 메시지로 국민을 인질로 잡고 있다"며 이탈리아가 예산안 수정을 계속 거부한다면 이탈리아를 상대로 EU가 제재 절차를 개시하는 것을 지지할 준비가 돼 있다고 말했다.

옵케 회크스트라 네덜란드 재무장관은 "이탈리아가 예산안을 수정하지 않아서 실망했다"며 "이탈리아의 공공재정은 불균형 상태에 있고, 정부의 계획은 견조한 경제 성장을 가져오지 않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마테오 살비니 이탈리아 부총리 [AFP=연합뉴스]
마테오 살비니 이탈리아 부총리 [AFP=연합뉴스]

한편, 반(反)난민·반EU 성향의 극우정당 '동맹'을 이끌고 있는 마테오 살비니 부총리 겸 내무장관은 이날 이탈리아 현지 라디오와의 회견에서 "정부는 EU의 요구와 정반대로 하기로 결정했다. 왜냐하면, 지난 5년간 (긴축을 강조하는) EU의 경제 처방은 이탈리아에 효과가 없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살비니 부총리는 이어 "(예산안을 둘러싼 EU와의 줄다리기에서) 단 1㎜도 물러서지 않을 것"이라며 EU와 주변국의 압력에도 불구하고, 재정지출을 확대한 예산안을 고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못박았다.

그는 "EU는 (창립) 조약에서 전면 고용과 사회 정의가 보장돼야 한다고 말하고 있지만, 지출을 못하게 한다면 그것들을 어떻게 보장할 수 있겠느냐"고 반문하면서, 고용 촉진과 경제 성장을 위해서는 확장 예산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그는 그러면서 이탈리아가 EU의 예산 규정을 어겼다고 해서 EU의 제재를 받을 가능성은 없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ykhyun14@yna.co.kr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2018/11/15 02:55 송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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