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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율곡로 칼럼] '법치'로 나라의 힘 키워야

(서울=연합뉴스) 윤근영 논설위원= 일본의 고노 다로 외무상은 한국 대법원의 강제징용 배상판결에 대해 "폭거이자 국제질서에 대한 도전"이라고 최근에 말했다. 스가 요시히데 관방장관은 국제사법 재판소에 한국을 제소할 수 있다는 발언을 했다.

일본은 중국에 대해서는 다른 입장을 취하고 있다. 교도통신은 일본 기업 미쓰비시 머티리얼이 기금을 설립해 중국의 강제징용 피해자에게 화해금을 지급할 계획이라고 보도했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질까. 일본이 강제징용을 비롯한 과거사에 대해 중국에는 거의 자발적으로 고개를 숙이면서 한국에는 진심으로 사과하지 않고, 막말하는 데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핵심은 한국의 국력이 상대적으로 약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힘에서 압도한다면 일본이 이렇게 반응할 수 없다.

경술국치를 통해 나라를 일본에 빼앗긴 것도 우리에게 힘이 없었기 때문이다. 영국이 일본과 1902년 영일동맹을 맺어 일본의 조선 지배를 사실상 인정한 것, 러시아가 1903년 일본과의 협상에서 북위 39 도선을 사이에 두고 한반도를 나누자고 한 것, 1905년 일본의 총리 가쓰라 다로와 미국의 육군장관 윌리엄 하워드 태프트가 일본의 조선 점령을 눈감아주기로 한 것, 세계 2차대전 종료 후 패전한 일본이 아닌 우리나라가 분할된 것도 힘이 없었기 때문이다.

우리 국민들이 일본에 분노하고 성토하는 것은 어렵지 않은 일이다. 그러나 진정한 응징은 말로 하는 게 아니다. 힘을 키우는 것이다. 우리에게 힘이 없다면 응징은커녕 또다시 굴욕을 당할 수 있다.

강제징용 피해자에 대한 한국 대법원 배상판결에 반발하는 고노 다로 일본 외무상
강제징용 피해자에 대한 한국 대법원 배상판결에 반발하는 고노 다로 일본 외무상연합뉴스 사진

어떻게 해야 나라의 힘을 키울 수 있을까. 미국의 투자이론가 윌리엄 번스타인 박사는 저서 '부의 탄생'에서 부국의 요인으로 재산권과 법치주의, 과학적 합리주의, 자본시장, 수송·교통시스템을 꼽았다. 특히 그는 재산권과 이를 보장하는 법치주의를 가장 중요한 요소로 봤다. 권력자나 범죄자, 이웃 등에 의해 자기 재산을 빼앗길 가능성이 있다면 누구도 최선을 다해 열심히 일하지 않게 되는데,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철저한 법치주의 확립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는 사회주의 국가들이 망했던 중요한 이유로 재산권과 법치주의가 지켜지지 않았다는 점을 지적했다.

법치가 발전의 주요 원동력이라는 번스타인의 의견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법치주의는 법률을 통해 사회의 공정한 룰을 만들고 이를 엄격히 집행하는 것을 말한다. 법률과 규정에 따라 국가 구성원에게 공평한 기회를 제공하고, 생산물을 공정하게 분배하며, 보유 재산을 지켜줘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발전은 불가능하다. 각 분야에서 생산성이 올라갈 수 없고, 그 종합인 국력이 커지기 어렵다. 분노와 갈등이 난무하게 되고, 이는 정치·사회적 혼란으로 이어진다. 그 결과, 국력은 더욱 추락하는 악순환에 빠진다.

기업에서 법치의 핵심은 '신상필벌'이다. 성과를 낸 사람에 대해서는 칭찬, 인정, 보상을 제공하고 잘못을 저질렀다면 반드시 처벌한다는 원칙이다. 이런 기본이 확실하게 살아 있는 기업은 그렇지 않은 회사보다 번성할 가능성이 높다. 신상필벌이 흐물흐물한 기업은 도태될 수밖에 없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법치가 제대로 이뤄지고 있는가? 세계경제포럼(WEF)이 최근에 발표한 '2018년 국제경쟁력 보고서'를 보면 140개국 가운데 한국은 경쟁력 종합순위에서 15위를 차지했다. 전년보다 2단계 상승했다. 비교적 괜찮은 결과다. 그런데 사법부의 독립성 수준은 63위로 중간밖에 안 됐다. 이는 중국(45위). 자메이카(40위). 이집트(29위), 인도네시아(50위), 말레이시아(33위), 사우디아라비아(24위), 태국(61위), 케냐(51위)보다 뒤처진 것이다. 일본은 10위로 한국보다 월등히 높았다. 경찰 서비스 신뢰도는 한국이 35위로 사우디아라비아(13위), 모로코(34위), 대만(31위), 오만(5위) 등보다 낮았다.

이는 공정한 수사와 재판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다는 뜻이다. 역사적으로 보면 경찰, 검찰, 법원이 권력 변동에 따라 판단을 바꾸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이러면 법치가 안 된다. 전직 고위급 판사와 검사 출신 변호사에게 사실상 사건 수임을 몰아주는 '전관예우'도 뿌리뽑히지 않고 있다. 어떻게 공정한 법 집행이 가능하겠는가. 법률을 만드는 국회가 매년 예산안 처리 법정시한(12월 2일)을 지킨 사례는 찾아보기 힘들다. 법을 만드는 사람들조차도 법규를 무시하는데, 어떻게 준법 문화가 확고해지겠는가.

공공기관들의 고용세습, 곳곳에서 벌어지는 탈세 행위, 재벌사들의 불법행위, 유치원 비리, 끊이지 않는 음주운전, 각 분야에서 터져 나오는 갑질 행태 등 여러 가지 경제·사회적 문제도 느슨한 법치와 무관하지 않다. 법률을 위반해도, 규정을 지키지 않아도 걸리지 않을 것이라는 인식이 형성돼 있는 것이다. 법을 준수하면 나만 손해라는 사람들이 적지 않은 게 현실이다.

무엇보다 먼저 법치를 확립해야 한다. 그래야 국민이 자기 위치에서 최선을 다하게 되면서 부국의 토대가 탄탄해진다. 법치 없이 민주주의와 인권이 확실하게 자리 잡을 수 없고, 더불어 사는 복지국가가 될 수 없다. 권력을 가진 사람, 돈이 많은 사람, 많이 배운 사람이 부당하게 특권을 누리는 일이 없도록 법과 규정을 제대로 세우고, 이를 반드시 이행해야 한다. 일반 시민들도 교통법규부터 철저히 지키는 습관을 지녀야 한다. 특정 사안에 대한 분노에 매몰돼 관련자 처벌을 과도하게 요구하거나, 법규를 넘는 수준으로 직위와 재산을 몰수하라고 당국을 압박하거나, 폭력적으로 자기 요구를 관철하려는 것도 법치와 거리가 멀다.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2017/11/27 11:25 송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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